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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사진은 모두 60mm*70mm 크기의 중형필름으로 촬영 후, 직접 스캔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사이즈 조정 외 다른 보정은 없습니다. 사진 설명 앞의 괄호에 있는 정보는 필름의 명칭입니다. - 기자 말

전날 오후에 황점마을에서 출발하여 삿갓재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8Km 가량을 줄기차게 걸어 백암봉에 도착했다. 본 기사는 덕유산 종주 여정 중 마지막, 백암봉-중봉-향적봉-백련사-삼공탐방센터에 대한 여행기이다.

(Ektar100)
▲ 향적봉에서 만난 눈부신 아침 (Ektar100)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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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은 산을 잘 타지 못해도 누구나 한 번쯤은 올라와 봤을 만큼 정상으로 가는 접근성이 좋다. 케이블카로 설천봉까지 단숨에 오르고 거기서부터 20분만 걸으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향적봉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로 그곳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대피소가 있기 때문에 별 사진이나 일출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향적봉에 도착했다면, 그곳에서 20분가량을 더 걸어서 중봉까지는 꼭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덕유산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꼽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덕유평전을 발아래로 조망할 수 있고 향적봉을 올려다볼 수 있으며 시원하게 뻗어있는 남덕유산까지의 능선 또한 볼 수 있다.

(Velvia50)
▲ 중봉에서 바라본 향적봉의 모습 (Velvia50)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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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종주 길은 다양하다. 그리고 남쪽에서 가느냐, 북쪽에서 가느냐에 따라 느낌도 다르다. 이번 산행은 남쪽에서부터 진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첫째, 해를 등지고 걸으며 순광으로 사진을 담기 위해서였고 둘째, 혹시 무릎의 상태가 매우 안 좋으면 하산할 때 케이블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중봉을 거쳐 향적봉으로

백암봉까지 왔으면 둘째 날 걸어야 할 길의 3분의 2는 걸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발바닥이 상당히 아팠다. 그래도 중봉으로 가는 길에 놓인 다양한 가을 색들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행복했다. 걷다 보니 이곳은 원추리 군락지로, 해마다 6월에서 8월까지 노란색 원추리꽃이 장관을 이룬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내년 6월 말 이곳에서 원추리와 은하수를 담아볼 것을 마음속으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Velvia50)
▲ 중봉으로 가는 길 (Velvia50)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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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via50)바람을 맞아 키가 작은 산죽 위로 동행인과 함께 그림자놀이를 해보았다.
▲ 그림자놀이 (Velvia50)바람을 맞아 키가 작은 산죽 위로 동행인과 함께 그림자놀이를 해보았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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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에 올라서니 벌써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갈색으로 물든 덕유평전 위로, 마른 여인의 등판처럼 척추 같은 길이 구불구불 나 있었고, 그 옆으로 아직 녹색 빛깔을 잃지 않은 산죽이 구름 사이로 내려온 햇살을 받고 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면 40분만 걸어도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1박 2일을 걸어 만난 풍경이라 더욱 소중했다.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기보다는 평온한 한숨을 내쉬게 되는, 그런 풍경이었다. 향적봉까지는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아직 해가 지지 않았기 때문에 배낭을 풀어놓고 외투를 꺼내 입은 후 몇십분 더 여유를 부렸다. 찬 바람이 몸을 감싸니 엉뚱하게도 숭늉이 당겼다. 부옇게 낸 흰 밥물이 맥주라면 누룽지로 끓여 만든 밥물은 흑맥주와 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별 쓸데없는 생각이 들 만큼 절실한 그리움이었다.

필자는 긴 여행을 다닐 때면 항상 커피를 넉넉하게 챙긴다. 야외용 드립 세트와 아직 가루 내지 않은 원두를 챙기기도 하고 여행 며칠 전 미리 콜드브루 원액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이번 덕유산 종주에서도 역시 커피 원액을 500ml정도 챙겼었다. 하지만 내 수중에 있는 커피보다도 오늘 아침 내 혀를 적셨던 숭늉의 맛이 더욱 떠올랐던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한국인으로서의 태생적 갈망이었을까.

