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말로 단순한 평가전이 아니다.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축구의 자존심과 신뢰, 그리고 어쩌면 신태용 감독의 운명까지 걸려있는 단두대 매치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0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를 상대로 평가전을 치른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위의 콜롬비아는 62위에 그친 한국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래 격돌한 상대 중에선 랭킹으로나 전력으로나 가장 최상위 팀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세 페케르만 감독이 이끄는 콜롬비아는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는 8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고 이번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남미 예선을 4위로 통과하며 통산 5번째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주포 라다멜 팔카오(AS 모나코)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에이스 하메스 로드리게스(바이에른 뮌헨)를 필두로 카를로스 바카(비야레알), 후안 콰드라도(유벤투스) 등 빅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들이 즐비하며 이들 모두 한국전 출전이 유력하다. 최정예로 구성된 콜롬비아는 객관적으로 한국이 최상의 전력과 분위기에서 상대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난적이다.

신태용호는 현재 위기에 몰려있다. 신태용 감독 부임 후 대표팀은 4경기에서 고작 2무 2패에 그치며 아직까지 승리가 없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도 최악이었다. 대표팀의 계속된 부진에 신태용 감독 본인도 여러 가지 구설에 휘말렸고, 설상가상 신 감독을 보호해야 할 축구협회는 각종 내부 비리와 히딩크 파동 등으로 뭇매를 맞으며 만신창이가 됐다. 성난 팬들로부터 '감독교체' 요구에서부터 '이럴 바에 월드컵 본선에 나가보나 마나' 같은 회의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다.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 코치를 역임한 베테랑 토니 그란데 코치를 영입하며 신 감독을 보좌하게 했고, 축구협회 내부 조직도 개편하여 홍명보-박지성 등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들을 행정 요직에 기용하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성난 팬심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협회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역시 대표팀의 경기력이다. 협회는 내심 이번 콜롬비아-세르비아와의 2연전을 통하여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강팀을 상대로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국축구를 바라보는 비관적인 분위기도 조금은 개선되지 않겠느냐는 히망이다. 하지만 만일 지난 유럽 원정(러시아-모로코전) 같은 대참사가 반복된다면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이번에야말로 신태용 감독의 운명까지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다.

대표팀이 이번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유난히 강조한 부분도 '정신력' '투지' 같은 단어들이었다. 그동안 평가전에서 공격축구니 변형 스리백이니 하는 대표팀의 전술-구조적인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거론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그만큼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도 이번 경기의 중요성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표팀은 최근 경기에서 승패를 떠나 한국축구 특유의 악착같은 근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파가 늘어나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젊은 스타들이 태극마크를 대하는 절실함과 책임감이 없다는 '정신자세'의 문제가 팬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신 감독은 "선수들의 눈동자가 살아있다.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우리 선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전술이나 마음가짐이 잘 준비됐다고 생각한다"며 모처럼 자신감을 보였다.

가장 중요한 점검 포인트는 역시 수비다. 신태용 감독은 클럽팀과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을 거치며 공격적인 성향에 비하여 수비가 늘 약점으로 지적받아왔다. 특히 지난 유럽원정에서는 2경기에서 무려 7실점을 내주며 수비 조직력이 완전히 붕괴된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는 해외파 위주의 반쪽짜리 선수단 구성으로 전문 풀백의 부재와 일부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가 두드러졌다. 신감독은 이번 대표팀에는 고요한, 최철순, 김진수, 김민우 등 주전급 좌우 풀백 자원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하지만 중앙수비진에는 김영권-장현수 등 기존 선수들을 여전히 신뢰하는 모습이었다.

신 감독은 수비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콜롬비아전에서는 정면승부를 선언했다. 신태용호도 최정예를 표방한 만큼, 강팀을 상대로 라인을 내리고 수비 위주의 소극적인 플레이보다는 힘 대 힘으로 맞붙어 우리의 경쟁력을 확인해보겠다는 의지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콜롬비아는 앞서 한국을 대파한 러시아-모로코와 비교해도 세계 정상급의 공격력을 보유한 팀이다. 역시 본선 진출국인 콜롬비아를 상대로 미리 보는 월드컵 본선체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태용호 수비력의 민낯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공격진에서는 역시 손흥민 활용법이 화두다. 신태용호의 주포인 손흥민은 최근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비하여 대표팀에서는 부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모로코전에서 PK로 오랜만에 득점을 올렸지만, 필드골로는 1년 넘게 무득점에 그치고 있다.

소속팀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는 손흥민은 신태용호에서도 이번에는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황희찬, 김신욱, 이동국 등 우수한 공격자원들이 많이 빠진 상황에서 손흥민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대표팀의 공격력이 좌우될 전망이다. 중원에서 손흥민에게 킬패스를 공급해줘야 할 플레이메이커이자 수비에서는 콜롬비아의 공격의 핵심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저지해야 할 주장 기성용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콜롬비아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넘친다. 다소 비장한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한국과 달리, 페케르만 콜롬비아 감독은 경기 전날임에도 한국 선수단의 구성이나 전력분석에 다소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며 화제를 일으켰다. 강팀의 오만인지 아니면 의도된 허허실실 전략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시 최정예가 출전한 콜롬비아가 평가전을 설렁설렁 치르기 위하여 머나먼 아시아 원정까지 왔을 리는 만무하다는 사실이다.

페케르만 감독은 "한국전을 월드컵 본선에 임한다는 자세로 치를 것"이라고 선언하며 신태용호에 선전포고를 날렸다. 콜롬비아에게 한국전이 본선을 대비한 모의고사라면 신태용호에게는 말 그대로 월드컵 본선에 버금가는 외나무다리 승부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신태용호로서는 배수의 진에 임한다는 각오로 나서야 할 콜롬비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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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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