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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심장병 환자들의 잃어버린 미소 되찾아주는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

지난 11월 3일 낮 12시, <심장이식인들의 모임>이 열리는 서울아산병원 동관 6층 소강당에는 말기심장병환자들과 심장이식인들의 표정을 담은 연필초상화가 강당 벽 사방에 가득히 전시되어 있었다.

 심장이식인의 모임에 전시된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인의 모임에 전시된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서울아산병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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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상화들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이식을 받은 이태권(63세, 대구 거주)씨가 혼을 담아 연필로 그린 그림들이다.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그려온 연필초상화 100여 점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일부러 표구를 하여 싣고 왔다. 환우들이 오기 전에 행사장에서 바쁘게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이태권 씨를 만났다.

"와우! 이렇게 많은 그림을 언제 다 그리셨나요?"
"환우님들이 자신을 좀 그려 달라는 부탁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그려봤습니다."
"표구까지 해 오신 것 같은데... 수고비라도 좀 받나요?"
"아닙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전부 무료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이렇게 정성이 들어 있는 그림 한 점을 그리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갈 텐데... 몸도 불편하신데 힘들지 않으신가요?"
"네, 적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지요. 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행복해요. 그리고 연필을 든 순간부터는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그림그리기에만 몰두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하, 그러시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연필로 초상화를 그리느라 힘든 이렇게 작업을 하는 이태권씨는 한 번도 아니고 두 차례나 심장이식을 받아야 했던 기구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처음 심장을 이식하기 이전인 3년 전 그는 갑자기 숨이 차오르고 자주 기침이 나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갔다. 그리고 뜻밖에 심부전증이란 말기심장병 진단을 받았다.

"지금으로선 심장을 이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김재중 교수로부터 이식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길어야 2년 정도 시한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청천벽력도 같은 판정을 받았다.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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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갑자기 심장이 멎어서 돌연사를 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그러나 그는 심장이식을 하면 정상인과 똑같이 살 수 있다는 김재중 교수의 확신을 믿고 자신의 생명을 김재중 교수에게 맡기기로 했다.

점점 심부전 증세가 더욱 심해져 숨이 차고 한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그는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이식 대기자 명단을 올리고 서울아산병원 심장병동인 144병동에 입원을 했다.

그러나 수술의 두려움보다 더 큰 고통은 언제 심장이식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 채,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받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심장은 다른 장기와는 달리 한 사람의 생명의 죽어야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이기 때문이다.

피를 말리는 기다림의 고통 속에서도 이태권씨에게 큰 희망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그보다 먼저 심장이식을 받은 동료 환우들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인들의 모임에 참석한 심장이식환우들. 먼저 심장을 이시기한 이들은 이태권씨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인들의 모임에 참석한 심장이식환우들. 먼저 심장을 이시기한 이들은 이태권씨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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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뵌 적도 없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환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곧 좋은 인연을 만나 이식을 하면 나도 자신들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인들의 모임인 <다시 뛰는 심장으로> 회원들(회장 최태호, 밴드 가입기준 약 400명)은 외래에 올 때마다 수시로 그를 찾아와 자신들의 심장이식 체험담 등 심장이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자신들의 산 체험을 생생이 들려주는 그들의 격려가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또 한 가지, 그 긴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연필로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심장병동에 입원하면서부터 떨리는 손으로 연필을 잡고 주변의 환자들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미대 지망생이었지만 색맹 검사에서 적색과 녹색을 구분할 수 없는 적록색약 판정을 받아 할 수 없이 미대 지망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빨간 단풍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워낙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종이만 보면 틈나는 대로 연필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이태권씨가 그린 연필초상화
 이태권씨가 그린 연필초상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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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심장병을 앓고 나서부터 그는 왠지 연필로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졌다고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연필을 들고 웃음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심장이식대기 환자를 그렸는데, 그 초상화를 받은 그가 웃으며 너무나 기뻐하더란다.

그 후부터 그는 말기심장병 입원환자와 문병을 오는 동료 심장이식인들의 초상화를 한 사람 두 사람 그려주기 시작했다. 연필을 잡고 초상화를 그리는 순간에는 정신이 집중되고 모든 잡념이 사라지며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어 그 자신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그려준 초상화를 받은 심장병 말기환자들이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절망과 좌절의 기다림 속에서 피를 말리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말기심장병환자들은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언제 자신에게 차례가 올지도 모르는 장기기증, 그렇게 기다리다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초조함에 그들은 거의 웃음을 잃어버리고 있다.

