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대기업 스크린 독과점 배급을 지적하며 “정부가 갖고 있는 문화시서르 구청이 갖고 있는 문화 센터, 또 종교단체에서 갖고 있는 문화시설 등을 활용해 공공 배급망을 만들자”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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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힌 배우' 문성근의 분노 "나 죽이는 건 상관없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훨씬 앞서 '문제적 배우'로 기꺼이 활동한 문성근.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를 거치며 연극과 영화에서 그가 보인 인물은 대부분 시대에 불화하는 문제적 인물이기도 했다. 연극 <칠수와 만수>,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 우리는 스크린 속에서 고뇌하고 해당 인물을 떠안은 문성근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다.

동시에 그는 영화행정가로서도 두각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 주도의 영화진흥공사가 1999년 민간자율기구인 영화진흥위원회로 거듭난 직후, 그는 영화계 추천으로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게 된다. 최근 블랙리스트 건과 함께 문제가 된 모태펀드 아이디어는 바로 그가 부위원장 시절 제시한 것이다. 다양성 확보와 민간 투자의 활성화를 위한 모델이 지난 정권의 개입으로 오히려 영화인들을 자본검열로 옥죄는 도구로 전락했다.

새 영진위원이 구성됐고, 새 영진위원장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는 시점에 그에게 몇 가지 제언을 부탁했다.

수직계열화의 늪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민간 운영 초기라 여러 잡음이 많았고, 스스로도 "행정가 역할을 하면서 정서 구조에 변화가 생겨 배우로선 마이너스였다"고 고백할 정도로 녹록지 않았지만 100일 남짓한 재임 동안 문성근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쭉 이어진 영화 정책의 뼈대를 세우는 데 일조했다. "모태펀드를 비롯해 미디어센터 건립, 독립영화제작 지원 등 모두 생태계 안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수립한 정책들이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다 깨졌다"고 문성근은 강도 높게 비판했다.

"모태펀드는 사실 산자부(산업자원부)에서 만든 걸 이쪽으로 가져온 거다. 콘텐츠진흥회라든지, 영진위라든지 30억을 넣고, 민간에서 270억을 넣어 300억을 만들어 투자하자는 거였다. 모태펀드의 의미가 손해가 나면 정부가 일정 금액을 까준다는 것이거든. 30억까지. 투자 활성화를 위해 들여온 건데 (민간중심이기에) 정부에서 투자심사 회의에 안 들어갔었다. 근데 박근혜 정권에서 정부가 사람을 거기에 파견한다. 그 사람이 (투자심사회의 등에서) '왜 이 배우가 돈을 이렇게 많이 받아?' 이러면 민간에서 알아듣는 거지. 투자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하고. 이런 말이 증거로 남기 쉽지 않지만, 정부가 누굴 파견했는지 그게 실행돼 투자를 받지 못한 작품은 무엇인지까지는 밝혀야 한다."

모태펀드 문제가 정부가 개입한 자본검열이었다면, 그보다 더 오래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다. 사실상 영화 정책의 일관성이 깨지면서 민간 자본은 자신들이 작품을 통제하기 쉬운 쪽으로 산업 구도를 재편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영화 <군함도> 예를 들면서 문성근은 이 문제를 지적했다.

"수직계열화 문제가 곪아서 나타난 게 <군함도>의 2000개 스크린이다. 류승완 감독이 욕먹을 게 아닌 CJ엔터테인먼트가 욕먹을 일이지! 수직계열화는 정책 차원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현재 국회 구성으로는 어렵고 다음 국회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나가야 한다고 본다. 사실 이 와이드릴리즈 방식(개봉 때 최대한 극장 수를 많이 확보하는 배급-기자 주)은 미국 영화를 막아보자고 받아들인 것이긴 하다. 할리우드가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는 와이드릴리즈로 수익을 뽑아내면서 유럽영화가 망한 측면이 있거든. 우리도 거기에 익숙해진 거지.

이건 투자배급사가 그런 방식으로 주문하는 측면과 함께 대박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영화인들의 욕망이 합쳐진 결과다. 수직계열화 해체, 스크린 독과점 규제 등을 법과 제도로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영화계도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투자배급사가 중대형 영화 몇 편보다 대형 작품 하나 하는 게 사업성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던데 이건 길게 보면 다 죽자는 길 아닌가?

이런 걸 영화계 전체가 같이 고민하고 함께 대응한다면 바꿔나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노사정 타협으로 스태프 인건비가 올랐고, 대형영화 중심으로 판이 짜지면서 스타 배우들의 출연료가 올랐다. 감독들도 대작 욕심이 있을 수도 있고….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선간 끊어야지. 1990년대 초 안성기 형과 내가 출연료를 1억 이상 받지 말자고 얘기해서 여러 배우의 동의를 받아 잠시 그리한 적이 있다. 물론 모 배우가 깼지만(웃음). 반 독과점 대책위 같은 게 만들어지는 모양인데 이 사안도 고민했으면 좋겠다."

