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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초당림에서 단풍 든 낙엽을 들고 웃고 있는 김지향. 내년에 다른 대학으로의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강진 초당림에서 단풍 든 낙엽을 들고 웃고 있는 김지향. 내년에 다른 대학으로의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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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온 초희가 해죽이 웃었다. 옆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그녀의 뺨을 살몃살몃 문질렀다. 그 손길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내년에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지향이는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표정이 해맑다. 거머멀쑥이 입은 옷차림까지 밝아지는 듯하다.

한쪽 나무의자에선 참가자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선우와 나이 적은 회진이 나란히 앉아서 줄곧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동안 변하지 않던 표정이 차즘차즘 환해진다. 얼굴이 푼더분히 생긴 특수학교 교사 지훈은 같이 온 네 살배기 아들과 놀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검실검실 보이는 아들을 보며 두 눈에 함초롬 물기를 머금기도 했다.

강진 초당림 숲길에 걸려 있는 글귀 '빛나라 내 인생'. 숲을 찾은 시각장애인들을 응원하는 문구인 것만 같다.
 강진 초당림 숲길에 걸려 있는 글귀 '빛나라 내 인생'. 숲을 찾은 시각장애인들을 응원하는 문구인 것만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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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도암만에 자리하고 있는 섬 가우도. 섬에서 대구면 저두마을과 도암면 망호마을 양쪽으로 출렁다리가 각각 놓여 있다.
 강진 도암만에 자리하고 있는 섬 가우도. 섬에서 대구면 저두마을과 도암면 망호마을 양쪽으로 출렁다리가 각각 놓여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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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초당림(草堂林)에서다. 초희, 지향, 선우, 회진, 지훈은 청년 시각장애인들이다. 이들이 초당림에 간 것은 지난 11월 10일부터 11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열린 '청년 시각장애인 라이프 이노베이션 워크숍'의 일환이었다.

워크숍에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는 물론 멀리 춘천과 서울, 부산, 창원, 천안에서 온 청년 시각장애인 20여 명이 참여했다.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 임직원과 자원봉사자 10여 명이 도우미로 나섰다. 워크숍은 '열정 그리고 도전'을 주제로 열렸다.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회장 김갑주) 주관했다.

10일 강진 다산수련원에서 시작된 워크숍은 '지역민과 함께 재활하는 시각장애인의 자세',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여행과 시각장애인'을 주제로 한 외부 강사의 강연과 참가자들의 공감토론으로 이어졌다. 다과를 함께하며 밤늦게까지 계속된 공감토론에서는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이 경험담을 털어 놓으며 진로와 직업문제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정크아트 '물고기' 조형물 앞에 모인 워크숍 참가자들. 물고기 조형물은 다 쓴 페트병과 캔 등으로 만들어졌다.
 정크아트 '물고기' 조형물 앞에 모인 워크숍 참가자들. 물고기 조형물은 다 쓴 페트병과 캔 등으로 만들어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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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 해안을 따라 놓인 나무 데크 길을 걷고 있는 워크숍 참가자들. 살갗으로 전해지는 바람결을 느끼며 마음까지 가뿐해졌다.
 가우도 해안을 따라 놓인 나무 데크 길을 걷고 있는 워크숍 참가자들. 살갗으로 전해지는 바람결을 느끼며 마음까지 가뿐해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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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수련원에서 하룻밤을 묵은 워크숍 참가자들은 11일 강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 가우도와 '비밀정원' 초당림으로 현장체험에 나섰다. 먼저 가우도로 간 참가자들은 출렁다리와 바닷가 나무 데크를 따라 뉘엿뉘엿 걸으며 '가고 싶은 섬'을 돌아봤다.

참가자들은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두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파도 소리를 귀로 듣고 바람결을 살갗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코끝으로 전해오는 은은한 갯내음에선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삶을 마주하는 듯했다.

영랑쉼터에선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으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되새겼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이 강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안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반겼다.

