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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차를 마시는데 그녀의 스마트폰이 바삐 울려댔다. 친구는 그때마다 답 메시지를 보냈고, 우리의 대화는 번번이 끊겼다. 내가 이야기를 멈추자, 스마트폰에서 눈길조차 떼지 않은 친구가 듣고 있으니 계속 이야기하라고 해 어이가 없기도 했다.

태도도 못마땅했지만, 듣고 있긴커녕, 내가 말을 이상하게 끝맺어도 그녀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우리의 수다가 딱히 대단한 주제였던 것은 아니나, 눈앞의 나를 제쳐두고 당장에 대답해야 했던 그녀의 카톡 메시지는 과연 그렇게도 중대하고, 화급을 다투는 것들이었을까.

며칠 뒤, 그녀가 다른 이와 카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소의 나라면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재깍 대화를 중단했겠지만, 그날은 못된 심보가 발동했다. 나는 오만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 어쩌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게 웬일인가. 그녀는 내게 일일이 응대하며, 심지어 나보다 열정적으로 대꾸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내가 재확인할 정도로. '너 지금 친구랑 있는 거 맞니?' 그렇다. 그녀는 자기 앞의 사람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고, 스마트폰 너머의 누군가와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A를 만나면 B와, B를 만나면 A와 소통하는 아이러니.

생각해보면, 어디 그녀뿐일까. 각자 그 대상은 다를 뿐, 우리의 주의력은 끊임없이 분산된다. 집에선 직장 생각, 직장에선 집 생각을 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운동 중 라디오를 듣다가 내 몸에도, 방송에도, 어느 것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위즈덤 2.0> 책표지
 <위즈덤 2.0> 책표지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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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술의 발달로, 현대사회는 2.0 라이프 시대가 되었다고 <위즈덤 2.0>의 저자 소렌 고드해머는 정의한다. 이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받는 1.0 시대와는 다른, 이용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술 발달의 혜택과 더불어 스트레스도, 중독도 2.0이 될 가망성이 짙어졌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실리콘밸리 최대 규모의 연례 컨퍼런스 '위즈덤 2.0'의 설립자이자 진행자이기도 한 소렌 고드해머는 기술과 지혜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저자가 주지하듯, 소셜 미디어는 친지들의 근황을 알게 하는 것은 물론, '아랍의 봄'처럼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힘을 갖고 있기도 하다. IT 기기와 서비스가 보다 자유롭고 열린 세계를 만드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강도 높은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개인이 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술의 발달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최종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으므로, 좌절과 스트레스가 아닌 창의성과 행복을 높이는 방식으로 기술을 이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메일이나 소셜 네트워크, 인터넷 서핑 등으로 불필요할 정도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술 자체는 훌륭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주의 산만, 피로, 좌절, 불안감을 안고 그것에 몰입하는 것은 기술의 노예가 되길 자처하는 것이다.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지속적인 주의력 분산 상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책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주의력 집중을 무수히 강조한다. 그것이 가능해야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해야겠다는 집착이 아닌,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의 몰입이 중요하며, 이 주의력이 곧 창의적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

책의 논의는 기술의 활용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집중하며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는 창의적인 업무 해결능력은 물론, 개인의 행복과도 연결된다.

살다보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릴 때가 있다. 저자는 그 감정 자체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지속성은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면의 여유를 만들어 부정적 감정을 감지하면서도 그것에 동화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의식한다면 이미 그것에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보다 긍정적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기다리는 시간으로 삶의 여유를 찾을 것을 권한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교통 신호등, 인터넷 로딩 시간 등을 스트레스가 아닌,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면하는 시간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다림은 낭비가 아닌 휴식이 될 수도 있고,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는 생산적인 시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또한, 자투리 10분조차 남김없이 활용하려고 스스로를 쥐어짜기보다는, 일과 일 사이 전환하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 그로써 얻는 평안함이나 긴장 완화는, 다음 일에 보다 효율적으로 임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저자는 과거에 매여 있는 것만큼, 미래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고 있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삶의 가치와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말과도 연결된다. 정크 푸드를 먹으며 밤을 새워 게임하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라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 때는 문제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은 현재부터 실행해야 한다는 것.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는 환상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구절들을 표시하다가, 거의 모든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정확한 현실 진단과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부족한 내 글로는 이 책의 절반도 담을 수 없으므로, 더욱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밤낮으로 소셜 네트워크와 카톡 사이에서 방황하며, 정작 자신을 돌보는 것에 소홀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벌써 세 명의 지인에게 추천했고, 자기 앞의 나를 무시한 채 스마트폰 너머의 누군가에게 집중한 친구에게는, 이 책을 직접 선물할 계획이다. 이 정도면 창의적이고 배려 깊은 뒤끝이라고, 우습지만 스스로 칭찬해 본다.


위즈덤 2.0 - 실리콘밸리에 퇴근시간을 만든 기적의 강의

소렌 고드해머 지음, 정미나 옮김, 쌤앤파커스(2016)


태그:#위즈덤2.0, #소렌 고드해머,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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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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