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은 상무 야구단 지원 마감일이었다. SK 와이번스의 백업 포수 이홍구를 비롯해 넥센 히어로즈의 임병욱과 김웅빈 등 올해 1군에서 적잖이 활약한 선수들이 대거 상무 야구단에 지원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상무에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던 두 선수의 이름은 빠져 있다. LG 트윈스의 유격수 오지환과 외야수 안익훈이다.

사실 안익훈의 입대 연기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2015년 LG에 입대한 1996년생 안익훈은 이제 프로에서 단 3년을 보냈다. 작년까지는 '수비 스페셜리스트'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올해는 타격에서도 장족의 발전(타율 .320 70안타)을 이뤄냈다.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에 내년 시즌 연봉 상승과 1군에서의 높은 활용도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굳이 입대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지환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2009년 프로에 입대한 오지환은 이미 프로에서 9년을 보냈다. 게다가 오지환은 올해 만27세로 군경 야구단에 갈 수 있는 마지막 나이다. 올해 상무에 지원하지 않은 오지환이 추후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하면 군복무와 야구를 병행할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오지환은 LG잔류를 선택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사활을 걸겠다는 뜻이다.

2010년대 LG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성장한 오지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야구에서의 리빌딩과 세대교체도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지만 안타깝게도 LG의 유격수 리빌딩은 그리 자연스럽지 못했다. 1994년 '꾀돌이' 유지현이 90년대 LG의 황금기를 화려하게 수놓았지만 잔부상이 많았던 유지현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다행히 유지현의 기량이 저물 때 즈음 성남고의 '천재 유격수' 박경수(kt 위즈)가 등장하면서 LG의 유격수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박경수 역시 입단 초기부터 이런 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타격은 물론 유격수 수비에서도 기대한 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7년부터는 아예 2루수로 변신했했다. 유지현의 포지션과 함께 등번호까지 물려 받은 초특급 유망주치고는 실망스런 성장 속도와 결과였다(결국 박경수는 서른이 훌쩍 넘은 2015년 kt 이적 후에 2년 연속 20홈런을 터트리며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박경수가 LG 유격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은 LG는 고교야구에서 또 한 명의 엄청난 인재를 발견했다. 2008년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우승멤버이자 지명타자 부문 올스타에 선정된 경기고의 오지환이었다. LG는 1차 지명으로 선택한 오지환에게 3억 원의 몸값을 안겼고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오지환을 주전 유격수로 출전시켰다(LG는 시즌 중반 또 다른 유격수 자원 권용관을 트레이드시켰을 정도로 오지환에게 힘을 실어줬다).

오지환은 손목과 손등 부상으로 63경기 출전에 그친 2011년을 제외하면 매 시즌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LG의 주전 유격수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물론 삼진왕 2회(2010,2012년), 실책왕 4회(2010,2012,2013,2014)라는 '불명예 기록'도 있지만 책임감을 갖고 꾸준히 경험치를 쌓은 오지환은 점점 뛰어난 유격수로 성장해 나갔다.

특히 2016년은 오지환이 KBO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자리 잡았음을 증명하는 시즌이었다. 121경기에 출전한 오지환은 타율 .280 20홈런78타점73득점17도루라는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렸고 약점으로 지적되던 삼진도 97개까지 줄였다. 비록 골든글러브는 '우승 프리미엄'을 얻은 김재호(두산 베어스)에게 돌아갔지만 사실 오지환이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됐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즌이었다.

쟁쟁한 경쟁자들과 불리한 환경, 실력으로 뚫어낼까

작년 시즌이 끝나고 경찰 야구단에 지원했다가 문신 때문에 입대가 좌절된 오지환은 올 시즌을 통해 KBO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등극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107경기에 출전한 오지환은 타율 .272 8홈런39타점으로 2015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8월에 당한 발목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막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오지환의 부진은 분명 LG의 가을야구 실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군입대를 앞둔 마지막 시즌을 만족스럽게 보내지 못한 오지환은 군경 야구단 입대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내년 아시안 게임 대표팀 선발을 통해 병역 혜택을 노리겠다는 뜻이다. 만약 오지환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거나 대표팀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다면 오지환은 현역이나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병역의무를 마쳐야 한다. 당연히 몸 상태와 경기감각 유지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내년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는 대표팀의 환경이 오지환에게 썩 유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선동열 감독은 이번 APBC 2017 대표팀을 선발하면서 "지금 선발된 멤버들을 중심으로 내년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꾸릴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대표팀에 유격수를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은 무려 4명(김하성, 하주석, 정현, 류지혁). 그 중 군미필은 김하성(넥센 히어로즈) 한 명 뿐이지만 김하성은 현재 대표팀의 붙박이 4번 타자로 활약하고 있다.

병역 문제와 상관없이 성적으로 대표팀을 선발한다면 오지환은 더욱 불리해진다. 올해 타격왕을 차지한 KIA 타이거즈의 김선빈과 풍부한 대표팀 경력을 가진 2015, 2016년 골든 글러브 수상자 김재호, 그리고 올해 타율 .302 23홈런114타점16도루를 기록한 김하성 같은 쟁쟁한 유격수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프로 입단 후 대부분 유격수만 맡았던 오지환을 쓰임새가 많은 멀티 플레이어로 구분하기도 어렵다.

이제 오지환이 내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는 길은 하나 뿐이다. 내년 시즌 누구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 선동열 감독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다. 과거에도 대표팀 선발을 염두에 두고 '군경 야구단 입대'를 포기했다가 선수 생활 전체가 꼬인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 상무 입대를 포기하고 아시안게임 출전에 사활을 건 오지환의 도전은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LG 트윈스 오지환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