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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21일 방송된 SNL '급식체 특강' 패러디.
 2017년 10월 21일 방송된 SNL '급식체 특강' 패러디.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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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ㅇㄷ'이라 쓰고, '개이득'이라고 읽는다. 휴대전화에 'ㄱㅇㄷ'이 찍혔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 적이 당황했던 적이 있다. 지금이야 표현의 의미는 물론 그 느낌까지도 설명할 정도가 됐지만, 처음엔 반 아이들과의 단톡방 대화 때 적잖은 곤란을 겪었다. 뒤늦게 깨달은 거지만, '초성 문자'는 '^^'나 '-.-;' 따위의 이모티콘을 넘어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필수적인 소통 수단이 됐다.

'ㄱㅇㄷ'이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이익이 생겼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된 경우에 사용하는 표현이다. 유사어로는 '개꿀'이 있는데, 이는 '꿀을 빤다'는 말 앞에 '개'가 붙어 축약된 형태로 강조의 의미가 더해졌다. 거기에 재미있다는 뜻으로 널리 통용되는 '잼'이 뒤에 붙어 '개꿀잼'이라는 파생어도 등장했다. 다만, '개꿀'은 'ㄱㄲ'으로 쓰진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동의한다는 표현인 'ㅇㅇ'이나 웃음을 보내는 'ㅎㅎ', 'ㅋㅋ'의 단계를 지나 이제는 형용사나 동사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ㄴㄱ?'는 누구냐를 묻는 것이고, 'ㅇㄷ?'는 어디인가를, 'ㅂㅇ'는 대화를 마칠 때 쓰는 용어다. 영어로 'bye'를 그렇게 쓴 거다. 국어와 영어를 마구 넘나들며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한번은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아빠의 자녀 사랑 정도를 테스트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걸 그룹과 보이 그룹 구성원들의 사진과 이름을 마구 섞어놓고 매칭시키는 게임으로 곤란하게 만들더니, 이젠 '초성 문자'의 내용과 쓰임새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며 지청구를 했다.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라면서.

서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굳이 시간 들여 길게 쓸 필요가 없다는 요즘 아이들 나름대로의 프로토콜인 셈인데, 종류가 워낙 많아 따라가기가 여간 만만치 않다. 마치 어느 퀴즈 프로그램의 초성 힌트처럼 알쏭달쏭해서 대화의 내용과 맥락을 알아야만 대충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이른바 속도를 숭배하는 시대에 언뜻 미래세대 아이들의 적응 방법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화에 그치지 않고, 언제부턴가 실생활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은어와 비속어를 넘어 상스러운 욕설처럼 들리는 말들이 천진난만한 아이들 입에서 무시로 튀어나온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담임교사와 상담하는 부담스러운 자리에서도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말까지 스스럼없이 내뱉곤 한다.

"선생님, '개빡쳐서' 그랬어요."

친구와 왜 다퉜냐는 질책에 대한 한 아이의 퉁명스럽고 짤막한 대답이다. 굳이 표준말로 바꾸자면, 순간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화가 난다거나 분노가 치민다는 표현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몇몇 아이들은 '화가 난다'는 것과 '개빡친다'는 건 비슷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른 뜻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화나 분노와 같은 '평범한' 한자어로는 격한 감정을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양한 감정 상태를 새롭게 표현한 '신종 의태어'인 셈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개쩐다'가 있다면서, 정말 놀랍다는 뜻으로 거의 모든 상황에 두루 쓰이는 유용한 표현이란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동시에 내포돼 있어 전후 맥락에 따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다간 새로운 국어사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아이들의 설명을 듣노라니, 특이한 공통점 하나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바로 모든 단어 앞에 접두사처럼 '개'가 붙는다는 점이다. 미루어 뜻을 헤아려보니, 하나같이 뒤의 말을 강조하는 부사어처럼 쓰였다. 아이들은 상태와 정도를 설명하는 모든 형용사 앞에 스스럼없이 '개'를 붙였다. '개좋아', '개빨라', '개아파'에서 '개맛있어'까지 어디든 붙이면 말이 됐다.

