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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에 발생한 청소년들의 흉포하고 잔인한 폭력사건 후 소년법 폐지와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공분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한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정 현안 중 가장 많은 참여를 이끌어낸 이슈였지만, 차츰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특정사건만 터지면 여론은 요즘 10대들의 범죄가 점점 대담하고 잔혹해지고 있으니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한다. 가해학생들을 '괴물'이나 '악마'로 규정하고 사회방위를 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응보주의에 입각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이 매스컴을 장식할 때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행청소년 문제에 대해 입을 닫는다. '청소년 보호법'과 '소년법'을 구분 못 할 정도로 다수의 대중들에게 생소하고 무관심한 문제이기 때문에, 잔혹한 사건이 발생할 때만 일시적인 여론의 관심을 받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범죄가 뉴스를 장식할 때만, 진지한 사회적 성찰이나 토론 없이 엄벌을 요구하는 '강 건너 불 구경'식의 접근은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할 수 없다. 소년범죄는 양극화, 결손가정, 가정폭력, 공교육의 붕괴, 물질만능주의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점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보호처분은 거리를 헤매던 아이들의 주머니를 뒤져 절도한 장물을 저울에 매달아 벌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왜 집을 뛰쳐나와 범죄를 저지르는지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학교 밖 청소년에게 교복을 입혀주는 것이다. 소년범죄의 책임은 기성세대와 사회에 있다는 자각과 성찰을 전제로 아이들을 교정, 교화하여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는 것이 소년법의 이념이자 목적이다.

현재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소녀와 소년원에 재원 중인 소녀가 직접 쓴 글을 통해 우리가 '비행청소년'이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잠깐 귀를 기울여보자.

'비행청소년'이라 불리는 저희 생각은 이렇습니다

요즘 SNS로 퍼져나가던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과 은평구 집단 폭행사건 등 여러 가지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행청소년에 대한 안 좋은 시선들이 늘어났고 소년법 폐지에 관한 논란과 처벌강화에 대한 목소리들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런 사례들뿐만 아니라 거리를 방황하는 비행청소년의 나이도 어려지고 비행의 수위도 점점 높아지면서 어른들의 걱정과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청소년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보는 일부 어른들에게 저는 애초부터 나쁜 청소년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처음부터 비행을 저지르던 청소년이 아니었습니다.1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 채 할머니 손에 키워진 저는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던 터라 태권도 선수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부유하지 못하고 화목하지도 못한 가정에 불만 한 번 가져본 적 없이 할머니께서 주신 따뜻한 사랑 하나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뀌어 버린 것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12살, 저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재혼으로 전부였던 할머니와 이별하게 되었고, 새어머니의 구박 속에서 갇혀 살았습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하루가 어린 나이의 저에게는 감당하기 두려운 일상들로 가득했고, 할머니와의 행복했던 순간이 끝나버린 저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집에서 가출을 한다는 건 단순히 집을 나가서 반항하는 것이 아닌 틀어막힌 제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만이 제가 집을 벗어나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온 소녀가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길거리를 전전했고, 처음에 손을 떨며 물건을 훔치던 아이는 나중에 절도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으며 하루를 살기 위해 범죄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했습니다. 더 이상 생활이 안되고 비행 일상에 지친 아이는 한 번에 큰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했고, 앳된 얼굴에 두껍게 화장을 칠했으며 속이 다 파여 얼마 가려지지 않는 천쪼가리를 몸에 두르고 길거리를 전전하며 아빠뻘 되는 사람들과 몸을 섞습니다.

