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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저는 학교로 돌아와 다시 교단에 섰습니다. 뜻하지 않게 교단을 떠난 지 거의 9년 만입니다. 정확히 8년 9개월 만에 학교로 돌아온 것입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 참으로 멀고도 길었습니다. 수면장애와 우울증, 기혈순환장애 등으로 죽기보다 힘든 나날을 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정말 열흘 가까이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고, 숨 쉬는 것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 자살 기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공익제보의 민낯이자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다시피, 저는 2008년 교육자적 양심으로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대표하여, 상록학원 양천고등학교의 사학비리(급식비리, 공사비리, 회계비리 등)를 서울시교육청에 공익제보(감사요청)하였다가 이 사실이 법인에 알려지면서 2009년 3월 부당하게 해직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13개월 동안 학교, 교육청,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부패사학과 싸웠습니다.

2009년 해직시절, 양천고 앞, 교육청 앞, 검찰청 앞에서 13개월 1인시위를 하며 부패사학과 싸웠습니다.
▲ 양천고 앞 1인시위 2009년 해직시절, 양천고 앞, 교육청 앞, 검찰청 앞에서 13개월 1인시위를 하며 부패사학과 싸웠습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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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앞에 당당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교단에서 "가르친 대로 행동하고 배운 대로 실천하라"고 해놓고 제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부끄러운 스승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당시 이명박 정부와 공정택 서울교육감은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을 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교육비리를 사회적 의제화하는 데 기여했다며 시민단체 추천으로 저는 2010년 6.2지방선거 통해 교육의원에 당선돼, '해직교사에서 교육의원으로 당선,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린 사람' 등 그해 화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양천고에 대해 교육청은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검찰은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통해 급식 등 상당수의 비리를 밝혀냈고, 관련자들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공익제보 활성화 없이는 '청렴하고 투명한 세상' 어려워

사학비리는 학생들의 꿈을 훔치는 나쁜 도둑질이고, 교직원들에게 영혼 없는 삶을 강요하는 몹쓸 짓입니다. 그런데 사학비리를 공익제보하면, 교육청이 한번 봐주고, 경찰과 검찰이 한번 봐주고, 재판부가 전관예우, 유전무죄 적용하여 또 다시 봐주는 관행으로 인해 결국 유야무야 되는 일이 많습니다.

판사가 정해지면 그 판사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사를 찾아 착수금으로 1억 이상의 거금을 갖다 주면, 구속될 사람이 불구속되고, 기소될 사람이 불기소되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세상이니 공익제보한 사람들이 가장 허탈해하고 분노하는 것이 바로 이런 기가 막힌 악습입니다.

또 하나는 도둑을 신고했는데 잡으라는 도둑 대신 신고자를 잡는 세상입니다. 제가 2009년 부당하게 해직되었을 때, 교육청, 교육부, 법무부, 청와대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떤 국가기관도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국민권익위와 국가인권위마저도 사립학교는 공공기관이 아니고 사립학교 교원은 공무원이 아니기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립학교 교원은 국민이 아니냐고 몇 번을 따져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후 시민단체의 눈물나는 노력과 강한 요청으로 '국가인권위'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그리고 '부패방지법'에는 사립학교 교원도 포함되었으나 여전히 '공익신고법'에는 포함되지 않아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습니다. '공익신고법'에도 속히 사립교원이 포함돼야 하고, 더 나아가 별도의 독립적인 '공익제보자보호법'이 제정돼야 할 것입니다.

사학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공익제보 활성화'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사학의 경우, 공익제보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사학비리 공익제보자들은 보복성 징계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공익제보자보호법'과 같은 보다 실효성 있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사학비리를 제보한 공익제보자들이 불이익조치를 당하더라도 신속하게 보호 및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불이익조치 등 보복성 징계를 감행한 가해자와 학교법인에게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등 처벌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사학비리를 근절하는 지름길 중 하나가 바로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입니다. 제가 이번에 공익제보자 자격으로 처음 공립 특채됨으로써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제가 이제 처음 길을 열었으니 이후로는 더 크게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도 교육자적 양심으로 공익제보했다가 학교 안에서 이런 저런 불이익을 받고 있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제가 만약 교육감이라면 "사학에서 공익제보했다가 보복성 불이익을 당한 교사들은 공립특채하겠다"고 선언하겠습니다. 이것은 현행법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교육감들이 재직 중인 공익제보자를 특채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시행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공익제보자는 부패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카나리아 새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의 비극입니다. 이미 3개월 전에 청와대 신문고에 내부자가 청해진해운의 잦은 사고와 개운치 않은 사고처리 의혹, 상습적 정원 초과 운항 실태, 회사 쪽의 편법적 비정규직 채용을 민원제기 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부패, 청렴도를 높이는 공익제보자 보호는 2017년을 경과하는 현재의 대한민국과, 교육계에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학생들과의 약속 지키기 위해 교단으로 돌아와

솔직히 조용히 와서 말없이 근무하려 했는데, 제가 서울공고에 첫 출근한 사실을 언론들이 앞 다투어 크게 보도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하네요. 한번 유명인사(?)가 되면 별 것 아닌 것도 큰 뉴스거리가 되니 늘 조심스럽습니다. 아마도 선출직(교육의원)을 지낸 사람이 학교로 가는 일이 워낙 드물다 보니 화제가 되는 모양입니다.

