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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 사진입니다. 출처는 Unsplash. 저작권 없는 사진입니다. 만든 이는 Alex Knight입니다.
▲ AI 로봇 AI 로봇 사진입니다. 출처는 Unsplash. 저작권 없는 사진입니다. 만든 이는 Alex Knigh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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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핫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 자체를 거부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 단어를 이용해서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학자들이 훨씬 더 많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하여 볼 것은, 식당 예약을 대신 해주는 스피커나 자율주행 자동차가 아니라, 레이 커즈와일로 대표되는 일군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소위 '특이점의 도래'다.

인공지능과의 융합으로 인해,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한 차원 더 진화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는 주장이다. 상상력이 조금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꽤나 그럴싸한 예측이다. 반면, 제리 카플란과 같은 인공지능학자는 특이점의 가능성을 단칼에 거부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테마파크와도 같다.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대중은 관대하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예측이 맞기라도 하면 예언자는 신성의 오라에 휩싸여 거대한 추종자의 무리를 거느리는 선지자가 된다. 잃을 것 하나 없는 도박이다.

4차 산업혁명의 향방에 대한 예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인간의 상상력은 과연 미래를 예측할 도량이 되는지, 한 번 되짚어 보게 된다.

반도체 산업에는 무어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이제는 그것을 능가하는 '황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18개월마다 같은 크기의 반도체가 수용하는 용량이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지수적 성장, 흔히 들어본 말로 기하급수다. 현대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반도체 산업의 이야기다. 10년 뒤에는 같은 크기의 칩에 100배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

1943년에 토머스 왓슨 IBM 회장은 세상에 컴퓨터는 다섯 대 정도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1981년, 빌 게이츠는 640kb면 컴퓨터로 무슨 일을 하든 충분한 용량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몇 년 전에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를 SSD로 바꾸었는데, 졸지에 저장장치 용량이 1TB에서 128GB로 약 1/10이 되었다. 128GB면, 빌 게이츠가 충분하다고 했던 용량의 20만 배다. 그런데 용량이 부족해서 정말 죽을 지경이다.

체스의 기원에 관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체스를 만든 사람에게 왕은 큰 상을 내리기로 했다. 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는 왕의 질문에, 그 사람은 체스의 64개 칸에 밀알을 놓아 달라고 청했다. 첫 칸에는 한 알, 다음 칸에는 그 두 배인 두 알, 그다음 칸에는 또 그 두 배인 네 알, 이렇게 말이다. 결과적으로 왕은 파산했다.

커다란 호수를 채우는 사고 실험을 해 보자. 오늘은 한 바가지, 내일은 그 두 배인 두 바가지, 모레는 또 그 두 배인 네 바가지의 물을 호수에 붓는다. 이번에는 호수가 꽉 찬 시점에서 역산을 해본다. 호수가 꽉 찬 날에는 물이 100% 차 있다. 그 전날에는 50%, 또 그 전날에는 25%다. 호수가 꽉 찬 날에서 일주일 전으로 가면, 호수의 물은 겨우 전체 용량의 0.78%만 차 있을 뿐이다. 호수에 물이 1%도 안 차 있으니, 호수 바닥이 갈라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 광경을 보고, 일주일 뒤에 호수가 꽉 찰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기하급수는 보이지 않는다. 너무 작은 것도 보이지 않지만, 너무 큰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그린이 <우아한 우주>를 쓸 당시만 해도, 초끈이론의 주류는 시공간의 4차원을 제외한 나머지 차원이 미소 공간으로 말려 들어가 있을 정도로 작아서 관측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티븐 호킹은 <호두껍질 속의 우주>에서 반대로 그 여분의 차원이 너무 커서 우리에게 관측되지 않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구 표면에 선 인간에게 지구의 곡면의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상상력에 비해 기하급수는 너무 크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이거다. 인간의 뇌는 지수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종이를 반으로 접는 것을 50번만 하면 그 두께가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된다는데, 상상이 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기 이전부터 이미 우리 주위에는 기하급수를 타고 성장하는 각종 산업과 기술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기하급수를 머릿속에 그리지도 못하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율주행차 상용화는 2025년, 특이점 도래는 2047년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 우리의 상상력은 미래를 제대로 보고 있을까.


태그:#4차 산업 혁명, #미래 예측, #지수적 사고의 어려움, #무어의 법칙, #상상력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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