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전환마을네트워크 활동가 소란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녹색전환연구소>사이트(www.igt.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기자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 그곳은 '마을'이 된다. 마을에 대한 관심은 풀뿌리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어 이제는 지자체 정책으로도 '마을공동체' 사업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을이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결국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운동이 마을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운동은 일제시대 때도 있었다.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농촌진흥운동'은 농촌 생활개선과 농민정신계몽을 목표로 했지만 애초에 식민지배체제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관제농민운동이었기에 큰 성과는 없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마을운동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영향력을 미쳤던 것은 70~80년대의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의 여러 문제들이 점차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를 여전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목적이나 과정, 결과가 어떠했든 간에 가시적인 변화가 분명했던 운동이어서 사람들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마을운동은 바로 이런 점에서 어렵기도 하다. 비교적 작은 단위인 '마을'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초반엔 쉬워 보일지 몰라도 마을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면 외면당하기 쉽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은 버리기 힘든 것처럼 일상의 변화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아주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전환마을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소란(유희정)이다. 그는 유럽에서 시작한 '전환마을운동(Transition Town movement)'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했다. 누구나 전환마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이 운동의 덕목 중에 하나로 '확산'을 꼽았다. 더 많은 전환마을이 생겨나 서로 자원과 기술을 주고받으며 점조직처럼 퍼저나갈 때, 우리 일상도 점차 지속가능한 자급자족 형태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지난 10월 18일 소란을 만나서 그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녹색전환의 새로운 상상력을 들어 보았다.

전환마을 운동가 소란 소란 제공
▲ 전환마을 운동가 소란 소란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전환마을 운동가 소란의 하루

-마을운동은 일상과 밀접한 운동이다. '전환마을'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을살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전환마을은평'에서 소란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명상을 한다. 좋은 생각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그 후 텃밭에 간다. 낮엔 땡볕 때문에 농사짓기가 힘들어서 주로 아침에 간다. 농사지은 먹거리는 수확해서 전환마을식당 '밥,풀,꽃'에 갖다 주고, 내가 먹을 것도 챙긴다. 같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얻는 것도 많다. 아침 식사는 이런 것들로 직접 요리해서 먹는다.

낮엔 돈벌이가 되는 생업을 한다. 전환마을 활동이 돈을 버는 일은 아니다. 전환마을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생업이 따로 있다. 이는 유럽처럼 전환마을운동이 오래된 곳도 마찬가지다.

저녁엔 '밥,풀,꽃'에서 각자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마을에 어떤 이슈로 동네회의가 열리면 거기에 참석하기도 한다. 마을의 일은 내 일이기도 하니까.

주말엔 대부분 텃밭에 간다. 도시에서 좋은 건 해가 져도 밝아서 옥상텃밭에 야간 농사가 가능하단 거다. 요즘은 수요일마다 은평예술회관 옥상텃밭에서 목화를 키우고 있다. 작년엔 여기서 수확한 목화를 직접 직조해서 이불과 조끼도 만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비누나 샴푸 같은 생활제를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재료는 텃밭에서 나는 작물을 바탕으로 한다."

은평예술회관 옥상텃밭을 가꾸는 중 소란 제공
▲ 은평예술회관 옥상텃밭을 가꾸는 중 소란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도시에서 키운 목화로 이불을 만들고

-옥상텃밭에서 기른 목화가 이불과 옷을 만들 정도로 많다니 놀랍다. 직접 먹거리를 조달하고 생필품을 자급하는 등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삶은 사실 '전환마을' 이전에도 있었다. '전환마을'이란 이름이 붙는 것은 어떤 차별성이 있는 건가?
"사실 이 컨셉트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슷한 마을이나 공동체가 기존에 있었지만 이런 이름만 없었을 뿐이다. 명명한다는 것은 이 이름 아래 같은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거다. 동일한 이름 아래 관계가 형성되고 시너지가 발현된다. 이런 연결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전환마을은 항상 네트워크 운동을 지향한다.