제가 교단에 돌아온 것이 정말 이렇게 큰 뉴스가 될 줄 몰랐고, 이렇게 뜨거운 관심과 반응을 보일 줄 몰랐습니다. 주요언론들이 크게 보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부총리부터 정말 많은 분들이 연락하고 전화주시고 찾아오시는 바람에 요 며칠 어리둥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저의 복직을 저보다 더 기뻐하는 등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보인 분들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복직을 축하한다며 찾아온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가 찍어준 사진
▲ 서울공고 교무실에서 복직을 축하한다며 찾아온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가 찍어준 사진
ⓒ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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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사사기'가 있습니다. 기드온처럼 농사를 짓거나 양을 치던 사람들이 시대적 부름에 "사사(士師)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도 한동안 제 의지와 무관하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뜻하지 않은 해직과 교육의원 당선, 이후에도 교육정책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교육전문기자, 국민TV '김형태의 행복한 교육세상' 진행자, '영등포시대' 대표이사... 등 다양한 활동과 경험들을 했습니다.

얼마나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삶을 살았으면 '모범시민(가칭)'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질까요? 지난해 봄, '영화사람'이라는 영화사 대표(최아람)가 제게 와서 '변호인'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고심 끝에 수락했습니다. 현재 정의목 작가가 1년 정도 걸쳐 시나리오를 완성한 상태이고, 내년 하반기 상영을 목표로 진행 중입니다.

누구는 교육의원까지 지낸 사람이 굳이 왜 학교로 가려 하느냐고 하지만, 다시 교단에 서겠다는 제 자신과의 다짐을 지키고, 무엇보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겠다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2009년 3월 저는 해직되면서 동료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떠나는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억울하고,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가지만 기필코 합법적으로 투쟁하여, 보란 듯이 명예를 회복할 것입니다. 제가 흘린 눈물이 환한 웃음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울지만 마지막에는 제가 웃을 것입니다. 저를 걱정하고 저를 위해 눈물까지 보이는 선생님들이 계신데 저를 위해 울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선생님들 제자인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울기 바랍니다.

☞관련기사 : 해직 교사의 떠나는 인사말

저 죽지도 않을 것이고, 또 이제는 울지도 않을 것입니다. 꿋꿋이 보란 듯이 일어나, 반드시 명예를 회복하여 교단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하시는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없는 힘이라도 내겠습니다.

☞관련기사 : ㅇㅇㅇ 선생님께!

또한 제가 교단에 돌아온 이유 중 하나는 '수직의 벽'을 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사회에서는 학장, 총장, 또는 장관을 지낸 사람이 임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평교수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초중등에서는 수직의 벽이 워낙 높다보니 교장, 장학사, 장학관을 지낸 사람이 평교사로 돌아오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주지하다시피 북유럽 교육선진국에서는 교장도 수업을 합니다. 초중고 교직사회에서도 속히 '보직'의 개념이 널리 자리매김하여, 수직적, 권위적인 구조가 수평적, 민주적인 구조로 바뀌고, '직위'보다 '역할'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활동 토대로 '더욱 좋은 선생님' 되겠습니다

9년 전 저는 본의 아니게 교단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제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학생들 곁으로 돌아왔으니 우선 처음 교단에 선다는 '초임교사의 마음가짐'으로 교직에 임하겠습니다. 배운다는 자세로, 더욱 낮고 섬기는 마음가짐으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을 대하겠습니다.

저는 2년 정도 입시학원에도 있었고 인문계 학교에도 20년 정도 있었지만, 서울공고와 같은 특성화고는 처음입니다. '교문현답(교육문제는 교육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말처럼 교육현장에서 보고 듣는 것들을 중심으로 학교 발전과 교육혁신에도 기여하도록 애쓰겠습니다. 

저는 양천고에서 교편을 잡을 때도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다시 제가 학생들 곁으로 돌아왔으니, 해직 경험, 의정활동, 방송 및 교육전문기자 활동, 시민단체 활동 등 그동안 겪은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토대로 학생들의 꿈과 뜻을 키워주는 "더욱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양천고 재직할 때 수학여행 가서 우리 반 아이들의 발을 씻어주던 사진입니다. 그 때 그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 학생들의 발을 씻어주는 마음가짐으로 양천고 재직할 때 수학여행 가서 우리 반 아이들의 발을 씻어주던 사진입니다. 그 때 그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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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해야 할까요? 당연히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교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소질과 재능 계발을 위해 땀 흘리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고, 뜻을 세워주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그런 헌신적 노력과 열정으로 학생들은 성장·성숙할 것이고, 그렇게 변화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 교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한때는 대한민국의 희망이었으나 이제는 고통이 되었고, 교육문제는 교육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사실상 '출산파업'을 하고 있을까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중병으로 신음하는 한국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경종이기도 합니다. 경쟁교육에서 협력교육으로의 대전환 등 행복한 교육혁명을 이뤄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미력이나마 교육혁신과 교육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이, 하루속히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김형태, #교육의원, #공립특채, #공익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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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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