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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시인은 “늘 자기갱신을 시도하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병철 시인은 “늘 자기갱신을 시도하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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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행위를 '언어와의 연애'에 비유할 수 있다면, 첫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져 첫 번째 아이를 낳은 것과 다름없다. 2014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젊은 시인 이병철(33)이 첫 시집을 냈다. <오늘의 냄새>라고 했다.

내가 아는 이병철 시인은 드라마틱하고 유쾌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겨울 배낭을 꾸리고 낚싯대를 챙겨 홀로 노르웨이로 떠났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로라를 보고 싶어서'였다. 얼음 섞인 칼바람이 몰아치는 무인지경의 설원에서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텐트를 치고 잤다고 한다. 사람은 물론, 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 모험심과 용기를 흉내 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병철은 시라는 장르에만 얽매이지 않고 문학평론과 칼럼, 여행기까지 종횡한다. <경북매일신문>과 <경향신문>에는 사회문제를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또 다른 일간지엔 여행기를 싣기도 했다. 이른바 '멀티형 작가'다.

취미가 다양한 그는 어느 날엔 아마추어 야구단의 강속구 투수로 운동장을 뛰고, 또 다른 날 밤엔 쏘가리가 출몰한다는 남도의 끝자락 강변으로 차를 몬다. 어느 누구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자유를 지향하며' 사는 이병철 시인. 시집 <오늘의 냄새>엔 그의 내면풍경과 세계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게 분명했다.

당연한 수순처럼 이병철과 그의 첫 시집이 궁금했다. 깊어진 가을,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공원에서 '문학의 가시밭길'에 용감하게 나선 '청년작가' 이병철을 만났다.

"흩어진 자재를 모아 집 한 채 지었을 뿐..."

 이병철 시인의 첫 시집 <오늘의 냄새>.
 이병철 시인의 첫 시집 <오늘의 냄새>.
ⓒ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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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이다. '활자화 된 첫 번째 자식'을 낳은 격이다. 어떤 심정인가.
"내가 쓴 시가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힌다고 생각하니 은밀한 부분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시를 읽은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 하는 자체만으로 재밌고 신난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재들을 모아 겨우 집 한 채 지었는데 아무도 안 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도 된다."

- '오늘의 냄새'라니, 시집의 제목이 독특하다.
"시는 사유보다 감각의 언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이나 청각을 이미지화한 시들은 많지만 후각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가장 예민한 감각임에도. 냄새를 통해 과거의 장면과 당시의 구체적 감정들을 기억해내는, '냄새'라는 라벨을 붙여 시간을 '넘버링' 하는 습성이 내겐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이 현상세계를 '냄새'를 통해 의미화하려는 열망이 수반된 제목이다."

- 시인이 되고자 마음 먹었던 때는 언제인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처음 들은 수업이 '시론'이었다. 시라는 것이 대중가요 가사 같은 말랑말랑한 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수업을 통해 시가 상상력과 해석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임을 목격하고는 매료돼버렸다. 그 스무 살 때부터 시인을 꿈꾸었다."

- 여행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행이 글을 쓰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익숙한 삶의 자리에 오래 머물다보면 정신도 둔해지고 감각도 퇴화되는데, 그때 낯선 이국이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으로 간다. 그러면 사소한 것에도 긴장하고, 두렵고, 놀라고, 감동하게 된다. 무뎌졌던 감각들이 벼려지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들이 태어난다. 그렇게 얻은 감각과 정신의 자극들이 내면에 새겨져 시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 사숙한 선배 시인이나 작가가 있는지.
"송재학, 장석주 시인을 동경했다. 송재학 시인의 경우 현란한 수사와 은유를 통해 성취한 미적 완결성을 마주하면 짓눌리는 듯하면서도 쾌감을 느낀다. '이미지의 가학성'이 좋았다. 장석주 시인은 학부 시절 은사다. 시를 쓰는 정신을 강조하셨고, 시집 <햇빛사냥>에 실린 초기 시편들을 통해 이미지나 발화법 등의 영향을 받았다."