가우도에서 공중하강 체험시설을 타려고 준비한 참가자들.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지훈 씨와 연합회 윤치순 팀장이 앞에 서 있다.
 가우도에서 공중하강 체험시설을 타려고 준비한 참가자들.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지훈 씨와 연합회 윤치순 팀장이 앞에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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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트랙을 타고 섬에서 뭍으로 탈출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짜릿한 공중하강을 체험하고 있다.
 짚-트랙을 타고 섬에서 뭍으로 탈출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짜릿한 공중하강을 체험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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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후박나무와 곰솔 우거진 숲을 지나 가우도 전망 탑에 올라 공중하강시설(짚 트랙)을 체험했다. 안전장비를 갖추고 체험 요령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는 다소 긴장하는 표정이 엿보였으나, 단번에 섬 밖으로 탈출한다는 말에 금세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짚 트랙 와이어에 매달려 섬 밖의 뭍으로 날아갈 때는 묵은 체증이라도 내려간 듯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뭔가 모를 짜릿한 기분과 함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해지기라도 한 듯 모두가 후련한 표정이었다.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에 자리한 초당림. 수십 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비밀정원'으로 통한다.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에 자리한 초당림. 수십 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비밀정원'으로 통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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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수북하게 깔린 초당림 숲길. 워크숍에 참가한 시각장애인들이 걸으며 만추의 서정을 느낀 길이다.
 낙엽이 수북하게 깔린 초당림 숲길. 워크숍에 참가한 시각장애인들이 걸으며 만추의 서정을 느낀 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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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림에선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만추의 숲길을 사붓사붓 걸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늦가을의 감촉도 참가자들을 위무해 주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꺾어 건넨 들국화와 단풍으로 물든 낙엽을 머리카락에 꽂으며 웃는 지향과 초희의 얼굴은 천진난만했다.

참가자들은 초당림의 면적이 960㏊로 서울 여의도의 3배가 넘고, 무안 출신 김기운(96) 백제약품 명예회장이 50년 동안 가꾼 숲이라는 얘기를 듣고 하나 같이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머릿속으로 그 면적을 상상하며 가늠해보기도 했다.

초당림 소유주인 초당산업(주)의 배려로 숲에서 자라고 있는 표고버섯을 직접 따 보는 체험도 했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손끝으로 표고목을 더듬으며 표고버섯을 찾아보고 몇 개씩 따 봤다. 생버섯을 입에 넣어 혀끝으로 맛을 보고, 숲속 쉼터에서 표고버섯을 끓는 물에 데쳐 먹어보기도 하며 이틀 동안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초당림의 편백숲 아래 표고버섯 재배장에서 표고버섯을 직접 만져보며 따 보고 있는 황초희. 바로 옆에서 자원봉사자가 도움을 주고 있다.
 초당림의 편백숲 아래 표고버섯 재배장에서 표고버섯을 직접 만져보며 따 보고 있는 황초희. 바로 옆에서 자원봉사자가 도움을 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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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에 데친 표고버섯의 맛을 보고 있는 김회진. 워크숍 진행을 맡은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 김윤미 씨가 물에 데친 표고버섯을 입에 넣어주고 있다.
 끓는 물에 데친 표고버섯의 맛을 보고 있는 김회진. 워크숍 진행을 맡은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 김윤미 씨가 물에 데친 표고버섯을 입에 넣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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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주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 시절, 민둥산에 나무를 심은 김기운 회장처럼, 우리도 시각장애인이라는 불편을 뛰어넘어 사회와 나라에 도움 되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겠냐"면서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면, 주위에 도와줄 사람은 정말 많이 있다"며 청년 시각장애인들을 격려했다.

지훈, 선우는 물론 진소, 재명, 운성 등 다른 참가자들도 "숲 체험과 가우도 여행이 즐겁고, 1박 2일 워크숍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면서 "이런 기회가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더 자주 마련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초당림에서 표고버섯을 따 보고 있는 김갑주 회장. 김 회장은 이번 워크숍을 주관한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를 이끌고 있다.
 초당림에서 표고버섯을 따 보고 있는 김갑주 회장. 김 회장은 이번 워크숍을 주관한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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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각장애인,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 #김갑주, #초당림, #가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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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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