 말기 심장병환자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 그ㅡ이 연필초상화는 환자들의 얼굴에 살을 붙이고 미소를 가미하여 보는이로하여금 누구나 폭소를 자아내게 하며 잃어버린 웃음을 찾게 해준다.
 말기 심장병환자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 그ㅡ이 연필초상화는 환자들의 얼굴에 살을 붙이고 미소를 가미하여 보는이로하여금 누구나 폭소를 자아내게 하며 잃어버린 웃음을 찾게 해준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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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에게 이태권씨의 연필초상화는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게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그린 초상화는 본래의 얼굴보다는 다소 코믹한 요소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병고에 시달리느라 여윈 환자의 얼굴에 살짝 살을 붙이고, 불안과 공포에 찌들어 어두워진 얼굴을 미소가 번지는 밝은 얼굴로 변모시켰다.

그래서인지 이태권씨가 그려준 연필초상화를 받은 환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먼저 폭소를 터트렸다. 그렇게 잠시 아픔을 잊고 폭소를 터트리는 환자들의 그런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자신도 행복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하는 환자들은 거절하지 않고 누구나 모델로 삼아 무료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두 번이나 가슴을 열어야 했던 이태권씨의 작은 희망

심장병동에서 연필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드디어 그에게도 장기기증 차례가 되어 그는 2015년 11월 30일 심장이식을 받고 기적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식을 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식을 받은 심장에 부작용이 일어나 또 다시 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2차 시한부 진단이 가혹하게 내려졌기 때문이다.

"심장을 재이식을 해야만 살 수 있다니… 이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말로는 이루 표현 할 수 없는 좌절과 공포, 그리고 끝없는 절망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이식을 하여 정상인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는 김재중 교수의 진단과 확신을 다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는 언제일지도 모르는 기약이 없는 장기기증을 기다리기 위해 심장병동에 재입원을 했다. 그리고 입원을 한 후 그는 또 다시 연필을 잡고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환자뿐만 아니라 144병동의 간호사와 의사도 그렸다. 육체적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힘이 들었지만 그는 오직 그림을 그리는데만 몰두했다. 그래야만 재이식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떨쳐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권씨가 연필로 그린 초상화는 화나자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고 있다.
 이태권씨가 연필로 그린 초상화는 화나자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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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다가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허지만 그런 시련 속에서도 그가 그린 연필초상화는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144병동 환자들을 미소 짓게 해주었다.

마침내... 그는 재입원한지 3개월 만인 지난 4월 20일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받아 심장을 재이식하는데 성공하여 기적적으로 제3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기적 같은 일이 저에게 두 번이나 일어날 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기적처럼 덤으로 얻은 값진 생명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이라도 좀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연필을 잡고 초상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두 차례나 심장이식을 받은 이태권씨(우)와 그를 뒷바라지한 부인(좌). 그는 앞으로도 그려주기를 원하는 환자들에게는 작은 재능기부를 하여 그들에게 미소와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두 차례나 심장이식을 받은 이태권씨(우)와 그를 뒷바라지한 부인(좌). 그는 앞으로도 그려주기를 원하는 환자들에게는 작은 재능기부를 하여 그들에게 미소와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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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주기를 희망하는 환자들의 요청을 마다않고 연필로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그린 환자와 의료진의 초상화는 줄잡아 240여 점이 넘는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많이 힘이 들지요. 허지만 절망과 좌절 속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말기 심장병 환자들에게 용기와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에게 심장을 주신 '그 분'을 위해서라도 남을 위해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고작 그림을 그리는 일 뿐입니다. 허지만 말기심장병 환자들에게 두 차례나 아픈 가슴을 열고 심장을 이식하고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는 내 자신을 보여주며, 연필초상화라도 그려서 그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되찾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는 비록 그림을 그리는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자신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가신 '그분'을 생각하면, 그가 연필로 그리는 초상화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일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어 희망을 찾게 해준 이태권씨에게 서울아산병원 김재중 교수(심장병원장)가 감사의 꽃다발을 전해두고 있다.
 환자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어 희망을 찾게 해준 이태권씨에게 서울아산병원 김재중 교수(심장병원장)가 감사의 꽃다발을 전해두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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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심장이식인들의 모임에서 그는 동료 심장이식인들의 뜨거운 갈채 속에 서울아산병원 김재중 심장병원장으로부터 감사의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두 번이나 심장이식을 받는, 인고의 세월 동안 묵묵히 그를 지켜주며 간병을 해주고 응원을 해준 그의 부인이 함께하며 활짝 웃고 있었다.


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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