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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시멘트를 가득 실은 태백선 화물열차 태백선은 개통 직후부터 석탄, 시멘트를 싣고 달리는 주요 화물, 산업 노선이 되었다. 태백선의 구 장락 - 제천역 간 구간에서 촬영했다.
▲ 시멘트를 가득 실은 태백선 화물열차 태백선은 개통 직후부터 석탄, 시멘트를 싣고 달리는 주요 화물, 산업 노선이 되었다. 태백선의 구 장락 - 제천역 간 구간에서 촬영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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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가는 기차를 타면 5시간 동안 태백산 한가운데를 빙글빙글 뚫고 지나가기도 하고, 커다란 조립 다리를 거치기도 한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기차가 대관령을 넘을 수 없었기에 남쪽의 태백산을 넘어갔는데, 이 덕분인지 이 때문인지 원주의 치악산과 정선의 민둥산, 삼척의 도계를 지났다.

그렇다고 하여 태백선이 단순히 풍경을 즐기기 좋은 노선이기만 한 건 아니다. 태백선엔 또다른 의미가 있다. 70년대와 80년대, 심지어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산업을 이끌었던 노선이기 때문이다.

12월 개통에 맞물려(관련 기사: 서울-강릉 1시간 10분, 경강선에 바라는 네 가지) 경강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에 밀려 태백선에 대한 관심이 대폭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태백선을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회색빛 철로에서 지금의 관광선로까지, 태백선의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본다.

역마다 새카맣지만... 역 뒤안길엔 비경이

 태백선 일대에서는 승객을 싣는 객차보다 화물을 싣는 화차를 더 자주 볼 수 있다. 민둥산역 승강장 양쪽으로 화물열차가 늘어서있다.
 태백선 일대에서는 승객을 싣는 객차보다 화물을 싣는 화차를 더 자주 볼 수 있다. 민둥산역 승강장 양쪽으로 화물열차가 늘어서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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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에서 출발한 강릉행 열차는 제천을 지나 둥글게 꺾는 순간부터 진회색빛 화물차들을 마주한다. 회색의 비엔나처럼 생긴 화물열차는 시멘트를 가득 실었다. 이 열차는 현재도 태백선을 먹여살리는 일등공신이자, 태백선이 끊기면 그대로 전국에 건설대란을 안겨줄 수 있는, 없어선 안 될 존재다.

태백선은 현재도 대한민국 시멘트 물동량이 총집합된다. 제천, 영월 일대에서 엄청난 양의 시멘트가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80년대 이전에는 석탄을 주로 실어날랐다면, 지금은 시멘트를 잔뜩 실어나르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태백선을 타고 처음 지나는 입석리역, 쌍룡역 등은 진회색빛 분위기가 역 주변에 가득 감돈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인 추전역도 태백선상에 있다. 해발 800여 미터에 위치한 추전역.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인 추전역도 태백선상에 있다. 해발 800여 미터에 위치한 추전역.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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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을 벗어나면 바로 비경을 만날 수 있다. 태백산맥의 마루를 그대로 관통해 나가는데, 열차는 높은 곳을 자동차처럼 급하게 오르내릴 수 없어 마루에 천천히 올라가고 천천히 내려간다. 터널을 뚫을 수도 없는 위치다. 그대로 블록 형태로 짜맞추는 라멘식 철교와 골짜기를 그대로 타고 넘는 철로를 부설했다.

그래서 태백선을 잇는 기찻길은 여름에는 푸르른 신록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되고, 겨울에는 하얀 눈꽃을 맨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길이 된다. 하지만 한적한 시골을 지나 읍내로 들어오면 석탄을 다뤘던 역 특유의 '검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강원랜드의 밝지만 음험한 분위기가, 시멘트로 먹고사는 지역의 돌가루 색들이 가득하다. 청량리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다섯 시간 동안 서로 다른 풍경을 만난다.

예미, 민둥산, 자미원... 한 번도 보지 못한 동네 만나네

 역 이름만큼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 태백선 민둥산역. 정선으로 향하는 지선이 분기하기도 한다.
 역 이름만큼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 태백선 민둥산역. 정선으로 향하는 지선이 분기하기도 한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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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열차를 타고 태백산을 그대로 뚫어넘다보면 많은 기차역을 만날 수 있다. 영월, 태백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역을 만날 수도 있고, 고한역과 사북역을 지나면 이상한 분위기에 동네 이름은 모르지만 '강원랜드'라는 이름은 기억할 수 있다. 또 낯선 도시를 만날 수도 있다. 예미, 민둥산 등 입에 보드랍게 감기는 역의 이름들이다.

정선의 맨 아랫쪽에 위치한 민둥산역은 원래 증산역이었다가 2009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산 정상에 나무가 없는 정선 민둥산에서 이름을 딴 역이다. 이 역 앞에 읍내가 발달해 있고, 민둥산을 등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선 5일장과는 다른 분위기의 5일장 역시 열리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정말 '5일장'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정선 '증산5일장'은 민둥산역 건너편에서 열린다.
 정말 '5일장'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정선 '증산5일장'은 민둥산역 건너편에서 열린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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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역도 정선 신동읍의 중심지에 있다. 탄광이 활발했던 시절에는 2만 5천 명의 사람들이 '탄광 드림'을 품고 살았다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현재의 한적한 읍 모습을 둘러보며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고, 역 주변에 여전히 남아있는 저탄(貯炭)의 흔적을 보며 옛날의 영강을 느낄 수도 있다.