한 때 '독립생태마을'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68혁명 이후 베트남전쟁 끝나고 사회에 염증을 느낀 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독립생태마을을 많이 만들었었다. 사상을 중심으로 외부와 단절된 마을을 만들어 사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결국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다.

전환마을은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새롭게 수정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68세대의 1세대가 독립생태마을 건설에 힘썼다면 2세대는 전환마을을 건설 중이다. 완벽한 유토피아는 없다는 걸 인정하고 일상적으로 내가 사는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보자는 게 전환마을 컨셉트다. 그 바탕엔 기후변화나 피크오일 같은 이슈에서 기반한 생태적 위기가 깔려 있다. 국가나 기업은 백날 이런 위기를 얘기해도 안 바뀌니까 일단 나부터 바꾸자는 거다. 기존의 삶과 공간에서 조금씩 바꿔나가는 거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21세기에 가장 빠르게 확장된 운동이기도 하다. 200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킨세일에서 시작한 것이 현재는 전세계 5천여개 그룹으로 확장됐다. 가까운 일본은 70여개 정도가 있고 우리나라는 10여개 정도 있다."

옥상텃밭에서 재배한 목화 소란 제공
▲ 옥상텃밭에서 재배한 목화 소란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전환마을운동

-'전환마을운동'은 아일랜드에서 처음 시작했고 현재도 유럽에서 더 활발하다. 소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근 20년 동안 계속 사회 운동을 해 왔다. 처음엔 학생운동으로 시작한 노동운동이었고, 노동운동계가 만든 정치조직(사회당)에도 있었다. 근데 당시 운동방식이 나와 안 맞아서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들은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비로소 설명되었다. 그래서 조직 안에서 문제제기를 했지만 이번엔 조직이 나를 불편해 하는 거다. 안되겠다 싶어 이런 문제의식을 느낀 여성들끼리 따로 조직을 만들었다. 그게 '여성해방연대(2002년 발족)'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큰 이름을 지었나 부끄럽지만 그땐 과도한 자신감이 있었다.(웃음) 그래도 전국 조직으로 꽤 큰 규모로 회원 수가 600~700명이 되었고 심지어 그 중 1/3은 남자였다. 오래된 여성 단체들이 프로젝트 위주의 사업을 주로 했다면 우리는 게릴라 운동이나 선언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급진적인 단체에 이 정도의 지지집단이 있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그 시기가 요즘처럼 한참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진보운동도 붐을 일으킬 때여서 가능했던 것 같다.

최초로 여성주의 투어버스를 조직해서 전국을 돌기도 하고, 서울 중심 운동을 타파하자면서 중앙사무소도 대전에 두기도 하는 등 혁신적인 활동을 많이 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여성주의자들의 헌신 덕분이었다. 그 친구들이 지금도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다. 현재 생태, 여성,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다. 한번은 '여성해방연대' 사람들끼리 10년 후에는 뭘 할지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 하나는 병원을 만든다고 했고 나는 농민조직 또는 생태운동을 한다고 그랬었다. 나중에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둘 다 그때 말한 것들을 하고 있더라. 결국 어떻게든 연결이 되는 거 같다. 

한국 전환마을네트워크에서 전환마을 10주년을 맞이한 토트네스를 방문(2016년) 소란 제공
▲ 한국 전환마을네트워크에서 전환마을 10주년을 맞이한 토트네스를 방문(2016년) 소란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급진적 게릴라 '여성해방연대'를 나와 농사짓는 토트네스 마을로

내 손으로 처음 농사를 지은 건 사회당 선거결과에 크게 낙담하고 집에 내려갔을 때였다. 아무리 질 게 뻔한 대결이었다고 해도 우리가 기대한 퍼센트에 한참 못 미친 거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세상은 안 바뀌나보다 절망하면서 고향인 강화도로 갔다가 마침 비는 땅이 있길래 마늘농사를 지었다. 근데 그렇게 찬바람이 부는데도 마늘 싹이 솟는 거다. 그걸 보자 힐링이 되었다. 내가 선거에서는 원하는 표를 못 얻었지만 농사를 통해서는 이런 살핌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달까.