이 소녀가 애초부터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다면, 언제 병에 걸리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무서운 세상 속 길 위의 소녀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처럼 저와 비슷한 상처를 받고 비슷한 사례들로 가정환경이 불안정하고 나쁜 친구들과의 어울림만이 삶의 낙이었을 아이들과 정해진 규칙에 얽매여 있는 학교생활에 해방을 원하던 아이들이 모두 사회에 나와 반항하게 되면서 사회에서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혀버린 아이들은 상당수에 해당하게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며 비행을 저지르고 다른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크다는 걸 어른들은 알지 못합니다. 애초에 피해자였던 아이들을 가해자로 만든 사람들, 즉 어른들이 다시 이 아이들이 세상과 만나는 것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 아이들은 버틸 수가 없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그 비행청소년과 손을 잡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만든 게 청소년들만의 잘못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순간에 누군가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면 비행청소년이 아닌 평범한 청소년의 삶으로 더 빛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방치하던 청소년들에게 유일한 해방 길이었던 '자유'마저 빼앗아 가려고 한다면, 사회라는 어려운 문제 속에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알려주지 않은 정답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청소년들의 삶은 누가 책임져 주나요?

일부 비행청소년들의 범죄행위로 인해 다른 비행청소년들의 모습들까지 판단하고 처벌을 강화시키고 아이들을 구속하려고 한다면, 이 아이들은 꿈도 꾸지 못하고 아무런 시도조차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소년법에 관해서만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전에 이들이 왜 방황하게 되었고 어떤 아픔을 겪었으며 어떤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 건지 한 번 더 생각하고 공감하고 아파본다면, 그 누구도 어리고 어린 10대에게 무서운 비행청소년이란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겁니다.

작은 상처라도 느끼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게 사람이고 아이입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들에 대하여 다 알지만 죄는 죄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어른들을 보면, 비행청소년들이라 불리는 그 어린 10대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아파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이 무섭고 감당하기 버거운 집을 벗어나 세상에서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년보호시설이라 불리는 철창 속에 보호라는 이름으로 유치하려 한다면, 그 전에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조치 방안들이 더 생겨야 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아야 합니다.

자꾸만 비행청소년들을 일반 청소년과 분리하고 비교해서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 같은 비행청소년도 언제든 꿈을 꿀 준비가 되어있는 어린 10대에 불과하니까요. 아이들이 더 강력한 처벌을 받음으로 인해 바른 청소년으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세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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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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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해주세요

나를 그런 혐오스러운 눈으로 보지마. 나도 교복 입고 급식실에 가고 싶어. 훔친 옷, 뺏은 옷 입고 거리의 무료급식소 앞에서 침 찍찍 뱉고 밥 기다리는 내 모습이 처음부터 당연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네?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무 이유 없이 맞은 날들을 센다면 아마 밤을 새워도 모자랄 거예요. 나는 왜 맞고 산 거죠. 맞기 싫어 집에서 나왔는데 밖은 왜 더 잔혹하죠.

날 벌주고 싶다면 이유 없이 날 때린 나쁜 어른들 모두 다 벌주고 오세요. 나를 그런 동정의 눈으로 보지마. 어딘가 깊숙이 꼭꼭 숨어버리고 싶어. 아아, 너도 길을 잃었구나. 너도 교복을 벗었구나. 나와 같이 가자. 내 손을 잡으렴.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더니 내 얼굴을 보곤 일어선다. 니 얼굴도 내 얼굴 같구나. 왜 지금까지 상처를 놔뒀어? 이 멍청아 상처가 곪아서 터졌잖아. 너도 마찬가지인 걸 아아 우리 같이 우릴 사랑해줄 사람이 오기 전까지 같이 숨자. 저 밑으로 가자.

학교에서 우릴 눈엣가시로 보는 사람들의 눈은 새까매. 술만 마시면 날 때리던 아빠 눈이랑 똑같아. 웅크리고 있던 아이는 이름이 없대. 이년아 저년아 소리만 듣다 보니 자기 이름을 잊어버린 거야. 그 애는 말했어. 자기도, 자기 친구들도 가족이 없대. 너는 있냐 물었지. 아아 이년아 나는 이제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새까만 눈을 가진 무서운 사람들이 나를 다그쳐. 무조건 나는 나쁜 년이고 내가 옳지 않대. 왜지?

