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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초등학교의 건물 외벽이 무너져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드러나있다. 교육부는 포항 지역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이날부터 이 지역 초등학교 66곳과 중학교 36곳 등도 17일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 휴교령 내린 포항 초등학교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초등학교의 건물 외벽이 무너져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드러나있다. 교육부는 포항 지역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이날부터 이 지역 초등학교 66곳과 중학교 36곳 등도 17일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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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제 종합적인 상황 판단 끝에 수능 연기를 결정했습니다. 특히 수능을 준비해온 수험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결정을 흔쾌히 수용하고 동의해 주셨습니다.


포항과 인근 지역 수험생들의 아픔을 함께 감당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수능의 공정성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후 입시 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대비하겠습니다."

16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페이스북 등을 통해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 지역 주민들과 수험생들을 위로하면서 '수능 연기'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의 '수능 연기' 결정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문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자연재해로 인한 이번 대학 입시 시험 연기 결정은 실제로도 사상 초유지만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역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설명하면서 당부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수능의 1주일 연기로 인해 학교, 교육지원청 등 교직원 여러분들의 업무에 긴장이 더해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험지 보안과 1주일 뒤 치러질 수능의 원활한 진행 등을 위해 조금 더 애써주실 것을 당부 드리며,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회는 금융위기 등 어려움이 닥쳤을 때 더욱 협력하고 지혜를 발휘하여 슬기롭게 극복한 무수한 전례를 만들어왔습니다. 이번의 천재지변으로 인한 혼선 또한 서로 배려하고 어려움을 나누어 슬기롭게 이겨나가기를 소망합니다."

패러다임을 바꾼 무시무시한 정부

15일 저녁 8시경, '수능 연기'를 발표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안전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김 장관은 이번 '수능 연기'를 발표하며 "학생 안전이 중요하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수능 연기에 따른 혼란상이 불을 보듯 뻔할 수 있지만, '안전 불감증' 사회라 지적받았던 한국 사회에서, '교육열'이라면 전 세계에서 뒤지지 않을 한국에서 대학 입시의 연기는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프레임을,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와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질문이 바로 "만약 서울이었다면?"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이 질문은 한국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송곳 역할을 해 왔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교 학생들이 "만약 서울 강남 지역 학생들이었다면?"이란 질문이 가능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불평등 구조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수능 연기 결정을 환영하는 여론은 '안전'과 함께 한국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불평등 감수'에 대한 인식을 바꿀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15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회자되고 있는 글도 이런 맥락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본인을 현직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글쓴이 역시 이 점에 동의하고 있었다.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15일 오후 이낙연 총리가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15일 오후 이낙연 총리가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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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능 연기는 우리나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 같네요. 우선 저는 작년에 고3 담임이었고 내일 예정되어 있던 수능에 한 다리 정도 걸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태껏 우리가 살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효율성과 안전, 다수의 불편과 소수의 불이익이 충돌할 때는 늘 전자가 우선시되는 나라였죠. 거기에 플러스로 당국자나 책임자의 면피가 따랐고요.

"뭐 조금 불안하다고 여태껏 해오던 걸, 예정되어 있던 걸 그만 두거나 연기하자고?"
"뭐 몇몇 사람 피해 본다고 다수가 불편한 걸 참으라고?"

이게 여태껏 수십 년 살던 대한민국의 주된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늘 책임질 자리에 있던 인간들은 면피하거나 묵살하기 일쑤였고 뉴스에서는 늘 막을 수 있던 인재였다고 떠들고 지나가고 사람들은 분노하거나 상처받으면서도 이게 우리나라 수준이려니 했었죠. 저도 역시 정권이 바뀌었어도 설마 내일이 수능인데 연기까지야 하겠어, 했었습니다.

근데 이 무시무시한 정부는 여태까지의 수십 년 간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꿔 버리네요. 효율성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라고, 소수의 불이익과 피해를 덜기 위해 다수의 불편은 양보하자고 책임자인 교육부장관과 행안부장관이 직접 뛰어 다니면서 결정하고 발표하네요."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수능도 연기하는 나라가 됐다" 

 15일 오후 대구시 동구 봉무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대피해 있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2시 29분께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6㎞ 지점에서 규모 5.5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대구시 동구 봉무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대피해 있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2시 29분께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6㎞ 지점에서 규모 5.5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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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여전히, '수능 연기 혼란'과 같은 제목을 단 보도들이 적지 않다. <포항 생각하면 수능 연기가 맞는데…59만 수험생 대혼란>이란 <조선일보> 기사가 대표적이다. 수험생과 수험생 가족은 물론 사교육 시장과 관련 업계에서 혼란이 잇따르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과연 그럴까. 1주일간의 '대혼란'이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정부만 놓고 봐도 그렇다. 지난해 경주 지진 당시 우왕좌왕했던 박근혜 정부는 무능력의 극치를 선사했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 '살려야 한다'는 패러디 사진까지 배포했던 메르스 사태를 겪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한 치도 나아진 게 없는 무능력한 정부였다.

그에 비해 외국 순방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 대신 이낙연 총리의 진두지휘 아래 현 정부는 이번 지진에 대한 신속한 대응으로 국민들의 귀감을 샀다. 더욱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과 경각심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는 현실 아닌가. 그런 점에서, 국민들과 수험생 한 명 한 명의 안전을 강조하는 동시에 다수가 먼저 불편을 감내하자고 다독이는 현 정부의 자세는 '정권 교체'의 순기능을 실감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수능도 연기하는 나라가 됐다.
지진에 학교가 흔들려도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하라고 했던 나라였는데."

트위터 상에서 큰 호응을 얻은 하상욱 시인의 트위터 글이다. '가만히 있으라'던 정부로 인해 고통 받던 우리 국민들은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으니, '국민들도 함께 불편을 감내해달라'고 호소하는 정부를 맞이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 국민적 트라우마에 고통받았던 국민들이 촛불 혁명을 통해 맞이한 정부다.

수능 연기로 인한 혼란상도 조명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국민 안전'을 강조한 정부의 변화상을, 피해를 본 소수를 위해 다수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자는 현 정부의 철학을 분석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지진 대책과 포항 인근 원전 대책을 포함해서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벌써 3년이 훌쩍 흐르지 않았던가.   


태그:#문재인, #포항 지진, #수능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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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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