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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책표지.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책표지.
ⓒ 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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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집안일을 하며 한 시간 남짓 입었던 바지를 세탁기에 넣고 왔다. 몇 번 입지 않아 새 옷에 가깝지만 빨아서 '헌옷으로 기증할' 옷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즈음에 구입했기 때문에 봄에도 입을 수 있다. 그런데 올 봄에 단 한 번도 입지 못했다. 잊었기 때문이다. 나름 입고 싶어서 샀을 것인데 왜 몇 번밖에 입지 못했을까. 비슷한 옷도 여럿이고, 뭣보다 사지 않아도 됐을 정도로 입을 바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충동적으로 구입한 것이라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나 내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부끄러운 옷이 어디 이 바지뿐일까. 며칠 전 겨울 외투를 꺼내다 올여름에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여름 셔츠 두벌을 발견했다.

그처럼 입지 않고 지나는 옷들이 있을 정도로 입을 것이 충분한데 올여름에도 몇 벌이나 샀다. 좀 더 부끄러운  고백인데, 몇 년째 전혀 입지 않으면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그런 옷들도 몇 벌이나 있다. 어차피 입지 못할 것이 빤한데, 그걸 잘 알면서도 버리기 아까워 그냥저냥 끌어안고 있는 그런 옷 말이다.

'옷장의 옷을 대폭 정리하기 위해서 첫 번째 해야 할 것은 '필요 없는 옷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서른이 넘은 여성이라면 필요 없는 옷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 유행은 돌고 도는데, 언젠가 다시 입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유행은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당신 나이는 과연 몇일까? 예전과는 다른 중년 아줌마가 되어 입고 싶어도 못 입게 된다.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처럼 아무 옷이나 어울리지 않는다.'(31~32쪽)

'옷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옷걸이 수를 정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항상 일정한 수의 옷걸이만 갖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옷걸이에 걸 수 없는 옷이 생기면 그때 무언가를 처분해야만 하는 타이밍인 것이다.'(38쪽)

'아침에 옷을 챙겨 입을 때, '오늘은 이걸 입어야지' 하고 입어 보았지만, 역시 '이건 아니야'라며 거울 앞에서 벗어버린 옷이 있을 것이다. 그 옷을 옷장에 다시 걸지 말고 그대로 처분하라.'(66쪽)

최근 몇 년 이와 같은 옷들이 늘었다. 그래서 봄이나 가을에 옷을 정리하다가 종종 많은 것들이 쌓였을 때의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변화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나를 위해 올 초에 읽은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유나 펴냄)를 다시 읽고 있다.

저자는 여러 패션 잡지에서 스타일리스트로 30년 넘게 일해오고 있다고 한다. 패션 관련 일에 오래 종사해온 만큼 다양한 옷들을, 그리고 많이 가졌을 것 같다. 그런데 저자가 개인의 가장 이상적인 옷 그 양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행용 트렁크 두 개를 채울' 정도에 불과하다.

저자는 프랑스 여자들의 옷에 대한 개념과 소비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는데, 게다가 '프랑스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옷장들은 폭 1미터를 넘지 않는 작은 옷장'이라며 지나치게 많은 옷들을 가졌던 지난 날의 자신을 고백한다.

그처럼 "적은 옷을 가져야 하는 이유와 가치를 터득한 후 그런 삶을 살고자 이런저런 이유들로 버리지 못했던 옷들을 과감히 처분하는 순간부터 삶이 홀가분해졌다. 매우 작고 심플하고 작은 옷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생활로 정신적으로 훨씬 자유롭고 편해졌다. 나아가 옷 하나하나에 훨씬 많은 애정이 갔고, 훨씬 세련되게 입을 수 있는 멋쟁이가 되었다"고.