하지만 그 때도 여전히 이런 활동을 생태주의와 연결시킬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가치투쟁운동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여성운동을 했고, 그러다 지쳐서 모든 걸 정리하고 무작정 영국으로 떠나게 됐다."

-한국에서도 급진적인 운동만 하다 갔는데 그곳의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오히려 더 급진적인 느낌을 받았다니 흥미롭다. 일상의 전환은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경치가 좋다는 이유로 토트네스에 자리를 잡았는데 마침 전환마을로 유명한 동네인 거다. 그곳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농사 짓고 동네 사람들 조직하면서 일상이 곧 운동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50~60대 여성활동가들의 열정적인 활동을 보면서 마을운동이 본인의 삶 자체를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급진적인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내 운동의 방향을 찾게 되었다.

큰 이슈, 사회 문제, 이런 것만 생각하다가 내 일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단 걸 그 때 안 거다. 한국에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자체의 권력문제를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면 토트네스에서는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내 일상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사람이니까 한국 전통 방식대로 거기서도 살아가는 지점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들을 엄청 환영하는 걸 보면서 내가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일상적 전통의 가치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고향에서 어깨 너머로 배웠던 도토리묵 만들기, 술 빚기, 풀 요리 이런 것들이 거기서 쓸모가 많았다.

서양이 잘 하는 게 디자인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떻게 더 잘 설명할 수있으냐가 중요한데 디자인이 바로 이를 해결해주는 툴(Tool)이 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퍼머컬쳐(Permaculture)'다. 퍼머컬쳐는 영구적(permanent)이라는 말과 농업(agriculture, 혹은 문화 culture)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지속가능한 삶을 디자인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이런 방식은 이미 우리 전통 문화 속에도 다 있던 거였다. 하지만 퍼머컬쳐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롭게 설명할 수 있다."

다양한 토종쌀로 지은 밥의 맛을 비교해보는 쌀밥테이스팅 소란 제공
▲ 다양한 토종쌀로 지은 밥의 맛을 비교해보는 쌀밥테이스팅 소란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막걸리 빚기가 인기 있는 퍼머컬쳐 워크숍이 되고

-그럼 기존의 생태적인 삶의 모습들에 전환마을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나? 왜 전환마을의 확산이 필요한 건가?
"내가 어떤 지향을 갖고 있는지 선언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또한 전지구적인 생태문제에 공동으로 대응이 가능해진다. 거대한 오염 지대를 바꿔나가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개인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들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환마을의 중요점은 네트워크인데 사람들이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자고 옆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거다. 점조직처럼 네트워크가 확산되어 가면 작은 개인의 일상들이 모여 점차 영향력 있는 힘이 된다. 더 많이 선언할수록 연결망이 넓어지고 효과도 커진다. 

전환마을은 특허권이 따로 없다. 서로 배우고 도우면서 자가복제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방식이다. 전환마을 아시아 네트워크를 만들 때도 유럽 네트워크가 도와줬다. 유럽에서 한 방식을 똑같이 한다 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운동이 확산될수록 더 많은 정보나 활동이 공유된다. 이런 것들이 쌓여 더 큰 힘을 만들어 낸다.

전환마을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최초 제안자가 10명을 넘어서는 곳은 세계적으로 한 곳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규모가 작을 수 있는가 하고 놀라겠지만,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할 일을 찾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선을 넘은 거다. 그런 그룹들이 무수히 연결되어 지금의 전환마을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작게 시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한국에서도 점차 확장됐으면 좋겠다."

