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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친구들은 한국의 단풍에 크게 감탄하곤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비교적 덜 추운 기후의 나라에 사는 그들에게는 참으로 신기하고 경탄의 대상이 될만한 모양이다. 더욱이 굳이 산을 찾지 않아도 황금색을 띄는 우리나라의 거리를 보며 그들은 낭만적이라 표현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심은 가로수인 은행나무의 덕이 크다.

그러나 그들의 감상 젖은 낭만도 조금 거리를 걷다 보면 민망스러움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저기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가 풍기는 냄새는 그들의 후각을 자극한다. 또한, 시민들의 발에 밟혀 아무렇게나 뭉개진 열매의 모습은 황금색 잎의 아름다움을 크게 반감시키기도 한다. 시민들은 행여 신발에 냄새나는 열매가 묻을까 까치발을 들고 지나가기도 하고 아예 차도 가장자리로 비켜 걷기도 한다.

거리에 뭉개진 은행나무 열매
 거리에 뭉개진 은행나무 열매
ⓒ 이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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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단풍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과 열매로 인한 냄새 문제가 공존하는 은행나무의 역설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고민은 아닌듯하다. 매년 미국에서도 워싱턴 DC나 뉴욕처럼 거리에 은행나무가 많은 지역에서는 심심치 않게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기사와 그 냄새의 문제를 성토하는 기사가 늘 함께 올라온다.

그럼 은행나무는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어떻게 가로수가 되었을까? 은행나무가 가로수가 된 이유는 비단 그의 황금색 자태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뛰어난 생존력이다. 2007년 발간된 더글라스 탈라미의 저작 <Brining Nature Home>에 따르면 도심의 참나무에서 500종의 애벌래가 자라는 기간 은행나무에서는 오직 한 종의 애벌래만 자랐다고 한다. 그만큼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다.

또한, 각종 도심의 대기 오염 속에서도 굳건히 자랄 정도로 강하고 가뭄에도 끄떡없다. 이런 은행나무의 진정한 생존력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되고 온 도시가 황폐해졌던 시기에 증명되었다. 일본 당국은 불모의 땅이 된 도시 인근에 여러 나무를 심었는데 그중 은행나무 6그루 만이 생존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한다. 초토화된 땅에서 기적처럼 생존한 은행나무는 "희망의 담지자(Bearer of Hope)'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 가로수의 목동거리
 은행나무 가로수의 목동거리
ⓒ 이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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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거리 냄새 원인의 주범, 은행나무 열매!

냄새를 풍기는 은행 열매를 맺는 것은 암나무이다. 수나무는 열매가 없다. 따라서 최근 서울시와 수원시를 비롯해 많은 지자체에서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질문이 생긴다. 왜 애초부터 암나무가 아닌 수나무를 심지 않았을까?

기존 은행나무의 성별감별은 은행나무가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암수 구분을 하기 어려웠다. 즉 묘목 식재 후 약 15~30년 가량을 기다려야만 암수 구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그동안 암수 구분 없이 은행나무 가로수가 심어져 왔다.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 산림청 도시 숲 경관과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키 위해 분자유전학 기술인 DNA 마커 기법을 활용한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법'이 국립산림과학원에 의해 이미 개발되어 적용되고 있다. 수나무만을 선택적으로 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한 종의 생명에 한가지 성만을 고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충남대학교 수목진단센터장 박관수 교수는 냄새로 인한 수나무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동의하면서도 암나무도 있어야 자연스럽다는 의견 또한 함께 개진하였다.

또한, 종의 문제를 떠나서 수많은 암나무를 단기간에 수나무로 교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가을철 상당히 오랜 기간 은행나무의 열매를 거리에서 마주해야 한다. 좀 더 자연스럽고 올바른 대처 방안은 없을까?