부러운 경지이다. 저자처럼은 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리를 하며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옷만으로 살 수 있을까? 최소한의 옷으로 멋쟁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입어 볼 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교환하지 않았는데 왠지 불편해 몇 번 입지 않고 버리는 것이 종종, 이런 낭비를 막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현장에서의 경험과 옛날과는 전혀 다른 현대의 옷의 흐름 등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조언한다. 최소한의 옷만 가져야하는 이유와 그런 생활을 위한 노력 그 다양한 방법들을, 꼭 필요한 옷을 구입하는데 알아야 하는 것 등을 말이다.

'세일에 임하는 자세는, 평소와 똑같이 지금 당장 입을 수 있는 옷만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얼마나 더 입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12월 말에 하는 겨울 세일이라면, 입을 수 있는 기간은 1월과 2월, 딱 2개월이다. 그 2개월 동안에 몇 번 입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가성비를 따져 구매하는 것이 옳다.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인 11월에 정가로 구매해 4개월간 입는 것과, 반액 세일가로 구매해 2개월간 입는 경우 모두 가성비는 같다. 세일이란 것이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평소보다 싼 가격으로 득템하는 기분을 즐기느라 불필요한 옷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세일 상품을 마치 비품으로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 패션에 대해서만큼은 비축할수록 걱정만 늘어간다. 다음 해, 또 그다음 해 겨울에도 입을 거란 생각으로 세일기간에 코트를 산다고 치자. 하지만 내년 겨울은 올해와 다르다. 다른 디자인의 코트가 유행할 수도 있다. 운 좋게 다시 입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인 것이다. 베이식한 디자인이라면 괜찮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마다 옷의 넥라인이나 소매 모양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베이식한 것일수록 늘 새롭게 업데이트해야 한다.'(144~145쪽)

실은 봄을 앞둔 겨울 끝에 이미 읽은 책이다. 제목에 이끌리고, 언제부턴가 인터넷 쇼핑이 잦아지고, 불필요한 옷들이 늘고 있음을 느끼며 내게 꼭 필요한 책이다 싶어 구입해 읽었다. 빗나가지 않았다. '나도 그런데' 공감하기도 하고,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바쁘고 급한 일에 치여 미처 소개하지 못하고 묵히고 말았다.

책을 미처 소개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은 이후 옷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많은 옷들을 버리기도 했다. 아울러 즐겨찾기했던 쇼핑몰들에서 탈퇴, 정리하기도 했다. 필요 이상의 옷이나 물건 그리고 먹을 것을 가지는 것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이란 생각에 예전처럼 무엇이든 쉽게 구매하지도 않는다. 옷만 아니라 먹을 것과 생활용품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저자처럼 명쾌하게 버릴 수 있는 사람도 못되고, 패션에 그다지 밝지도 못해 가지고 있는 옷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옷을 사는 것을 되풀이 하고 있다. 눈에 띄게 달라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책 덕분에 앞으로 눈에 띄게 많이 달라질 것이라 나 자신에게 스스로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 풍수 인테리어 관련 글에서 거주공간에 물건들이 많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운이 흐려지고 그래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길 읽었다. 사실과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옷이 많으면 그만큼 먼지가 많이 쌓일 수 있고, 진드기 같은 것들이 기생할 가능성도 높을 수밖에 없다. 옷이 많은 그만큼 훨씬 많은 진드기가 기생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이와 같은 지레짐작만으로도 많은 옷을 가지는 것이 건강에 결코 좋지 않다는 생각은 결코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의 조언에 좀 더 강하게 세뇌 당했으면 좋겠다'의 바람으로 요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옷을 입고 사는 한평생 도움이 될 책이란, 그래서 책이 말하는 것들을 많이 알면 알수록 실천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기대로 말이다.

20대답게 패션에 민감하고 민첩한 딸은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직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읽지 못한 눈치다. 오늘, 이 책을 딸 책상에 올려놔야겠다.

덧붙이는 글 |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지비키 이쿠코 씀, 권효정 옮김) | 유나 | 2016-11-28 ㅣ정가: 12,000원.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지비키 이쿠코 지음, 권효정 옮김, 유나(2016)


태그:#옷(패션), #헌옷 기증, #미니멀리즘, #정리 수납, #유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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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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