개인의 내적 독립 없이는 공동체도 없어 

-하나의 큰 조직만 굴러간다고 잘 되는 게 아닌 운동이다보니 여러 곳에서 작은 문제들이 산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떨 때 제일 힘든가?
"운동은 흥망성쇠가 있다. 어제 잘 되던 게 오늘은 잘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데서 잘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활동이든 성공 여부를 평가하지 않고 '수명이 다 했다'는 표현을 쓴다. 전환마을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공이나 돈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는 거다. 그런데 이 세상 자체가 평가로 가득 차 있다보니 이런 평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수련이 중요하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속도를 찾아가는.

또한 모든 조직이나 공동체에는 기본적으로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항상 갈등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둔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모두 원하는 게 제각각이다.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대화 스킬, 삶을 보는 관점 등을 공부한다. 이것도 명상과 연관지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음공부를 공식화한 프로그램이 '내적전환 프로그램'이다. 전환마을의 유일한 공식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우리는 한 개인의 내적독립을 중요하게 본다. 아무리 사업이 확장된다 하더라도 개인의 내적성장이 없으면 그 조직을 스스로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날카로워져 있으면 공동체도 같이 날카로워진다. 다 연결돼 있다.

내적전환 프로그램의 하나인 춤수업 소란 제공
▲ 내적전환 프로그램의 하나인 춤수업 소란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가장 힘들 때는 자기 자립이 안된 사람들을 마주할 때 같다. 우리는 주로 욕망의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200만원이 아닌 50만원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전환마을 안에서 어떻게 가능할지를 모색하는 거다. 하지만 청년들은 특히 이런 욕망의 변화에 대해 연습이 안된 경우가 많다. 욕망의 전환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를 견디지는 쉽지 않다. 내적전환 프로그램에서도 '자기 표현하기'와 '자기 욕망찾기'를 많이 한다. 의외로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 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전환마을 사람들도 일부 사람들의 잦은 이탈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는 대신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도 찾아보고, 그들도 무엇을 원하는 건지 우리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녹색당이 지역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힘

-마을운동이 모든 것과 다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정치운동으로의 연결도 빼놓을 수 없다. 전환마을에 녹색당 당원들이 많다고 들었다. 녹색당과의 연결은 어떤지 궁금하다.
"'전환마을은평'의 경우 대다수가 은평녹색당 당원이다. 하지만 녹색당이 당 차원에서 '전환마을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녹색당 운동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라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느냐 아니냐인 거 같다. 우리는 아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치세력이 약하다.

토트네스에서 처음 전환마을 생활을 시작할 때 마을에서 길 닦던 평범한 마을 주민들이 다 녹색당원이었다. 이제 10년 지나니까 그들이 시의원하고 시장하고 그러더라. 그들은 농민이거나 샌드위치 가게 주인이거나 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녹색당 대표가 되고, 지방 의회 대표가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런 평범한 사람을 대표로 안 뽑는다는 거다. 녹색당마저도. 명망가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다. 정치세력화를 위해선 지역이 기반되어야 한다는 걸 유럽 전환마을과 녹색당의 사례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녹색전환연구소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다. '녹색전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거대담론도 많이 있지만, 내 삶을 내가 온전히 볼 수 있는 게 녹색전환인 거 같다. 내 밥상에 있는 밥은 어디서 왔고 어디서 자랐을지 알 수 있는 삶. 내가 버리는 것과 화장실에서 싸는 것들이 단순히 내 눈 앞에서 사라진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생태계 안에서 순환될 수밖에 없는 자원이란 걸 인식하는 삶. 지구의 거대한 순환 시스템 안에 내가 있으며 나 역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삶. 콩나물 한쪽이라도 기르려고 하는 삶. 이런 삶이 녹색전환으로 가는 삶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박이상 (녹색전환연구소 편집위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녹색전환연구소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민간연구소입니다. 내 삶과 가족, 이웃, 지구와 생명을 지키고 함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길 - 우정과 즐거움으로 잇는 녹색전환의 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http://www.igt.or.kr)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