- "20, 30대 한국 시인들은 가볍고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주도적 경향이나 담론이 없다는 데서 오히려 다양성이 움트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서도 자유롭고, 동일한 범주로 묶일 만한 일률적인 개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무겁지 않고, 전위라 할 만한 파격도 없지만, 서로 닮아있지도 않다. 이 '다양성'이 '가벼움'에 대한 변론인 동시에 '어려움'에 대한 옹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교류하는 동년배 작가는 누구인가?
"대학원을 같이 다닌 황종권 시인과 친하다. 매주 만나 함께 술을 마신다. 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고, 먹고사는 문제 등 당장의 현실과 앞날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낚시, 여행, 운동 등 취미와 취향에 관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장가갈 때가 돼선 지 이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언제나 꿈꾸는 소년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이병철 시인.
 “언제나 꿈꾸는 소년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이병철 시인.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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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통해 세계를 이미지화하는 것이 '낚시'와 '시 쓰기'

- 당신이 주목하는 또래 작가 누구인지.
"'예술창작아카데미'에서 함께 활동한 황유원, 배수연, 정현우, 홍지호, 박세미, 최지인, 안태운 시인 등이다. 내가 쓸 수 없는 문장을 쓰고,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내는 시인들이다. 황유원, 안태운 시인은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최지인 시인은 얼마 전 첫 시집을 냈다. 배수연, 박세미 시인도 곧 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정현우 시인의 유려한 이미지와 홍지호 시인의 담담한 진술은 흉내내고 싶은 장기다."

- 한국문단엔 '낚시'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당신도 그렇다고 들었다. 낚시가 창작에도 도움을 주는가?
"낚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감각을 기울이는 행위다. 거기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서 채비를 던지고, 가느다란 줄에 전해져오는 물의 흐름과 물속 지형을 느끼면서 상상하는 것이다. 감각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낚시는 창작과 비슷하다."

- 문학평론가 박상수는 이번 시집에선 '불'과 '물'의 이미지가 동시에 보인다고 했는데.
"'불'은 내면에 각인된 최초의 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인데, 불 이미지가 사용된 시편들에서 불을 패배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오히려 극복하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때 희열을 느끼는 태도들이 나타난다. 반면 '물'은 내 힘으로 닿지 못하는 곳에 나를 닿게 하는 이동과 전이의 방법론이다. 불과 달리 물에는 수동적으로 침잠되거나 유속성에 존재를 내맡기는데, 어린 시절부터 물을 좋아하고 편안하게 느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 이번 책의 여러 대목에서 '가족'의 냄새가 맡아진다. 가족은 당신과 당신 시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
"가족은 완전했던, 지금은 없는 유토피아다.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 시들이 유독 많은 것은 유토피아로의 회귀를 꿈꾸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가족해체시대'를 온몸으로 살면서 여섯이었던 대식구가 1인가구로 축소되는 걸 경험했다.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자 미적 원형, 해체되고 분열된 실낙원이나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그래서 한없이 소중하고 아픈 세상이다."

- 시집 <오늘의 냄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명하기 힘든 슬픔'과 '서늘한 뜨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의하는가?
"기쁨, 슬픔, 분노, 사랑... 감정은 명명하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색 뿐 아니라 중간 색조가 있듯 슬픔과 기쁨의 중간, 사랑과 증오의 중간이 있고. 슬픈데 왜 슬픈지 알 수 없는 슬픔이 내겐 많다. 감각 또한 명확한 규정을 거부한다. 싫은데도 좋은 자극이 있다. 쾌감과 고통은 사실 한 몸이다. 그 모호한 지점, 경계가 불명확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쓸 터

- 첫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가.
"세계는 관념이 아니라 감각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 인간은 사유보다 감각이 먼저 작동하는 동물이라는 것, 판단하고 규정하고 의미화하는 것보다 감각적 인상에 집중할 때 세계의 아름다움과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21세기가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글쎄.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SNS를 활용한다든가 팟캐스트, 디카시, 시 콘서트 등 시대 경향에 맞는 나름의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있는 자체가 노력이라고 본다. 나는 어딘가 있을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끝까지 쓰겠다는 낡은 순정을 아직 지니고 있다."

- 당신이 설계하고 있는 '문학적 미래'와 '인간적 미래'가 궁금하다.
"문학적으로는 금방 잊히거나 도태되지 않고 꾸준히 오래 쓰면서 늘 자기 갱신을 시도하는 시인이고 싶다. 인간적으로는 제도나 기성의 관습에 물들지 않고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소년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고 싶다."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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