잡생각을 떨치느라 고개를 살며시 털고 중봉 밑으로 보이는 풍경을 카메라 뒷면의 손톱만 한 창으로 거듭 내다보았다.

(Velvia50)중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덕유평전의 모습. 그 동안 걸어온 길을 가늠해 보았다.
▲ 중봉에서 (Velvia50)중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덕유평전의 모습. 그 동안 걸어온 길을 가늠해 보았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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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필름으로 찍었다면 노출 차를 훨씬 더 극복하여 상단의 밝은 원경도 세부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가까운 곳의 바위는 포지티브필름답게 매우 날카롭게 표현되었다. 크기를 줄인 웹상의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원본은 긴 축 7200픽셀이다.

땀이 다 식어 피부가 오톨토돌해지기 직전 다시 배낭을 멨다. 향적봉으로 가는 길에는 기이한 형상을 한 나무들이 서 있다. 높은 고도에서 볼 수 있는 구상나무들이다. 자연유산인 고사목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울타리가 있다.

겨울이 되면 관광객들이 울타리를 넘어가 눈꽃을 피운 나무 곁에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진다면, 그래서 경계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말뚝과 가로줄 따위는 없는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볼 수 있을까. 최근 핑크뮬리 군락 농장에서의 행태를 본다면 멀고도 먼 일이 분명하다.

(Velvia50)가까이 서 있는 두 나무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왼쪽 침엽수와 배경의 봉우리가 닿아있는 곳이 향적봉 정상이다.
▲ 청년과 노인 (Velvia50)가까이 서 있는 두 나무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왼쪽 침엽수와 배경의 봉우리가 닿아있는 곳이 향적봉 정상이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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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을 눈앞에 두고 대피소가 먼저 나타났다. 이날 저녁엔 향적봉을 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새벽같이 일어나 일출을 보러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작 100m 차이였지만 내일 갈 곳을 굳이 한 번 더 갈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150m 밑의 샘터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바닥난 체력을 긁어모아야 했다.

대단한 희소식은 매점에서 핫팩을 판다는 것이었다. 이미 늦가을 기후로 접어든 산 위에서 장노출을 하려고 하니 렌즈에 이슬이 너무 빨리 맺혀, 하릴없이 별 궤적 촬영을 포기했던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동행인이, 향적봉대피소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아마 핫팩을 팔 것이라고 했던 말에 티끌 같은 기대를 했었다.

대피소에서의 저녁, 별, 그리고 아침 일출

저녁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이틀째 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상하는 식재료는 첫날에 다 소모했고 이날은 누룽지 말린 것, 볶은 김치 통조림 150g짜리, 소시지 4개가 전부였다. 버너와 경량코펠, 단출한 식재료를 달랑달랑 들고 취사장에 들어가 보니 완전히 딴세상이었다. 삿갓재 대피소와는 정말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8명의 무리가 포장해온 홍어 한판을 벌인 채로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누룽지의 양이 꽤 많았지만, 곁에 와서 한 젓가락 거들라는 넉살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청을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거절하지 못했다. 햇반의 밥을 비워낸 플라스틱 용기에 소주도 조금 받았다. 소주의 단맛을 모르겠거든 산행 이틀째 밤에 고기 한 점과 함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잔만 마셔보라.

엄청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창문 하나를 두고 평온한 공기가 가득했다. 작은 공간에 최대한 들어찰 만큼 들어찬 산객들의 마음은 밥 짓느라 피어오른 하얀 김 만큼이나 훈훈했다.

대피소의 딱딱한 나무침상은 딱 성인 어깨너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등과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후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진동으로만 알람을 맞춰두고 최대한 피부 가까운 곳에 붙여둔 핸드폰이 얼마나 떨어댔을까. 맞춰둔 시간보다 10분 더 뒤에 눈이 떠졌다. 밖으로 나가자 어제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움직였다. 가뜩이나 높은 그곳에서, 바람은 나를 더 높이 떠올리려 애를 쓰는 듯했다. 대피소의 불빛이 닿지 않는 그늘에 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미리 사 둔 핫팩과 수건 한 장을 두르고 두 시간 반 동안 셔터를 열어두었다. 감도 50짜리 필름으로 별이 얼마나 밝게 담기겠느냐만은, 워낙에 하늘이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색색의 별들이 필름에 기록되었다.