말마다 "개"를 달고 사는 아이들

대신 수많은 부사어가 적어도 아이들의 언어생활에서는 사라져가고 있다. 너무, 무척, 아주, 매우, 퍽 등 강조의 의미를 담은 말들이 어휘로서의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아이들 모두 그 어휘들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개' 대신에 그런 단어를 써서 말해보라고 했더니, 무척 어색해했다. '개빨라'가 입에 익어버린 아이들은 '매우 빨라'라는 말이 너무 낯설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개'는 '구어체'이고, 너무나 무척 같은 국어사전 속 단어들은 말 그대로 '문어체'가 됐다. 이러다간 머지않아 그들 모두 '고어'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가히 '부사어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수업시간 이런 지적을 했더니, 놀랍게도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다. 몇몇 아이들은 기발하고 재치 있는 언어 조합 아니냐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어차피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인데, 어휘가 단순해지면 시험 준비하기도 쉽고, 우리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되레 반길 만한 일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비속어부터 배우는 꼴이라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사실 요즘 아이들의 국어 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글쓰기 능력과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역량은 고사하고,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술형 시험을 볼라치면, 차마 아이들이 적어낸 답안지를 받아들고 채점하기 민망할 지경이다.

'됬다'나 '무었인가', '빼았다', '~이였다', '~읍니다' 정도는 하도 흔해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지난 중간고사 때는 '않 하고'와 '무릎쓰고'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맞춤법을 채점 기준에 적용하고는 있지만, 오답 처리될 항목이 부지기수라 무척 난감하다. 시험 후 아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국어 시험도 아닌데 맞춤법까지 보는 건 지나치다'고 매번 항의를 일삼는 탓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들끼리 사용하는 '구어체'를 시험 답안지에 스스럼없이 적고 있다는 점이다. 한 아이는 답안지에 '농업생산력 증가로 서민들은 개이득'이라고 적었다. 모범 정답은 '농업생산력의 증가는 서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다'이다. 교사의 출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오답으로 처리하기는 어려웠지만, 맞혔다고 동그라미를 치면서도 못내 찜찜했다.

교실을 뒤흔드는 급식체

이런 와중에 이른바 '급식체'가 교실을 뒤흔들고 있다. 처음엔 그저 개그 프로그램의 한 꼭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이들의 대화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이미 '유행어' 단계를 넘어선 듯 보인다. 모르는 선다형 시험문제 세 개를 찍었는데 모두 맞혔다는 한 아이가 놀라워하며 큰소리로 내뱉은 한마디가 바로 "지렸다"였다. 주지하다시피, 본디 '지리다'는 그런 상황에서 쓰이는 말이 아니다.

비단 그뿐 아니다. 수업시간 비슷한 발음만 나와도 키득거리기 일쑤고, 교과서 속 글자를 '급식체'로 변형시키며 노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숫제 '급식체'의 다양한 표현을 모르면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가 됐다. 무슨 '랩 배틀'처럼 아이들끼리 빠르게 주고받으며 경쟁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급식체'의 핵심어인 "오지구요, 지리구요"는 아예 그들 대화의 후렴구가 됐다.

사실, '급식체'라는 말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을 일컫는 '급식충'이라는 멸칭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칠게 말해서, 은연중에 스스로를 비하하도록 만드는 꼴이다. 그럼에도 낄낄대며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번듯한 일상용어처럼 쓰이는 것은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건 '선'이고, 재미없으면 '악'이다.

옳고 그른 것은 요즘 아이들에게 더 이상 선악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과거 '일베'가 이를 증명한다. 한 아이는 '일베 현상'을 이렇게 해석했다. '일베짓'이 나쁜 건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그래도 '일베'만큼 재미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관심을 끌고 온갖 패악질조차 용서되는 현실을 그는 '재미 만능주의'라고 표현했다.
괜히 '급식체'까지 건드렸다가 벌집 쑤신 꼴이 되고 말았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든 모양새라며, 대번에 아이들로부터 '진지충'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심지어 그들로부터 좋은 교사,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되는 '비결'을 조언받기까지 했다. 선뜻 동의할 순 없었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하니 이 가을 을씨년스러운 날씨처럼 씁쓸하기만 하다.

"요즘엔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급식체'를 모르면 구닥다리 취급당하기 십상이에요. 몇몇 젊은 선생님들은 따로 '급식체'로 말하는 연습도 하신다던데, 수업이 재미있으려면 당장 '학생들의 언어'로 말해야 해요. 좋은 수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죠. 그렇잖아도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교과서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건 '극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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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