자본의 힘을 견제하는 공영배급망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이 대목에서 문성근은 모태 펀드 구성 당시 영화인들에게도 투자에 참여하라고 권했던 일화를 언급했다. CJ와 롯데, 그리고 당시 막강한 영화사 시네마서비스 3자 구도에 중소영화사 연합까지 더한 4자 투자 집단을 구상했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투자를 받던 영화사들이 투자자의 위치로 서는 걸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 이후 시네마서비스의 프리머스 극장을 CJ가 가져가면서 현재의 독과점 형태의 초석을 다진 계기가 된다.

"영화인들도 CJ를 공공의 적으로 놓고 욕하며 스트레스 풀 일이 아니다. CJ에겐 다양성과 창의성을 위해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영화인 스스로도 한국 시장에 맞는 예산 규모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쓰면 기본적으로 배급사는 1500개, 2000개 이상 극장을 확보하려 하지 않겠나. 공동의 책임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합의한 대로 제안하면서 동시에 외국시장을 확보하지 않은 작품인 경우 100억 원대를 넘기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옥자> 같은 건 해외자본인 넷플릭스가 만든 거니 그런 사례는 빼고."

새 위원들과 위원장이 활동할 영진위에 대해 문성근은 그간 조국이 어려워 독립운동이든 먹고 살기 위해 국경을 넘은 재외동포 자녀들에 대한 영화교육이나 연극계 지원 등을 제안했었다. 동시에 이 지면을 통해 그는 '공영 배급망' 아이디어를 전했다. 절반은 정부 혹은 지자체가 나머지 반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반관반민의 형태로 전국 각지의 문화센터 등을 활용하자는 방안이다. 대기업 독과점 배급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1군 1극장 정책을 폈다. 각 군과 읍 단위로 짓자는 거였는데 대부분 강당처럼 지어놨더라. 이걸 다시 리노베이션 할 시기가 왔다. 박원순 시장 역시 서울시가 갖고 있는 상영시설을 활용하자고 적극 말하더라. 정부가 갖고 있는 문화시설, 구청이 갖고 있는 문화 센터, 또 종교단체에서 갖고 있는 문화시설 등을 활용해 공공 배급망을 만들자는 거다. 지금 디지털 상영료가 비싸다고 극장들이 제작자들에게 부담하게 하잖나.

이런 대안 상영관이 500개 정도 나오면 CGV 상영을 견제할 수 있다. CGV가 불공정 거래해? 그럼 거기에 영화 안주고 공공배급망을 활용하면 된다. 맨날 입으로 욕해봐야 바뀔까. 이렇게 힘으로 압박해야 바뀌지. 소방법이 문제인데 준 상영관에 맞는 조항을 추가하는 식으로 해도 될 것이다."

덧붙여 최근까지 이어진 부산국제영화제 파행 운영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정치권에 있어서 그 부분에 있어서 정보가 잘 입력이 안 됐었다"면서도 그는 일련의 상황, 그러니까 서병수 부산시장과 김동호 부산영화제 이사장,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영화계 사이 일부 분열 현상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무식한 정치인이 해코지한걸 우리가 비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책임을 따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다 자기 입장이 있어서. 근데 자기 입장에만 빠지기 시작하면 사소한 일이 크게 느껴진다. 인간이 이성적인 거 같지만 그냥 동물이다. 정서적 동물.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서 사이가 벌어진 면도 있는데 상대에 대해 미움을 걷어내고 정확하게 인식할 건 해야 한다. 감정이 상한 부분은 스스로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우매하냐면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김대중 총재가 영국에서 귀국했을 당시 공항에서 어떤 기자가 'YS를 만날 생각이 있나?' 물었는데 'YS가 뭐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일이 있었다. 그걸 신문에서 보고 YS가 꽁한 거였다. 이후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YS가 '날 만나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며?'라고 따진 일이 있었다. 그 말에 김대중 대통령이 '아무리 기자라지만 대통령을 YS라고 부르기에 (화가 나서) 뭐야? 그랬던 것'이라 해명해서 오해가 풀렸다더라.

정치권도 이런 사소한 걸로 틀어지곤 한다. 근데 영화인들은 어떤 상황이 잡히면 그걸 펼쳐 영화 한 편을 만드는 사람들 아닌가. 홍상수 감독이 자기 메모 하나로 영화 한 편을 만들 듯이. 그래서 부산영화제 사태에 대해 서로 오해하고 만날 수도 없는 사태까지 온 거라고 본다. 인간은 지독하게 감정적인 동물일 뿐이다. 서병수가 사과하고 인정했음 딱 끝났겠지. 근데 정치인은 사과 안 해. 이제 그는 공천을 못 받을 것이다. 그냥 영화계를 우습게 안 거지. 그러다가 된 통 당한 거고."

후회 없는 삶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문성근씨가 지난 10월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여러 차례 그는 인터뷰 등에서 지금까지의 선택과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대기업 사원에서 돌연 극단에 들어간 뒤부터 그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 지금의 블랙리스트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겪었지만 다시 한번 그는 "후회는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가진 재능에 비해 정말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또 중요한 시점마다 정치인으로서도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다시 산다고 해도 이것보다 나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을 함에 문성근은 거침이 없었다. 그 자체로 실천하고 움직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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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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