(Velvia50)디지털 사진처럼 별의 일주가 밝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각각의 곡선 색깔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필름 장노출 사진의 특색이다.
▲ 향적봉, 별일주 (Velvia50)디지털 사진처럼 별의 일주가 밝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각각의 곡선 색깔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필름 장노출 사진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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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오리온자리에서의 유성우가 예보된 날이었다. 북쪽 하늘을 향해 놓아두었던 카메라를 들고 동쪽 하늘을 향할 수 있는 장소로 옮겼다. 유성을 보고서 셔터를 눌러 순간의 빛을 담을 수 있는, 그런 카메라가 아니기 때문에 역시 한 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두고 별이 일주할 동안 재수 좋게 유성의 흔적이 담기기를 기다렸다.

아쉽게도 별똥별은 렌즈가 품고 있는 화면의 범위 밖에서만 화려하게 떨어졌다. 횃불이 연상될 만큼 밝은 별똥별이 8초 가까이 자신을 불태우며 떨어지는 장면도 보았다. 모두들 잠든 밤, 나 홀로 1600m 고지에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별똥별의 향연. 사진에 담기지 않았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마음에 이미 행복감이 포화상태로 녹아든 뒤였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오리온자리의 별들이 한 시간 동안 움직이는 모습이다. 선들의 가장 끝을 떼서 보면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별의 흔적이 두꺼운 것은 렌즈의 화각이 100mm여서 크게 담긴 것도 있지만, 핫팩을 붙이다가 초점 링이 돌아가 초점이 살짝 어긋난 상태로 장노출이 되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사진이 되었지만 실패한 사진이라고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색깔이 더 강하게 담겼기 때문이다.

(Ektar100)오른쪽에 삼태성이 밤하늘을 달리고 있다.
▲ 오리온자리 (Ektar100)오른쪽에 삼태성이 밤하늘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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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0)위 사진을 열심히 찍고있는 필름카메라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 미니삼각대가 없어서 렌즈 후드와 돌멩이를 이용해 용을 써가며 담았다.
▲ 핸드폰 카메라로 (V10)위 사진을 열심히 찍고있는 필름카메라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 미니삼각대가 없어서 렌즈 후드와 돌멩이를 이용해 용을 써가며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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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세시간짜리 일주 사진을 한 번 더 담았지만 구름이 중간에 휙휙 지나치는 바람에 중간 구름에 반사된 빛이 뿌옇게 기록되었고 별의 궤적도 군데군데 끊겨있어서 과감히 필름 채로 폐기했다.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진동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다시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어느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동행인을 흔들어 깨워 드디어 향적봉으로 올라갔다. 100m가 마치 300m 같았다. 바람이 밤보다 더욱 거세어졌기 때문이다. 머리 위 하늘은 맑았고 수평으로 보이는 위치에 구름이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한 가지 흠은 그 뒤에 수직으로 커다란 벽 같은 구름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평선이 막힌 상태에서는 아침노을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도 높은 곳에서는 해가 어느 정도 떠오른 뒤라도 충분히 색다른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바람이 너무 빨라 시시각각 시야가 변했다. 안개에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눈 부신 햇살이 들어오기도 했다. 카메라를 들고 올라왔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오늘 일출은 글렀다고 다시 대피소로 내려갔다. 하지만 나는 해가 떠오른 직후의 풍경을 더 좋아하기에 한 시간 정도 더 그곳에 머물며 사진을 담았다. 아래에 시간의 순서대로 사진을 배치해본다.