암나무에 열린 은행나무 열매(출처: pixabay)
 암나무에 열린 은행나무 열매(출처: pixabay)
ⓒ 이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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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는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은행나무 가로수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가로수 정책 중 특이한 것은 암나무의 열매 결실 억제용 약제(Shield-3EC 23(c))를 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DC의 도시 녹화과(FDA)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매년 정기적으로 시민들에게 약제 스프레이 기간을 공지한 후 시민 협조하에 관련 부처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 정책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약제의 국내 적용에 대한 타당성과 안정성 여부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림청 도시 숲 경관과에서는 아직 국내에서는 본 약제의 효과성과 생태적 안정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는 의견이다. 충남대의 박관수 교수 역시 나무와 인체에 해가 없는 연구 결과를 얻는다면 적극적인 사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런 약제를 개발하려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시 조경과 관계자에 따르면 암나무의 열매 결실을 억제하는 약제를 개발한 업체들에서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효과와 다른 환경적 부작용에 대해 검증된 바가 있어 아직 약제 살포를 정식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다만 충남도청 산림녹지과에 의하면 국내 가장 아름답고 긴 은행나무길이 있는 아산시에서는 내년도 암나무를 대상으로 열매결실 억제용 약제 시범 살포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시민과 은행나무가 공생하는 자연적인 방법은 없을까?

몇 해 전에만 해도 가을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봉지를 들고 노랗게 익은 은행 열매를 서로들 주워가려 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려다 가지를 부러뜨리고 훼손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 지자체가 골머리를 앓아야 했었다. 이에 각 지자체에서 나무에 달려있는 것을 털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직접 수확하는 방침을 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로수중 가장 비율인 높은 은행나무의 열매를 지자체가 직접 다 수거하기란 많이 힘든 일이다. 따라서 지자체들은 시민들이 바닥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를 채취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더이상 시민들은 은행나무 열매를 주워가지 않는다. 시중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은행나무 열매가 버젓이 팔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
 바닥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
ⓒ 이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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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공원에 있는 아주머니들께 왜 은행나무 열매를 줍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압축되었다. 첫째, 늘 도로에 노출된 은행나무의 열매가 얼마나 오염이 되었을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둘째, 냄새가 심한 은행나무 열매를 집으로 가져가 처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각 지자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은행나무 가로수의 열매는 식용 가능하며 오염되지 않았음을 널리 홍보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많은 자치 단체가 은행나무 가로수 열매의 오염도를 각 연구기관에 의뢰한 결과 모두 보건복지부 허용기준치보다 훨씬 아래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은행나무 열매가 먹는데 아무 문제가 없음을 시민들이 보다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과거처럼 시민들이 은행나무 열매를 채취해 직접 가정에서 먹을 수 있도록 장려하는 일이다. 물론 마트에 가면 잘 손질된 은행나무 열매를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손질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돈의 문제를 떠나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에서는 직접 시민들이 어떻게 은행나무 열매를 손질해야 하며 이에 대한 주의사항은 무엇인지 그리고 은행으로 어떤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우리도 은행 손질 방법은 물론 이를 활용한 각종 요리법과 나아가 은행의 효능에 대해 보다 시민들이 보다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며칠 전 가을철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15개의 나무들 중 은행나무를 두 번째로 소개하였다. 가을철이면 거리를 황금색으로 뒤덮는 은행나무는 분명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나무 중 하나이다. 이런 은행나무가 그 냄새로 인해 각 지자체와 시민들의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은행나무는 고생대 시대에서부터 있었고 공룡이 이 땅의 주인이었던 중생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였다고 하니 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화석을 보는 셈이다. 이런 강력한 생존력을 가지는 가을철 황금빛의 주인공은 우리가 좋든 싫든 내년에도 여전히 거리에서 생존해 있을 것이고 우리는 다시 은행잎을 밟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은행나무 잎이 가득한 거리
 은행나무 잎이 가득한 거리
ⓒ 이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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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은행나무,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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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다시 페미니즘, 싱글의 철학 외 다수) / 철학상담치료사/ 희망철학연구소 연구원 /불교상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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