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출중한 능력과 운이 겹쳐져서, 회사에서 소위 '잘 나가고' 있는 친구 하나가 있다. 최근에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이 회사에 들어왔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듣자하니 제 자랑이다. 그 '녀석'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길, '선배님과 함께 일하게 되어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다고. 뿐인가. '선배님은 제 롤모델입니다. 직장뿐 아니라 인생에서도요.' 낯간지러움에 설핏 웃음이 나온 것은 순간. 곧이어 나는 열을 올려가며 친구에게 말했다.

"직장에서 아부 떠는 사람들 보면서 참 가관이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냐 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좋아라하는 상사가 너였구나? 그러니 그게 계속되는 거였어. 나도 해봐서 아는데, 그거 다 뻥이야. 잔망스러운 친구가 고생하네! 그건 그렇고, 사회에서 만난 다 큰 성인한테 '녀석'이 뭐냐? 뭐 얼마나 봤다고. 야, 너 꼰대 다됐어!"

<꼰대의 발견> 책표지
 <꼰대의 발견> 책표지
ⓒ 인물과사상사

관련사진보기

<꼰대의 발견>을 읽으며, 뒤늦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친구에게 풀어놓은 썰이야말로 그야말로 꼰대질이었다는 것을. 내가 뭔데 타인을, 그들의 관계를 규정하는가. '내가 해봐서 아는데' 운운은 또 웬말이더냐. 새록새록 떠오르는 나의 크고 작은 꼰대질에 낯이 뜨거워졌다.

저자 역시 사적 질문들을 마구잡이로 해대는 꼰대들이 싫었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도 그 대열에 동참한 걸 깨달았다고. 자신보다 더 강력한 꼰대들을 비난하곤 했지만, 그들에게서 자기 안의 꼰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저자의 통렬한 자기 인식과 더불어 책을 읽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의 부제는 '꼰대 탈출 프로젝트'다. 꼰대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력갱생 프로젝트, 그 길라잡이랄까. 저자가 한 마디로 정의하는 꼰대란 이렇다.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충고하는 걸, 또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자."

저자는 우월감의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자신이 특별하다고,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현실을 꼬집는다. 특히, 이 우월감이 능력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날 뜨끔하게 했다.

"더 도덕적이고, 더 선하며, 더 이성적이고,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더 동정심이 많고, 더 다정다감하다는, 우월감과 특별함."

그는 말한다. 그것은 자신감도 자존감도 아니며, "어떻게든 남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뒤틀리고 저열한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렇게 우월감이 깃든 특권의식, 타자와 자신이 다르다는 착각은 곧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민중을 개·돼지라고 말한 고위 공무원의 망언도, 만나면 당연하다는 듯 출신대학, 직업, 결혼 유무 등을 묻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대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살기에, 그 일상적 폭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만의 동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남이 살고 있는 세상이 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살고 있다 해도 각자가 살아온 삶은, 앞으로 살아갈 삶은 모두 다르다. 다른 삶을 인정하는 게, 바로 꼰대 탈출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꼰대의 사례들은 하나같이 현실적이다. 아무한테나 반말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격과 정체를 드러내는 사람들,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자신을 알아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권력이 있다고 권위까지 넘보는 사람들. 이들에게 다름은 없고 오직 우열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이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노력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규정하지만, 저자는 그 허위를 놓치지 않는다. 모든 지표가 증명하듯, 교육은 이미 계층 이동 수단이 아니라 부의 세습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저자의 말마따나, 결국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것은, 어린 아이가 제 아빠 힘자랑하는 수준과 다르지 않은 유치함일 뿐이다. 책은 그것을 인식해야 꼰대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꼰대는 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서열 매기기 문화는 꼰대와 뗄 수 없는 관계다. 대학 서열로는 모자라 같은 학교에서도 수시·분교·편입 등을 따질 정도이고, 직장에서도 정규직·비정규직, 직위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이는 곧 신분이 된다. 헌법이 모든 국민의 평등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했으나 우리 사회는 신분 사회·서열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저자의 분석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신분과 서열이 권력 남용으로 이어진 사례들은 언제 들어도 몸서리가 쳐진다. 땅콩 회항 사건, 도의원을 개에 비유한 전 경남도지사, 백화점 주차요원을 무릎 꿇린 모녀 등. 21일엔 한화 김승현 회장 셋째 아들의 술집 폭행 사건 소식도 들린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그들은 모욕과 무례로 타인들의 인격을 죽이고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살인 행위임이 분명하다. 또한 안타까운 것은, 이런 꼰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나와는 영 거리가 멀다고 생각이 든다면, 최근에 누군가에게 볼썽사나운 충고를 하진 않았는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 한승태가 쓴 <인간의 조건> 한 대목을 재인용하면 이렇다.

"우리는 충고라는 사치를 만끽하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충고란 자신과 이웃에게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책에서 분명히 하듯, 타인을 꼰대로 규정하는 것 역시 소통의 단절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내가 당한 것을 타인에게 되갚지 않으려는 마음, 타인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과 스스로에 대한 겸손. 이것만이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저자는 주장하며, 나는 이에 완전히 설득 당했다.

책을 읽으며, 다른 건 몰라도 꼰대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자부했던 것을 돌아보게 됐다. 저자에 따르면, 성찰하는 꼰대란 어불성설이렷다. 나는 흠이 많은 인간이지만, 이 작은 성찰이 나를 꼰대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동아줄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걸어본다. 우리 모두, 꼰대는 되지 맙시다!


꼰대의 발견 - 꼰대 탈출 프로젝트

아거 지음, 인물과사상사(2017)


태그:#꼰대의 발견, #아거, #인물과사상사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