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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명의 여성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이야기 도중 A가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다. B가 말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C가 말했다. "나도" D가 말했다.
 다섯 명의 여성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이야기 도중 A가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다. B가 말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C가 말했다. "나도" D가 말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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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여성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이야기 도중 A가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다. B가 말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C가 말했다. "나도" D가 말했다.

"간혹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더라."

여성들에게 강간은 낯설지 않다. 할리우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된 후 이어진 '#MeToo' 해시태그 캠페인은 성범죄가 얼마나 일상적인 문제인지 보여준다. 2015년 한국의 성폭력 발생 건수는 31,063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피해자의 90% 이상은 여성이다.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성범죄 신고율을 10% 내외로 추정한다. 열에 아홉은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피해자의 말하기를 어렵게 만드는 건 성범죄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그로 인해 성범죄가 '소비'되는 방식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호기심이지만 어쨌든 몹쓸짓'으로 서술하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호기심이지만 어쨌든 몹쓸짓'으로 서술하고 있다.
ⓒ '서강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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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강간'이 소비되는 법

한국에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면 대개 다음과 같은 전철을 밟는다. 피해호소인이 '꽃뱀'일 거라는 의심이 늘 잔존하고 사건이 진행될수록 거세지는 식이다. 피해호소인에게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면 기다렸다는 듯 여론이 돌아선다.

성폭력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 나거나 피해호소인이 무고죄로 고소당하면 비난은 더욱 거세진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무고죄도 무혐의 처리가 나면 그야말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그땐 이미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최근 공론화된 한국 기업 내 성폭력 사건들도 비슷한 난항을 겪고 있다. 한샘 사건의 가해지목인은 무혐의 처리됐고, 현대카드 피해호소인은 무고죄로 고소당했다. 이들이 '피해자'인지 '꽃뱀'인지를 판단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로 인해 2차 피해 문제도 심각하다.

피해자를 두고 심판이 난무하는 동안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은 대개 목격자가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피해 사실 자체를 입증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게다가 성범죄에 대한 왜곡된 통념으로 인해 수사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사법기관의 법규 해석이나 적용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요즘에는 성폭력 고소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음에도 무고 맞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무고 수사를 함께 받으며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

성범죄를 용인하는 강간 문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의 55.2%가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답했다. 56.9%는 "여자가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차를 얻어 타다 강간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데, 47.7%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

바꿔 말하면, 피해자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술에 취했거나, 남자의 차를 얻어 탔거나, '성폭행을 당할 법한' 옷차림을 했다거나.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로부터 찾으려 애쓰는 게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인식이다.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성폭행당하는 것을 즐긴다"는 응답도 8.7%에 달했다. 성범죄를 포르노적 서사로 소비해 온 남성적 문화가 왜곡된 인식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구글 트렌드 분석 결과 '강간'의 관련 검색어 2위는 '19', 3위는 '토렌트', 7위는 'av', 9위는 '강간 사진'이었다.

 지난 5년간 '강간' 검색어의 관련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지난 5년간 '강간' 검색어의 관련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 구글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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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사회에선 강간이 '문화'로 존재한다. 강간 문화에선 일상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소비하지만, 성폭행만은 몹시 특수한 일로 치부한다. 한 점 흠결 없는 순수한 피해자와 악마 같은 가해자의 구도만이 그 '특수한'('진짜') 성폭력으로 인정받는다. 대다수 가해자가 동의 없는 섹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강간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며, 다수의 사람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심판하려 드는 이유다.

성폭력은 특수한 일이 아니다. 만연한 성범죄의 해결은 그것의 일반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가 수많은 성범죄를 묵인하고, 피해자를 더욱 고통받게 함을 깨닫고, 불평등한 젠더 권력과 가부장제 사회로 비판이 나아가야 한다. 왜곡된 성 인식을 해체해야 강간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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