태백선은 아니지만 강릉행 무궁화호가 지나는 곳에는 이러한 경유지가 꽤나 많다. 강릉행 무궁화호가 태백선의 종점에서 틀어나가는 영동선 초입의 도계역 주변에는 대한민국에서 몇 남지 않은 최후의 탄광이 운영되고 있다. 당대에는 개까지 돈을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는 태백의 철암역 앞은 널찍한 역 구내의 선로만이 그 시절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산업선에서 애물단지 적자선으로, 다시 관광의 중심으로



구 송학역에 가득한 화물 태백선은 다양한 광물을 전국으로 나르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역 주변은 잿빛으로 물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 구 송학역에 가득한 화물 태백선은 다양한 광물을 전국으로 나르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역 주변은 잿빛으로 물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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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은 개통 초기부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산업선으로 이름을 날렸다. 태백선은 당대 유명했던 탄광과 시멘트, 텅스텐 광산을 지나갔다. 광부들이 매번 '강원도 드림'을 꿈꾸며 들어왔다. 광물을 옮기기 위해 열차는 강한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도권 전철이 개통한 해와 같은 해인 1974년에 전철화가 이루어졌다. 당시 경부선도 이루어내지 못했던 기록이었다.

매일매일 산업을 이끌어갔던 석탄을 싣고 각 부두로, 전국 곳곳으로 흩어졌던 태백선에는 그 만큼 새로운 손님들이 쏟아졌다. 1980년에는 EEC라는 이름의 우등형 전기동차를 수입하여, 특실에는 새마을호와 같은 사양의 좌석을 넣는 등 고급열차로 운행했다. 또, 새마을호까지 이들 노선에 합류했다.

하지만 석탄합리화 사업으로 많은 이들이 탄광과 텅스텐광을 떠난 이후 태백선은 시멘트 산업을 위한 쌍용 - 제천 구간을 제외하고는 빈사의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화물 수요는 여전히 많았지만 승객의 수요는 영동고속도로에 밀려 날로 줄었기에 대표적인 적자선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로 인해 비둘기호가 태백선의 지선인 정선선에서 최후를 맞았고, 태백선과 바로 연결되는 영동선에는 2012년까지 열차가 앞뒤로 움직이는 '스위치백'이 운행되었을 정도였다.

언론의 시선 역시 곱지 않았다. 17명의 역무원이 근무하는 쌍룡역은 이용하는 승객이 15명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방만경영의 지표'로 지목됐다. 하지만 실제론 하루 투입되는 직원 수가 다르고, 시멘트 화물 등을 취급해 2010년 수입은 96억 1,500만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한편, 때묻지 않은 자연을 관광하려는 사람들이 태백선 일대에 몰렸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힘입어 영월을 관광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모래시계> 덕분에 정동진역으로 가려는 승객이 늘어 태백선을 지나는 사람이 생겨났다. 2013년에는 영동선과 태백선을 잇는 옛 구간을 활용해 리조트인 '하이원 추추파크'가 개장했다.

태백선에서는 매년 겨울마다 영동선, 중앙선을 함께 관광하는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관광열차인 O-Train이, 정선선에도 관광열차인 A-Train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태백선 연선의 정선, 영월, 태백의 관광수요 역시 대폭 확충되며 최근에는 여러 매체에서 이들 지역을 관광하는 모습을 싣기도 했다.

경강선 개통해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주길

 태백선 일대에 관광 붐을 불러일으킨 중부내륙순환관광열차 O-train.
 태백선 일대에 관광 붐을 불러일으킨 중부내륙순환관광열차 O-train.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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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22일 경강선 만종 - 강릉 구간이 완공되면, 태백선은 강릉행 열차가 꼭 지나야하는 선로가 아니라 '있어도 그만, 없으면 좀 아쉬운' 선로로 변한다. 선로의 상태가 좋아 KTX도 다닐 수 있을 정도인 경강선의 개통으로 서울 - 강릉 간 열차 편수가 느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태백선의 일부 열차는 운행 중단 계획을 내놓았을 정도다.

일단 올림픽이 끝날 때 까지는 태백선 열차가 정동진에서 멈추고, 경강선 열차가 강릉 이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에 한시름 덜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이후 태백선 열차의 위세가 약해져 운행 편수가 줄어든다면, 경북선처럼 하루에 세 번의 열차만이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태백선 열차가 하루 여섯 번 다니는 것처럼, 운행구간은 비록 경강선 KTX의 운행범위에 따라 축소될지라도 태백선과 태백선을 잇는 영동선 동해 - 동백산 구간의 운행 열차는 줄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많은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통학이나 출퇴근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는 열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태백선이 경강선 개통 이후에도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산업선으로의 역할과 관광선으로의 역할, 모두 유지하면 좋겠다. 지역 주민들의 편리한 발이 되면서도,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폐광지역 관광을 위해 모으는 그런 형태 말이다. 주간선의 역할에서 벗어났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태백선의 모습을 기대한다.



대중교통 기사도 쓰고, 교통 칼럼도 날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러면서도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대딩 시민기자. 그리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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