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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일. 숙명여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8월에 합의한 시급 7630원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지난 5월 숙명여대 행정관 앞에서 시급인상 집회를 시작한 시점부터는 194일 만이다. 1년의 반을 시급인상을 위해 투쟁한 그들의 시급은 내년도 최저시급 7530원보다 100원 많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에게 시급인상은 산 넘어 산이다. 지난 8월 10일 숙명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와 시급 7630원을 합의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원청인 숙명여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합의는 학교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숙명여대는 인상된 시급과 그 분담 문제를 용역업체와 원점에서 협상할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3개월. 숙명여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학교나 용역업체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한 채 기다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숙대분회 회장 조득용씨(62)는 "협상이 왜 길어지는지, 언제쯤 끝이 날지 알 수 없어 하루하루가 불안했다"라며 "비정규직이지만 우리 역시 숙명여대의 일원인데 학교가 협상이 길어지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서운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끼리 이럴 때일수록 학교에 트집 잡히지 않게 청소를 더 꼼꼼히 하자고 말했다"라며 "학교로부터 청소상태를 지적받으면 시급 협상에 불리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학교와 용역업체의 협상이 장기화되자 결국, 숙명여대 학생들이 나섰다. 지난달 25일 숙명여대 노동자와 함께하는 학생모임 '만년설'은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들은 "청소노동자의 시급 인상분 930원 중 830원을 부담하기로 약속했던 학교가 업체에게 80원 추가부담을 요구했다"라며 "이는 문제해결을 위한 정상적인 협상으로 보기 힘들다"라고 비판했다. 조득용씨는 "학교는 업체에게 시급 인상분 중 80원을 더 부담하라고 했고, 업체는 60원까지만 더 부담하겠다고 맞섰다"라며 "서로 20원을 더 부담하기 싫어 싸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노동자와 함께하는 모임 만년설의 대자보. 출처 : 만년설 페이스북 갈무리
 숙명여대 노동자와 함께하는 모임 만년설의 대자보. 출처 : 만년설 페이스북 갈무리
ⓒ 김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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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관계자는 "처음부터 학교가 시급 인상분 중 얼마를 부담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없었다"며 "시급인상분 분담에 관해 협상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 "노동자를 학교가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 협상 과정을 알려 줄 의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용역업체 관계자는 "협상 내용에 관해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며 "돈은 줄 것이니 걱정 마라"라고 말했다.  

조득용씨는 숙명여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해 지난 9월 28일 노동청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는 시급 7350원에 합의했지만, 청소노동자처럼 시급 인상분을 받지 못한 숙명여대 경비 노동자의 사례로 접수했다. 그리고 지난 1일, 조득용씨는 업체로부터 학교와 협상이 끝났으니 시급 인상분을 지급하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0일, 시급 7630원에 합의한 지 93일 만에 숙명여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인상된 시급을 받았다.

한국 대학사회에서 숙명여대 사례는 특별하지 않다. 이화여대와 연세대도 용역업체와 합의한 시급을 받는데 각각 114일, 81일이 걸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역업체와 시급을 합의하면, 합의된 시급의 확정과 분담을 두고 용역업체와 학교가 다시 협상한다. 학교가 시급을 확정하는 구조이다 보니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서는 매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학 건물을 점거하는 사태가 반복된다. 올해도 연세대, 홍익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에서 '실질적 고용주인 학교가 시급 인상 문제를 해결하라'는 시위가 이어졌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관계자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학교, 용역업체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으로 자기들 이익을 늘렸다"라며 "원청인 학교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용역업체에게 시급 인상분을 최대한 많이 넘기려고 하다 보니 협상이 길어진다"라고 설명했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교가 노동자를 직접고용 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라며 "대학이 청소, 경비 업무에 대해 용역을 주는 것은 업체에 의한 중간착취를 용인하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대학이 자회사를 설립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희모델'이다. 지난 7월, 경희대는 '케이에코텍'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청소노동자 135명 전원을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경희대 청소노동자 백영란씨(59)는 "외부 용역업체 소속이었을 때와 가장 다른 점은 고용 안전성이다"라며 "학교가 청소노동자의 사용주체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과격한 시위 없이 시급 협상이 빨리 끝났다"라고 말했다. 올해 경희대는 협상 시작 48일 만에 시급 7780원을 확정했다. '경희모델'에 대한 우려도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관계자는 '경희모델'도 학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 자회사가 고용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정인지씨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학교의 태도에 많은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라며 "교육의 장이라는 학교에서 모든 삶에 대한 존중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가르치기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만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혜영 노무사는 "교육기관인 대학이 비정규직으로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사회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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