(Ektar100)수평으로 깔린 구름 너머에 커다란 벽처럼 높은 구름이 있다. 저 구름이 없었다면 훨씬 더 장관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 향적봉의 아침(1) (Ektar100)수평으로 깔린 구름 너머에 커다란 벽처럼 높은 구름이 있다. 저 구름이 없었다면 훨씬 더 장관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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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산행을 할 때 정상석이나 고도표지판을 굳이 잘 찍지 않는 편이다. 이 날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기도 했고, 위치를 기념삼기 위해 구름과 함께 정상 표지판을 한켠에 배치해 보았다.
▲ 향적봉의 아침(2) (Ektar100)산행을 할 때 정상석이나 고도표지판을 굳이 잘 찍지 않는 편이다. 이 날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기도 했고, 위치를 기념삼기 위해 구름과 함께 정상 표지판을 한켠에 배치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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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동쪽에 큰 구름이 수직으로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예보보다 일출시각이 30분가량 늦어졌다. 아침안개가 살짝 가미된 향적봉대피소의 모습.
▲ 향적봉의 아침(3) (Ektar100)동쪽에 큰 구름이 수직으로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예보보다 일출시각이 30분가량 늦어졌다. 아침안개가 살짝 가미된 향적봉대피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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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큰 구름 위로 막 얼굴을 드러낸 해의 모습.
▲ 향적봉의 아침(4) (Ektar100)큰 구름 위로 막 얼굴을 드러낸 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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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하필 필름을 갈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35mm 자동카메라는 조금 불편하지만, 중형카메라의 필름 교환은 많이 불편하다. 바람에, 추위에, 손가락이 얼어 더욱 허둥지둥거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짜증 나면서도 스릴있고,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일인지 말이다.

사진상에는 맑은 날처럼 보이지만 이날 산 밑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안개는 대단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내려간 후에도 꿋꿋하게, 이슬이 맺히는 대물렌즈를 닦아가며 틈새를 찾던 도중 찍었던 사진이다. 아래에 연결되는 사진들 역시 그렇게 잠깐씩 시야가 트이는 틈을 타서 담은 것들이다.

(Ektar100)발 아래 구름이 깔려있고 햇빛의 산란으로 온통 하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있었다. 끝도 없어 보이는 계단의 꼭대기에 서니 마치 천국에 서 있는 것처럼 황홀했다.
▲ 천국의 계단 (Ektar100)발 아래 구름이 깔려있고 햇빛의 산란으로 온통 하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있었다. 끝도 없어 보이는 계단의 꼭대기에 서니 마치 천국에 서 있는 것처럼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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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점차 높아지는 태양 및으로 향적봉대피소가 보인다. 온 산자락이 새벽 이슬로 젖은 몸을 말리는 중이다.
▲ 해와 구름과 덕유산 (Ektar100)점차 높아지는 태양 및으로 향적봉대피소가 보인다. 온 산자락이 새벽 이슬로 젖은 몸을 말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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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해가 더 높이 떠오르자 하늘이 점차 파래졌다. 뿌옇던 안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어제까지 걸었던 길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 일출 후 한 시간 뒤 (Ektar100)해가 더 높이 떠오르자 하늘이 점차 파래졌다. 뿌옇던 안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어제까지 걸었던 길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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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지쳐 먼저 내려간 동행인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긴 후 약 9시 정도에 대피소를 나섰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마침 일본 쪽으로 커다란 태풍 '란'이 지나가던 날이었다. 비구름의 영향권은 아니었지만 기압 차가 상당하니 바람이 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람이 잦아들면 출발하라는 다른 등산객들의 만류에, 어차피 숲속으로 내려 들어가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면 꼭 반갑게 인사하자는 기약을 남겼다. 무거운 배낭이 커다란 추가 되어 보다 든든하게 흔들림 없이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30분 정도 걸으니, 예상했던 대로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었다.

