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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광주시교육청 26지구 20시험장으로 지정됐던 광주 서구 화정동 광덕고등학교 정문이 16일 잠겨있다. 교육부는 경북 포항에서 지난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이날 치를 예정이었던 수능시험을 1주일 연기했다.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광주시교육청 26지구 20시험장으로 지정됐던 광주 서구 화정동 광덕고등학교 정문이 16일 잠겨있다. 교육부는 경북 포항에서 지난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이날 치를 예정이었던 수능시험을 1주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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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저녁, 정부의 전격적인 수능 연기 발표는 순간 '가짜 뉴스'로 오해할 만큼 충격이 컸다. 문상 중에 소식을 접했는데, 상주 역할을 하던 학교장은 교육청의 후속 조치 내용을 파악하느라 접객을 멈춰야 할 정도였다. 조문객 대다수가 교사였던 탓에, 근신해야 할 상가 주변이 상황을 궁금해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문자와 전화벨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수능 날 평상시처럼 등교하는지를 묻는 내용 일색이었다. 당장 시험장으로 지정된 학교에서는 다시 수업이 가능하도록 원상복구를 해야 하고, 급식도 준비돼 있지 않은 터라 정상 등교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교육청의 지침을 기다려야 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 교육청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듯 대응이 굼떴고, 결국 임시 휴업일로 결정이 났다.

고1, 2학년 아이들이야 때아닌 공휴일 소식에 싱글벙글했지만, 본의 아니게 수험기간이 일주일 더 길어진 고3들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다들 멍한 표정이었다. 수능 연기가 당연한 조치라면서도, 계획에 없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바로 매 맞을 순서였는데 뒤로 밀린 느낌이라고 했다.

수능 전날 밤 교실에서 담임교사, 친구들과 함께 수능 대박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쳤는데, 조금은 머쓱한 표정이었다. 급식소가 닫혔으니 고3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점심 도시락을 각자 챙겨왔고, 지난밤 내다 버린 참고서와 문제집을 주섬주섬 다시 주워들었다. 기숙사에서 짐을 모두 뺐는데, 다시 짐을 챙겨 들어가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놓는 아이도 있었다.

수업을 한다고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별도의 커리큘럼 없이 온종일 자습이다. 낮에는 수능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모의고사를 치르고, 밤에는 1년 365일 그래왔듯 야간자율학습 시간이다. 교실 안은 팽팽한 긴장감과 맥 풀린 허탈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고3에게 느닷없이 주어진 이번 일주일은 막바지 수능 준비에 '올인'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수능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도입된 지 20년도 더 지난 수능이라는 제도를 차분히 성찰해보게 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교사로서 지금껏 수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처음 실시됐던 1994년엔 군 복무 중이었고,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1998년엔 이미 정착 단계여서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전 학력고사 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한 나름 훌륭한 입시제도로 여겼을 뿐이다.

기존의 학력고사와는 전형 방식은 물론, 교과 영역과 출제 문항의 내용과 수준이 크게 달라 획일적인 공교육을 변화시킬 기회로 여겨지기도 했다. 기존의 방식대로 공부해서는 더 이상 높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시나브로 교과서의 내용과 수업 방식이 개선될 것이라 확신했다. 초임 시절엔, 보면 볼수록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입시제도였다.

수능 연기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진특강' 파는 학원가

하지만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지금, 수능을 호평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최근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학종)이 불공정하다는 불신이 워낙 팽배해있어, 그나마 수능이 공정하다며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의 인정을 받고 있을 뿐이다. 한낱 그런 이유라면 과거 학력고사와 현재의 수능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래선지 이따금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내놓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다.

시작은 거창했을지언정 더 이상 수능은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 아니다. 오로지 철저히 서열화한 대학에 점수에 따라 순서대로 진학시키기 위한, 간편하고 효과적인 변별 도구일 뿐이다. 오로지 계량화된 점수나 등급만이 공정하다고 믿는 우리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만 존재 가치가 남아있을 뿐, 도입 취지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말하자면,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꼴이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요령과 과거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을 얻는 방법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양한 문제를 많이, 그리고 자주 풀어보는 것 외에는 다른 왕도는 없다.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교과서보다는 요약정리가 된 참고서가 낫고, 참고서보다는 다양한 문제가 수록된 문제집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2018학년도 대입 수능이 연기된 16일 서울 중구 중림동 종로학원 옥상에서 수험생들이 전날 버렸던 문제집을 찾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2018학년도 대입 수능이 연기된 16일 서울 중구 중림동 종로학원 옥상에서 수험생들이 전날 버렸던 문제집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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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전날 많은 고3 아이들이 손때 묻은 참고서와 문제집을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갈기갈기 찢어 폐지 수거함에 던져버렸다. 널브러진 책들로 고3 교실은 순식간에 쓰레기장이 됐다. 한때 밑줄 긋고 별표 치며 애지중지하던 책들이지만, 수능이 끝나면 더는 쓸모가 없다고 여긴 탓이다. 정작 삶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수험용' 지식일 뿐이라는 걸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수험용' 지식은 소기의 목적을 다 하면 허공의 연기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다. 수능이 끝나고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지난 3년간 죽기 살기로 머릿속에 욱여넣은 지식들이 깨끗하게 지워지는 놀라운 경험을 아이들도 곧 겪게 될 것이다. 오로지 수능을 위한 것일진대, 가방 속 참고서와 문제집은 그저 머릿속 지식보다 하루 전날 버려지는 것일 뿐이니 딱히 놀랄 것도 없다.

