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16개 지역MBC는 서울MBC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취재한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등은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고, 서울MBC 편집자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MBC 잔혹사를 소개합니다. 김장겸 사장이 해임됐지만, 지역MBC에는 그가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남아있습니다. MBC가 완전하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지역MBC도 살아나야 합니다. '지역MBC 잔혹사'는 안동MBC 강병규 PD가 연재합니다.

지금은 해체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 최고의 재벌 삼성에는 엄청난 힘을 가진 미래전략실이 있다. 막강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모습은 커튼에 가려져 있다고 해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커튼 뒤의 조직'이라 부르기도 했다. MBC에도 지역MBC이사회라는 얼굴마담 뒤에 숨어 계열사 및 자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부서가 있다. MBC 관계회사국이 바로 그 조직이다.

 MBC 상암동 사옥 내 관계회사국

MBC 상암동 사옥 내 관계회사국 ⓒ 전국언론노조


지난 9월 18일 <한겨레>가 보도한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방송장악 문건(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은 김재철 전 MBC 사장 체제 이후 공영방송 MBC의 몰락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서이다. 국정원 개혁위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이라는 문건은 당면과제와 기본전략, 세부 추진방안까지 3단계의 'MBC 장악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다. 2010년 김재철 전 사장 취임 이후부터 인적쇄신과 편파 프로그램 퇴출을 담은 1단계, 그 해 말까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조직개편을 통한 체질변화를 유도하는 2단계, 2011년 이후 궁극적으로 소위 민영화로의 소유구조 개편까지를 담은 3단계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7일 김재철 전 사장은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비록 증거가 대부분 수집됐다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검찰은 (김 전 사장의 주장과는 다르게) 국정원 직원과 전영배 MBC C&I 사장으로부터 국정원 문건이 김 전 사장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또한 그 국정원의 요청사항은 MBC 본부장급 임원회의를 거쳐 그대로 실행됐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심지어 검찰 수사 내용을 알아보거나 증거를 없애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고 한다.

풀려난 김재철 전 MBC사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김재철 전 MBC사장이 10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김재철 전 MBC사장이 10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관계회사국'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기자회견과 총파업 특보를 통해 김재철 전 사장 취임을 시작으로 국정원이 제작․보도․편성본부 국장급 간부 전원 교체와 '건전성향' 인사의 전진 배치 등에 들어갔다고 폭로했다. '인적 쇄신'을 명분으로 퇴출할 각 지역MBC 사장과 간부의 성향, 과거 행적 등을 담은 명단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이처럼 김재철 전 사장은 지역MBC까지 철저하게 장악하려는 계획을 실행했는데, 이 과정의 최선두에 MBC 관계회사부가 있었다.

2010년 5월 24일 MBC 관계회사부 홍성태 부장은 지역MBC 사장들 앞으로 메일을 보내 노사관계 재정립 등 지역MBC 경영 전반에 걸쳐 중요한 지침을 하달했다. 계열사와 자회사를 담당하면 되는 한 부서의 장이 지역MBC 사장들에게 메일이나 문자로 지침을 전달한다니. 심지어 메일을 통해 알려진 < MBC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의 1단계 전략인 노동조합 무력화는 지역에까지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그는 < 2010년 본사의 노사관계 재정립 지침>에서 '과거의 대 노조 유화정책을 버리고 원칙에 기초하여 당당하게 노사관계를 재정립해 갈 것을 촉구'한다며 2010년 경영의 화두가 '노사관계 재정립'이라는 부분을 명확히 했다. 구체적인 적용 지침으로 첫 번째는 '무노무임 처리', 두 번째는 파업참가 직원에 대한 징계 처리 지시가 담겼다. '본사의 노조 집행부에 대한 징계 경과와 결과를 지켜'보고 '본사와 보조를 맞추'라는 지침도 잊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징계 지시에 무조건 따르라는 말이었다.

 지역MBC 사옥들

지역MBC 사옥들 ⓒ 전국언론노조


단체협약 사항 중 경영권과 인사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라 여겼던 상향투표제, 국장 신임투표, 인사 시 노사합의 또는 협의, 공정방송협의회 의결 문제, 국장책임제 등에 대해 관계회사부가 정리해서 하달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모든 것이 지역MBC 노동조합 무력화를 위한 시도였고, 맨 앞에 관계회사부가 있었다. 관계회사부 부장은 서울MBC가 지역MBC의 한 해 경영을 평가하는 항목에 '노사관계재정립은 첫 번째 평가요소로 꼽힐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장으로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진 김재우 전 아주그룹 부회장이 호선되었다면서 김 이사장의 첫 번째 요구 자료가 '각 사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었다며 인력 구조조정도 시사했다. 마지막으로 홍성태 부장은 '각 사의 사정을 강조하면서 원칙을 무시하거나 훼손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추후 문제시 하겠다는 것이 본사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홍부장의 메일이 뿌려진 후 1시간 남짓 지나 김동효 부장의 메일이 또 하달되었다. '노동조합과의 임금 협약, 단체협약의 문제 조항 파악 후 보고 요청'이라는 메일에는 서울MBC가 강조했던 노사관계 재정립의 구체적인 요소들이 포함됐다. 노동조합과의 임금협약이나 단체협약 내용 중 법위반 소지, 경영이나 인사권 개입 소지, '건전한 노사관계 확립 및 방송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조항'을 전수 조사해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이 만들어 낸 방송장악 문건에서 쓰였던 말 그대로였다.

