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심판회의를 다루다보면 산업기능요원, 우리가 흔하게 병역특례병이라 말하는 노동자들이 의외로 해고되어 노동위원회에 오는 경우가 많다. 

산업기능요원은 병무청에 소속되어있는 군인의 신분이지만 동시에 근로기준법에 적용을 받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병역법의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해고에 따른 불이익은 이중적이다.

병역법 41조에 따르면 산업기능요원이 해고(편입이 취소)된 경우 편입되기 이전의 신분으로 복귀, 즉 현역병으로 입영하게 된다.
(특례기간 중 해고되었더라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여 계류중일때에는 그 결과가 확정될때까지 편입의 취소가 유보됨 [병역법 제41조 1항])

이번 심판회의에서 만난 박정규(가명, 남, 22세)씨는 안산의 한 제조업체에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 중 해고되어 노동위원회를 찾았다.

95년생. 대학을 휴학하고 "집안 사정상 돈을 벌어야 해서" 대체복무를 선택한 그는 "해고가 되면 현역으로 군대를 가야하는데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집에서 회사가 한 시간 반 거리인데 회사에서 입사당시 약속한 기숙사를 배정해 주지 않아 다음 달엔 근처 찜질방 한 달권을 예약하려 하던 참이었다고 했다.

그가 해고된 사유는 두 번의 '지각'이었다.

2017년 6월에 입사한 박 군은 같은 해 9월 해고되기까지 두 차례 지각을 했다. 두 번 모두 5분 가량 지각이었는데 그 중 한 번은 카드를 찍지 않고 "지각을 하지 않은 척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위원회에 제출된 CCTV에는 그가 회사 앞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내리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공익위원 한 명은 그런 그에게 "집이 멀면 회사 근처에 방이라도 구해야했던 것 아니냐"는 철없는 훈계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대체복무를 선택한 청년에게.

더 나아가 회사는 그에게 5분 지각한 이틀 모두 한 시간을 지각한 것으로 출퇴근 확인서를 기록하게 하고 한 시간의 임금을 공제했다.

그것도 모자라 근무평점에 <출결성적> 최하위 점수 바로 위인 E점을 주고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다"며 수습기간 중 채용취소를 통보하였다.
(수습기간에 이루어진 채용취소는 해고와 동일함. 시용과 수습 모두 근로기간을 정한 기간데 근로자로 보기 어렵고 오히려 정규직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함.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상담메뉴얼])

공익위원들은 너도나도 박 군에게 "회사생활에서 출근시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훈계했다. 이 날 심판회의 시간에 10분 지각한 공익위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박 군의 출결기록을 살펴봤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8시에 출근해서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를 제외하고는 늘 저녁 8시에 퇴근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늘 초과근로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5분 지각 2번에 해고라니. 그것도 해고되면 곧바로 예기치 못한 군복무를 해야 하는 청년에게.

그는 본인이 다른 특례병들에 비해 나이가 좀 많아 평소에 현장의 부당한 일에 대해 이런저런 제안을 해 온 것이 회사에 '밉보여' 해고된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이 날도 박 군은 노무사 없이 혼자 또박또박 주장과 설명을 이어나갔다.
(월 급여 250만원 이하일 경우 국선(무료)노무사를 선임할 수 있음. [2017.7월 개정, 노동부])

본인이 부당하게 해고된 것에 대한 자료도 꼼꼼하게 잘 제출하였다. 이 사회가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을 어디서도 가르치지 않아 보통 노동위원회에 찾아온 (노동조합이 없는) 일반 노동자들은 본인이 왜 해고되었는지,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지, 주변의 조력이 없으면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젊은 청년 노동자가 스스로 본인의 권리를 잘 대응하는 모습에 나조차 뿌듯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노동위원회는 박 군에게 해고기간(2달) 동안 임금을 받지 않는 것을 전제로 복직을 할 의사가 있는가 화해를 권고하였다. 내가 보기엔 해고도 부당해고로 판정받을 수 있고, 당연히 해고 기간 임금 역시 지급받을 수 있어 보였지만 그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화해권고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만에 하나 해고가 구제되지 못 할 때 현역병으로 다시 복무 해야하는 것에 대한 부담때문이었으리라.

산업기능요원 노동자들이 그 부분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악용해 사업주들은 산업기능요원들을 종부리듯 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군인이기도, 노동자이기도 한 산업기능요원. 현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병역업의 제한에 걸려 소리없이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문제, 언제까지 방치해야할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노동조합 활동가,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딸의 엄마이자, 노동자의 아내로 노동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사에 담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