하긴 출제 유형을 익히고, 경향을 파악하며, 선다형 문제의 답을 귀신과 같이 맞히는 능력이 온전한 지식일 수 없다. 고작 그걸 가지고 아이들의 재능과 자질을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고도 위험하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삶과 괴리된 '학력'을 위해 다시 못 올 아이들의 이팔청춘을 다 쏟아붓도록 다그치는 건, 교사로서 무책임하고 비겁한 짓이다.

수능 연기 발표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진 특강'이라는 황당한 이름을 내건 사교육이 등장했다. 지진 피해가 속출하는 와중에도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사교육의 순발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리 수험생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돈벌이 수단 삼는 게 사교육이라지만,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마저 그들에게 '블루오션'이 될 수 있는 것도, 거칠게 말해서 수능 덕분이다.

"지진보다 수능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수능은 고3의 교육과정까지 흔들고 있다. 고등학교의 운영 체제는 하나이면서, 둘이다. 고1, 2학년까지는 있는 그대로의 학사일정을 따르지만, 고3은 모든 게 '예외'다.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은 물론, 소풍과 체육대회 등 학교행사는 사실상 고2 때 끝난다. 방과 후 수업 내용도, 방학기간도, 심지어는 교내 시험 일정조차 다르다. 오로지 수능을 위해서다.

고3이 되면 수업 방식도 대부분 강의식으로 바뀐다. 1, 2학년 때 다양하게 진행되던 모둠수업도, 협동학습도, 프로젝트 수업도 '올 스톱'된다. 수능과 연계된 EBS 문제집을 푸는 데 되레 방해되기 때문이다. 정시를 준비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학종에 지원하려는 아이도 문제 풀이에 소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고3에겐 EBS 문제집이 교과서고 노트다.

또, 고3은 학생회 운영에서도 손을 떼는 게 관행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회장은 고2가, 부회장은 고1이 맡고 있다. 이따금 고3이 호출될 때도 더러 있지만, 학생회 활동의 주축은 고2다. 선후배 관계가 돈독한 동아리에서조차 고3이 낄 자리는 없다. 학생회든, 동아리든 고2 겨울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이 역시 수능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포항지진으로 2018 대학수학능력평가가 일주일 연기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포항지진으로 2018 대학수학능력평가가 일주일 연기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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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나라에선 지진보다 수능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튿날 한 고3 아이가 '공부가 당최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푸념하며 건넨 말이다. 지진으로 수능 연기를 발표한 당일과 이튿날을 제외하곤 포털의 검색어 순위에서 수능이 지진을 훨씬 앞섰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도 갑작스런 수능 연기로 인한 부작용을 강조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마치 지진 관련 기사가 지엽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는 제 코도 석 자면서 '포항 친구'들을 더 걱정했다. 자신도 이렇게 심란한데, 직접 지진 피해를 본 그들은 얼마나 힘들겠냐는 것이다. 일주일 시간을 벌었다지만, 여전히 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수능을 치르게 될 것이라며, 그들을 위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공평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원 외로 더 뽑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막바지 수능 공부를 하는 대신 생뚱맞게 원전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차피 앉아있어도 집중이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얼마 전 공론화위원회의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공사 재개 결정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공론화위원회를 열었다면 압도적으로 정반대의 결정이 났을 거라면서, 어쨌든 탈핵의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한 아이는 수능 한 번 안 치른다고 세상이 무너지느냐며 호기롭게 말하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더 공부한다고 수능 점수가 크게 오를 것도 아닌데, 차라리 포항으로 달려가 지진 피해 복구 작업에 손을 보태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거다. 비록 허풍일지언정, 그의 말에서 수능보다 훨씬 더 소중한 교육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난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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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