(Ektar100)이 날은 등산객을 꽤 많이 만났다. 백련사를 거쳐 향적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이었다.
▲ 백련사로 향하는 계단 (Ektar100)이 날은 등산객을 꽤 많이 만났다. 백련사를 거쳐 향적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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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가을의 절정을 맛보다

바위와 계단을 조심조심 밟으며 내려가도 역시 오르막길보다는 속도가 빨랐다.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백련사에 도착했다. 보통 산에 있는 절은 아래쪽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오산이었다. 이 절에서부터도 5km 이상을 걸어야 했다. 더구나 경사진 콘크리트 길이라니. 무릎이 안 아프면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도 백련사에서 만난 가을의 절정은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붉게 물들였다. 시간 관계상, 그리고 체력의 한계로 계곡의 굽이굽이를 카메라로 담지는 못했지만 길게 이어진 구천동의 계곡 또한 장관이었다. 높은 곳에서 늦가을을 먼저 만나고 중턱에서(그래도 1000m) 가을의 절정을 만난 뒤 점점 가을의 초입으로 내려가는, 가을의 역주행을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어 세상 만물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ktar100)기와지붕과 단풍이 참 잘어울린다.
▲ 가을 백련사(1) (Ektar100)기와지붕과 단풍이 참 잘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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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등산객들이 힘차게 올라오는 모습
▲ 가을 백련사(2) (Ektar100)등산객들이 힘차게 올라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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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백련사는 해발 900미터에 있다. 1,000미터가 넘는 능선이 기왓담 너머로 보이는 이런 풍경, 절대 흔하지 않다.
▲ 가을 백련사(3) (Ektar100)백련사는 해발 900미터에 있다. 1,000미터가 넘는 능선이 기왓담 너머로 보이는 이런 풍경, 절대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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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이렇게 보니 처마의 단청과 가을산의 단풍이 서로 닮았다.
▲ 가을 백련사(4) (Ektar100)이렇게 보니 처마의 단청과 가을산의 단풍이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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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필름사진에 여러가지 묘미가 있지만 이렇게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색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 가을 백련사(5) (Ektar100)필름사진에 여러가지 묘미가 있지만 이렇게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색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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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은 차도 다닐만한 넓은 길이었지만 2박 3일간의 어떤 코스보다도 고통스러운 걸음이었다. 이미 무릎이 아픈 상태였고, 경사진 콘크리트 길은 아무런 쿠션감 없이 지구의 무게를 그대로 내 무릎에 전달했다. 자연관찰로로 조금 돌아서 걸었다면 그 충격이 조금 덜했겠지만 몇백m라도 더 걸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하산을 마치고 삼공주차장에서 애초 출발지였던 황점마을 주차장까지 택시를 이용했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나도 모르게 뒷자리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느껴질 만큼 상당한 구불길로 거의 30분을 갔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이 걸었나 하는 생각에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서로가 대견했다. 지친 무릎을 달래가며 내려오면서도 꾸역꾸역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두 편의 <가을 덕유산 종주 산행기>를 마친다.

(Ektar100)가을 낙엽을 밟으며 두 남녀가 천천히 걷고 있다.
▲ 뒷모습 (Ektar100)가을 낙엽을 밟으며 두 남녀가 천천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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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계곡의 굽이굽이 유명한 지점들이 많았지만 한 켠으로 내려오는 작은 물줄기에 더욱 시선이 머물렀다.
▲ 구천동계곡 한 켠 (Ektar100)계곡의 굽이굽이 유명한 지점들이 많았지만 한 켠으로 내려오는 작은 물줄기에 더욱 시선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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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
▲ 단풍과 계곡 (Ektar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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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시멘트길과 자연관찰로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 위에서 힘차게 흘러내려오는 계곡과 가을을 함께 담았다.
▲ 작은 다리 위에서 (Ektar100)시멘트길과 자연관찰로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 위에서 힘차게 흘러내려오는 계곡과 가을을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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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tar100)가을 덕유산의 정기를 온 몸에 받으려는 듯 중년의 한 남성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2박3일간의 여행이 이름 모를 여행자의 뒷모습에 투영되어 나의 마음까지 평온해졌다.
▲ 가을 명상 (Ektar100)가을 덕유산의 정기를 온 몸에 받으려는 듯 중년의 한 남성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2박3일간의 여행이 이름 모를 여행자의 뒷모습에 투영되어 나의 마음까지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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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덕유산, #가을, #종주,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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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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