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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다.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사무실로 나가며 동료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오늘도 늦는다고 고백하고 양해를 구한다. 요즘은 어디 앉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 통에 버스 안에서도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늦었다.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사무실로 나가며 동료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오늘도 늦는다고 고백하고 양해를 구한다. 요즘은 어디 앉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 통에 버스 안에서도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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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눈을 떴다. 그런데 알람 소리를 듣고 깬 게 아니다.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 아, 오늘도 늦잠인 건가... '혹시나'가 항상 '역시나'가 되는 현실.

늦었다.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사무실로 나가며 동료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오늘도 늦는다고 고백하고 양해를 구한다.

요즘은 어디 앉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 통에 버스 안에서도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그나마 목적지 근처에서 잠이 깨면 다행인데, 몇 정거장을 지나서야 잠이 깨서 급하게 내린 적도 한두 번 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해 동료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노라면 안 그래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 잠겨서 거의 쇳소리에 가깝다. 동료들은 내 안색을 살핀다. 안 그래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는 골골골 자주 아팠기 때문.

"어제는 무슨 일 없었어요?"

동료들은 어제는 혹시 무슨 일 없었는지 묻고, 나는 어제 가게에서 봤던 이색적인 풍경들을 종알종알 이야기한다.

진상 손님 이야기엔 화르륵 함께 화를 내주고, '왜 남자 손님들은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소변을 볼까'를 가지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누구 이유를 아는 분 없으신가요).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고, 구청에서 내려온 행정 업무를 하다가 상담 전화를 받다가 지원 일정이 있으면 경찰서로, 병원으로, 법원으로 다닌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버스를 타면 내내 서서 가야 할뿐더러 차는 또 얼마나 막히는지... 동료들에겐 미안하지만 퇴근 시간이 되기 조금 전, 양해를 구하고 바쁘게 짐을 챙겨 버스를 탄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부터 버스에서 최대한 눈치 빠르게 앉을 자리를 확보하는 것도 나의 달라진 모습. 버스 도착 알림을 보고 어디에 멈출까 대충 짐작하고, 때론 앉을 자리를 향해 질주한다. 그때라도 온종일 고생하는 다리를 쉬게 해줘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집으로 향한다. 30분이라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핸드폰 알람을 맞춰놓고(혹시나 깊이 잠들면 이건 사고니) 잠깐 침대에 눕는데 거의 100% 잠들기 일쑤다. 그렇게 짬을 내서 잠자고 일어나 다시 2차 출근을 한다.

돌아왔을 때 깜깜한 방에 불을 켜고 들어오는 그 순간이 싫어 형광등 불은 환하게 켠 채로... 이렇게 1차 출근, 1차 퇴근, 2차 출근, 2차 퇴근의 일상을 산 지도 석 달이 넘었다.

 100일이란 시간을 낮에는 여성단체 활동가로, 밤에는 술집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통과해왔다. 이제는 제법 그 시간들에 익숙해져 지금의 사장님과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100일이란 시간을 낮에는 여성단체 활동가로, 밤에는 술집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통과해왔다. 이제는 제법 그 시간들에 익숙해져 지금의 사장님과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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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 세상의 속도와 자신의 속도를 약간씩 맞춰갈 정도의 시간 100일. 연인들이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고, 눈을 맞추고 얼굴을 마주한 것만으로 마냥 설레는 시간 100일. 그 100일이란 시간을 낮에는 여성단체 활동가로, 밤에는 술집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통과해온 것.

이제는 제법 그 시간들에 익숙해져 지금의 사장님과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주문이 몰려올 때 나는 마른안주를, 언니는 두부김치를 만든다. 또 골뱅이 소면 주문이 들어오면 언니는 골뱅이를 무치고 난 소면을 준비한다. 환상의 팀워크다.

그뿐이랴. 여성단체에서 상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눴던 터라 사장님 지인들의 문제를 함께 상의하고, 나름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어느새 사장님과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처음에 "술 한 잔 사줄 테니 옆에 좀 앉아봐요" 이야기했다가 무안당했던 손님은 이제 단골이 되어 "나 좀 많이 착해지지 않았어요?" 하고 너스레를 떤다. 나는 "뭘 그 정도로... 더 노력하세요"라고 농담을 던지며 이야길 나눈다.

칼집이 다 되어 있는 마른안주를 가져다드리니 "거, 이런 건 이쁜 아가씨가 손으로 찢어줘야 맛있지" 하는 손님에겐 물티슈와 가위를 가져다드리며 "여기 연장 대령입니다"라고 말한다. 나름 배짱 두둑하게 그들을 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몸도, 마음도 익숙해진 시간만큼 고민도 깊어진 것이 사실. 단체에서 저녁에 하는 간담회나 행사들을 거의 돕지도, 참여하지도 못한 날엔 가게에서 맥주를 따르며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같이 채웠다.

꼬박 4시간 동안 테이블이 꽉 차 종종종 뛰어다니는 날이 이틀 정도 지속되면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그런 날이면 출근해서 제대로 일도 못한 채 연차를 쓰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아르바이트를 가서 가게 카운터에 멍하니 앉아 있노라면 '지금 일하고 있는 여성단체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한 건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단체에서 받는 최저임금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이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라며 머리를 휘휘 내젓곤 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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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라는 이 공간에 연재를 시작하고, 최대한 여러 가지 의미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가게에서 머무르는 4시간 동안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심하게 보려 했고, 인상적인 것들과 페미니스트, 여성단체 활동가인 '나'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려 했다. 그러니 그곳에 머무는 시간들이 훨씬 더 새롭게 다가왔고,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난 또 무엇을 포착하게 될까 기다려지기도 했다.

'술'집이라는 공간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성'은 처음 본 손님 앞에서도 예쁘고 상냥한 태도로 주는 술을 잘 받아 마셔야 하는 존재로 이미 위치 지어져 있었고(그래서 그렇지 않으면 '씨*' 욕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회식 자리, OO장급 상사가 오면 다 일어나 그를 맞이하고 폭탄주를 나눠마시는, 너무 구태의연해서 이미 역사로 사라진 줄 알았던 음주문화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술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여성'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그저 단체에서 여성 활동가 동료들과 그것에 관심있는 여타의 사람들만을 만났다면 알지 못했거나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연재는 끝나지만 나는 여전히 그 공간에서 맥주와 안주를 나르며 '사람'들을 만나고, 때론 싸우고 때론 타협하며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잃지 않고 싶은 것은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예민하고, 더 예민하게 질문하기! 그렇게 나는,

"계속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올라오는 많은 시사·정치 뉴스들, 그 메인 자리에 나의 글이 함께 올라갈 때면 '이 글이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나', '혹시 이 글이 더 중요한 글의 자리를 뺏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개개인의 목소리는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으며, 특히나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터 나오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뻔뻔해지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길, 더 많이 드러나고 쓰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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