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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수험생 시절을 보내놓고 우리나라가 '학벌 사회'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관습대로, 그저 당연한 건 줄 알고 공부했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 후 서서히, 때로는 충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학벌 사회인지 깨닫게 되었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학교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없었지만 이야기해야 했고, 소개팅을 할 때도 콕 짚어 특정 학교를 조건으로 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서열을 나눈 학벌 문화는 늘 불편했다. 부끄러운 우월감을 갖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곧 어디선가는 열등감을 느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이런 불편함을 느낀 것이 분명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쩌다 우리는 괴물들을 키웠을까> 책표지
 <어쩌다 우리는 괴물들을 키웠을까> 책표지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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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를 뽑는데도 실력이 아니라 학력이 평가대상이 될 정도인 현실. <어쩌다 우리는 괴물들을 키웠을까>의 저자는 한국 사회의 학벌로 인한 뿌리 깊은 병폐에 주목한다.

누구나 아는 현실 진단일까. 그러나 제시하는 해결책은 사뭇 다르다. 대학 개혁, 입시 제도의 개선, 취직 전형 등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저자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감정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학력 문제의 근본 원인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졸업하지 않은 우리는 서연고 중심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한때 학력 위조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적이 있다. 저자는 그 사건에서 '위조'가 아닌 '학력'에 주목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왜 학력을 위조했는지, 과연 학력과 실력은 비례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법에 저촉되는 학력 위조를 했다면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마땅하지만, 명문대 졸업장이 다른 특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력 위조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한 사회인지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진짜 공정한 사회였다면 학력을 위조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투명한 신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을 확인하는 일보다 공정하게 실력을 평가하는 일이 훨씬 더 필요하다."

이런 학벌 사회에서 우위를 획득하지 못한 자들이 소위 '서연고' 출신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반응을 저자는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그들 앞에서 위축되거나, 그들의 인간성을 문제 삼거나, 그들의 성공을 부모 잘 만난 탓으로 규정하거나, 혹은 자신도 갈 수 있었다고 항변하거나. 저자는 그 모든 바탕엔 열등감이 공통분모로 있음을 지적한다.

누군가는 세상이 그러하므로, 억울하면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그러려면 서연고에 합류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해결책일까. 저자는 묻는다. 그렇게 서연고에 들어간 자들이 세상을 고칠 수 있냐고.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룰을 만드는 게 아니냐고.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논리의 허구, 그것이 오히려 부당한 룰을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니냐고,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책에 언급된 조사에 의하면, 최근 20년간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고위 인사들의 50%가 한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물론 서울대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과 학력이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럴 만한 자격을 정녕 갖추고 있는 걸까?

저자는 '부끄러운 서연고'라는 소제목으로 세 꼭지나 할애하여 이들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사회적 책임을 지녀야 할 자들이 국민을 개·돼지, 때로는 쥐로 지칭하는 행태, 기자에게 '너 진짜 맞는 수가 있다'라고 언성을 높이는 정치인, 공영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망가뜨려 버린 장본인 등 이루 다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미 보도를 통해 봤지만 들을 때마다 경악하게 만드는 이들이, 다 명문대 출신들이다.

물론 명문대 출신의 훌륭한 사람들 역시 많다는 것을 저자는 분명히 언급하면서도, 그 명문대라는 허울 자체가 그들의 인격이나 교양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는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저자는 우리의 교육이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지 않는 교육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교육이 진정한 목적과 본질을 상실하고 수단과 허상에만 집착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사회 시스템은 물론 우리 교육에도 문제가 있음을 직시하면서도, 저자는 처음의 화두로 되돌아간다.

"혹시 그들 마음대로 함부로 해도 되는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그런 괴물들은 만든 것은 아닐까?" 

저자는 열등감과 우월감은 결국 작용과 반작용이므로, 어쩌면 그들의 선민의식은 우리가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그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면, 그들의 우월감은 오히려 부끄러움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출신 대학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과 입시의 문제,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처럼 거대 담론 속에서는, 우리들은 학벌 사회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학벌 사회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런 거대한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이미 알았던 현실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저자는 책의 말미,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하기도 한다. 2010년 대학을 그만둔 당찬 학생의 '김예슬 선언'은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고,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는 것 역시 분명 긍정적이다.

뿌리 깊은 학벌 사회가 보통 사람들이 명문대에 갖는 선망과 열등감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진단, 그리고 이들이 그 선망과 열등감을 버리는 것이 그 병폐의 해결책이 될 거라는 저자의 생각에 나는 백퍼센트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스템의 변화와 개인의 각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함을 수긍하지 않을 리 없다. 오늘부터 내 안의 편견과 서열을 철폐해볼 일이다. 우리는 괴물이 아닌, 인간을 키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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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