지역MBC에 떨어진 황당 지침들

2011년 2월, 지역MBC 주총을 앞두고 지역MBC 구성원들은 광역화 반대와 지역사장을 규탄하는 상경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에 MBC 관계회사부 차재실 부장은 '관계회사 주총 관련 노조원 상경자 명단 송부' '지역사 본사 상경집회 참석 실태 파악 요청'등의 메일을 보내 상경 노조원들의 휴가 불인정 등 '직원 근태관리'를 지시했고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위해 각 지역 노조지부장의 인적사항(성명, 주소, 주민번호 등)을 보내달라는 지시도 있었다. 주총 참여를 위한 노조원 상경 시에는 '참가자 전원의 명단을 신속하게 관계회사부로 송부해'달라고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서울 뉴스데스크-대구 뉴스데스크 비교(사드배치)

서울 뉴스데스크-대구 뉴스데스크 비교(사드배치) ⓒ 전국언론노조


그해 3월 관계회사부는 급기야 지역MBC에 대한 보도통제까지 시도했다. 3월 8일 대구MBC의 국회담당 기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의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문화진흥회의 업무보고에서 지역MBC의 강제 통폐합과 관련된 질의를 취재해 리포트를 제작했다. 이는 대구MBC 보도국이 지역MBC의 존폐, 지역민의 알권리 침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주도해 각 지역MBC가 공유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았고 해당사 보도국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14개 지역MBC를 통해 방송됐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관계회사부는 지역사 경영국으로 해당 취재물의 보도 여부에 대한 확인 전화를 하며 보도부문에까지 장악 의도를 드러냈다. 물론 당시 관계회사부는 단지 '확인'일 뿐이었다고 강조했지만 불과 한 달 전 내린 지침에 본사 지시 이행도를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는 협박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회사의 해명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2012년 8월 말 김재철 전 사장은 관계회사부를 통해 18개 지역MBC에 정관 변경 및 이사 추가선임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통보했다. 당시 임시주총의 의결사항은 대표이사에게 있던 주주총회 소집권한을 전체 이사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과, 3인이었던 지역MBC 이사회에 1명의 이사를 추가 선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당시 해임 위기에 몰린 대구MBC 사장의 주총 소집 거부를 핑계로 대표이사가 참여하지 않아도 이사회나 주총소집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는 지역MBC 사장이 주총 소집권 마저 뺏겨 그야말로 식물사장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자신을 향한 일말의 저항이나 반기도 허용할 수 없다는 김재철 전 사장의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이미 반신불수 상태였던 지역MBC 사장에게서 남은 팔다리마저 잘라내겠다는 것임에 다름 아니었다.

그해 10월 24일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장병완 의원의 '지역MBC 정관변경'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당시 방문진 김재우 이사장은 폭탄발언을 했다. "(유보)자금 문제는 새로운 방송사옥(상암동 신사옥) 때문에 현금 흐름이 혹시나 나빠질까봐 그 일환으로, (유보자금의) 귀속은 지방사 것이지만 유동성을 좀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대비가 있는 것으로 보고 받았다"며 지역MBC가 보유하고 있는 유보자금을 서울MBC를 위해 가져다 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실토해버린 것이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즉각 성명을 내 지역유보금 강탈 음모를 획책한 관계회사부의 해체를 주장했다. 추후 확인한 사실이지만 김재철 전 사장은 당시 일본의 한류 열풍을 틈타 신오쿠보의 한인 타운에 있는 빌딩을 구입하기 위해 지역MBC의 보유자금 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지역MBC 구성원들이 피땀 흘려 벌어놓은 돈을 서울의 쌈짓돈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기도 했다.

MBC 복원하려면 관계회사국부터 해체해야

2014년 MBC는 상암동 신사옥으로 이전을 완료한 후 3월 11일자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한다. 그룹 전체 차원의 전략기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관계회사부를 관계회사국으로 승격하고 산하에 계열사부와 자회사부를 신설했다. 계열사부를 관장하는 부국장 자리에 김석창이 보임된다. 진주MBC PD 출신인 김석창은 김재철 전 사장과는 고려대 동문으로 지역특보, MBC경남의 일본 지사장을 거쳐 서울에 입성하면서 2014년 3월부터 1년 동안 관계회사국 부국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를 아무 이유 없이 해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에 등장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문화사업국장을 하면서 지역의 대형문화축제 입찰방해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 외에도 서울MBC의 정신건강박람회라는 행사를 강제로 지역까지 유치하도록 했던 사례나 지역MBC의 근로복지기금을 감사·통제한 것 등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그 마수를 뻗쳤다.

 MBC 상암동 본사에 있는 관계회사국 조직도

MBC 상암동 본사에 있는 관계회사국 조직도


서울MBC의 관계회사국은 일제의 통치수단이었던 조선총독부 같다는 것이 지역MBC 구성원들의 생각이다. 경영 부문뿐만 아니라 사업과 보도에까지 사내 메일 한 통으로 간섭하고 지시하는 거대한 괴물로 커왔던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서울과 지역 간 수평적 상생 네트워크의 복원이 황폐화된 MBC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서울과 지역을 통치와 굴종의 관계로 전락시켰던 서울MBC 관계회사국의 해체야 말로 MBC네트워크가 전국 시청자들의 사랑받는 채널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일 것이다. 지역MBC 10년 잔혹사를 진두지휘했던 관계회사국의 발전적 해체만이 자율과 독립경영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 강병규PD는 1996년 안동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2005년~2007년까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직국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2011년~2012년은 MBC본부 안동지부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면서 김재철 퇴진을 위한 총파업 당시 정직3개월 징계를 받았습니다.

지역MBC MBC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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