이년이는 씽긋 웃었어. "너도 나와 같구나. 역시 니 상처도 내 상처와 같았어. 다행이다." 하는 표정 같았어.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 우릴 사랑해줄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거든. 그래서 까만 눈이 아닌 맑은 눈의 새 가족들과 함께 거리를 나섰어. 남의 물건을 훔치고 뺏고 때릴 땐 잠깐 잠깐씩 눈 색이 바뀌곤 했지만 어쩔 수 없잖니? 아무도 우리에게, 나에게, 잘못한 거라고 이런 건 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이유 없이 맞고 욕먹었던 날처럼 내가 사람들을 때리고 욕먹을 짓을 한 날들이 비슷해질 때쯤 나는 이상한 곳으로 끌려갔어. 내 가족들도, 이년이도 날 외면했고, 나는 어리둥절해 있는데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이 말하더라. 그 사람 눈은 무슨 색이었더라.

소년원 장기 2년 땅땅땅!
아아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날 사랑해줄 사람은 혹시 저기 있는 걸까? 그곳에서 나는 처음에 너무너무 아팠어. 내가 잘못한 걸 알게 됐지만 나와는 다르게 생긴 애들이 너무 많더라. 모두 다 아픈 애들이어서였을까. 자신을 감추고 숨기는 모습들에선 뾰족뾰족한 가시들이 돋아있더라고.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가시에 찔리지 않곤 못 배겼어.

그 후 제일 큰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건 내 눈 색깔이 어느샌가 검정색으로 변해있었다는 거야. 내가 제일 싫어하던 당신들의 눈동자 색 말이지.

한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던 나를 원망했어. 또 한 가지를 더 알게 된 게 있어. 날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내가 먼저 나섰어야 했는데, 나는 숨어서 기다리기만 했다는 거지. 날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잘못한 걸 알려주더라. 욕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았어.

선생님. 혹시 저를 사랑하세요?
잘못만 안 하면 항상 사랑하지!
그날 화장실 거울에는 까만 눈은 없어지고 맑은 눈을 한 내가 있었다.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 잘못을 빡빡 지울 순 없지만, 잘못한 걸 깨닫고 반성하는 방법도 알았고.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마.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해야 됐던 거야. 왜 깨닫지 못했을까. 지금보다 조금 더 느리게 내 사랑 방법을 찾았다면 내가 교도소에 가게 될지도 몰랐다니. 아니에요. 나는 잘못한 게 없었어요.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더 늦었을 거야. 나를 먼저 구박하지 마세요. 나를 조금이라도 도와주셨더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거예요. 당신의 까만 눈이 아니었다면 말이야.

그래도 여기서 멈추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년이도 구해줘. 꼭 그래줘요.
마지막 기회. 내 행동에 대한 대가와 잘못. 이제야 난 알았어.

이제는 소년범죄의 그늘과 이면을 들여다보자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을 앞둔 소녀는 담임교사, 임상심리사, 상담교사, 전문분류심사관과 함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인성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편지를 쓸 것이다.

필자가 '소년원 이야기'를 연재하는 이유는 비행청소년은 사회방위를 위해 격리돼야 할 암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소외계층이며,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건전한 청소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이자 국가적 사명임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통해 알리기 위해서다.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보다 재범방지와 예방이 청소년범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인 이유는 비행청소년 선도와 교육을 위한 정책과 조직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년법과 보호처분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고 법무부 산하 기관인 청소년비행예방센터(청소년꿈키움센터), 보호관찰소,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의 임무와 기능에 대해 편견 없이 다가가는 것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자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될 것이다.

차별과 경쟁이 없고, 소외와 편견이 없는 소년원 학교의 교실 문을 열어보자. 이젠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 때도 되었으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쳤지만, 애써 외면했던 아이들이 맑은 눈으로 뒤돌아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은 위기청소년의 소년사범 진입 차단과 범죄소년의 재범 방지를 위해 전국에 17개의 청소년비행예방센터(청소년꿈키움센터)와 10개의 소년원, 서울소년분류심사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그:#소년법, #학교폭력, #청소년 범죄, #소년원, #비행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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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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