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웰터급 최고의 전천후 스트라이커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원더보이' 스티븐 톰슨(34·미국)이다. 이제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지만 여전한 동안에, 성격 좋은 대학생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지라 '원더보이'라는 닉네임이 어색하지 않다.

사실 전적에서 패보다 승이 훨씬 많은 톰슨이지만 2015년까지만 해도 그가 정상권에서 챔피언을 위협하는 강자로 입지를 굳힐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간의 웰터급 역사에서 그래플링을 겸비하지 않은 타격 위주의 '정통파 스트라이커'는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킥과 펀치를 부지런히 치는 타격가보다는 전 챔피언 로비 라울러(35·미국)같은 하드펀처 유형이 더 먹어줬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톰슨에 대한 평가는 확 달라졌다. 챔피언 출신 강자 조니 헨드릭스(33·미국)를 엄청난 원거리 화력으로 박살내더니 다음 경기에서는 챔피언 언저리에서 활약하던 로리 맥도날드(28·캐나다)마저 무너뜨렸다. 당연히 타이틀 도전권이 그에게 주어졌고 현 챔피언 타이론 우들리(35·미국)와 두 차례에 걸쳐 경기를 가졌다.

아쉽게도 톰슨은 우들리의 벽을 넘지 못해 챔피언은 되지 못한 상태다.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데 이어 2번째 대결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우들리의 신중한 경기 운영에 평소 자신의 리듬을 살리지 못하고 같이 지루해져 버렸다는 점에서 결과는 물론 내용까지 놓쳐버렸다. 큰 기회를 살리지 못한 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상당수 파이터들처럼 하락세를 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톰슨은 건재했다. 지난 5일(한국 시간)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있었던 UFC 217 웰터급 매치에서 랭킹 4위의 강자 '투견' 호르헤 마스비달(32·미국)을 압도적으로 물리쳤다. 비록 넉아웃이 아닌 판정 승부이기는 했으나 타격전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마스비달을 맞아 현격한 유효타 차이로 승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톰슨은 웬만해서는 잡을수 없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톰슨은 웬만해서는 잡을수 없다. ⓒ UFC


까다롭지만 패턴이 읽히면서 위력을 잃어갔던 마치다

톰슨의 파이팅스타일을 보고 있노라면 까다로움에서는 과거 라이트헤비급 최강자 소리를 듣기도 했던 '드래곤' 료토 마치다(39·브라질)가 떠오른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통적인 가라데 스타일로 스탠딩에 임하는 파이터는 드물다. 마치다는 극도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희소성 높은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간다.

원거리에서 킥을 계속 차 주고 이따금씩 기습적인 펀치를 섞어주면서 정타싸움에서 앞서가는데 능하다. 상대의 반격까지 염두에 두고 이미 빠질 태세를 갖춘 상태에서 가볍게 툭툭 치는 것이라 실상 데미지는 크게 입히지 못한다.

진짜 무기는 달려오는 상대의 타이밍을 읽고 짧고 정확하게 들어가는 정권이다. 카운터성으로 들어가는 지라 동작은 짧지만 위력은 강력하다. 제대로만 걸리면 맷집 좋은 상대들도 큰 충격을 입기 십상이다.

마치다의 견제성 원거리 타격이 못 견딜 만큼 세게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공방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대부분 상대는 앞으로 치고 들어가야만 했다. UFC는 라운드별 채점제를 쓰고 있다. 충격을 받았든 안 받았든 타격을 계속 허용하는 모습을 보이면 점수에서 쭉쭉 밀릴 수밖에 없다. 타격을 허용한 쪽에서는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고 그때까지 답을 못 찾았다 싶으면 돌격 외의 선택지는 없게 된다.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적으로 나가야 한다.

마치다는 그러한 상대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매우 냉정하게 옥타곤 안에서 자신만의 진법을 펼쳐나갔다. 거기에 그래플링도 나쁘지 않은 지라 간간히 섞어주며 혼란을 줬다. 카운터만 조심하면 큰 충격은 입지 않을 수 있겠으나 밀려버리는 점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경기가 거듭될수록 마치다의 위력은 줄어갔다. '대장군' 마우리시오 '쇼군' 후아(36·브라질)와의 1차전 이후 파훼법이 하나둘 연구 되어갔고 거기에 경기가 거듭되면서 특유의 희소성도 차츰 빛을 잃었다. 어찌 보면 노장이 되기 전에 한번 정도는 변화가 필요했지만 마치다의 패턴은 늘 공식처럼 똑같았다. 다른 스타일로 싸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강자로서 롱런했으나 챔피언 당시의 위압감은 이제 주지 못하는 모습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웬만해서는 잡을 수 없다.

반면 톰슨은 체급만 다를 뿐 스탠딩 타격만 놓고 보면 당시 마치다보다도 더욱 상대하기 어려운 유형이라는 평가가 많다. 마치다가 상대를 낚고 끌어들여 제압하는 '정중동(靜中動)' 유형의 공수가라면 톰슨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묘수와 깊이가 발휘되는 '동중정(動中靜)' 공수가의 끝판왕이다.

옥타곤을 넓게 쓰는 유형의 톰슨은 다채로운 움직임을 통해 상대를 전방위로 폭격한다. 화력이 폭발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심지 방향이 정해져있는 마치다와 달리 톰슨은 구태여 폭발시기를 조절하지 않는다. 옆으로 비스듬히 선 상태에서 끊임없이 스위치 테크닉을 써가며 적극적으로 상대를 공략한다.

상대의 반격을 대비해 두수 세수 앞도 염두에 두고 플레이한다는 점에서는 마치다와 비슷하지만 적극성면에서 톰슨은 단연 돋보인다. 원거리든 근거리든 빈틈이 보였다 싶으면 매섭게 타격을 낸다.

과거의 마치다와 달리 톰슨의 스타일은 생소함에서는 대단할 것이 없다. 가라데뿐 아니라 킥복싱, 복싱 등 응용 가능한 타격 기술은 얼마든지 섞어 쓴다. 때문에 톰슨의 움직임은 아웃복서의 킥복싱 버전을 연상시킨다. 톰슨의 부지런한 아웃파이팅은 상대 입장에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워낙 빠르고 부지런한 데다 수 읽기과 공격패턴이 다양해서 스탠딩에서 잡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오래오래 기다리고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등 평소의 언행과는 다르게 관객의 반응조차 신경 안 쓰는 기다림 능력자(?) 우들리였기에 톰슨을 잡아낼 수 있었고, 톰슨 또한 이를 의식하다 더불어 지루함 매치의 합을 맞추고 말았다. 우들리는 얼마든지 상대를 압박해서 이길 수 있는 기량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경기 운영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조르주 생 피에르의 뒤를 잇는 새로운 유형의 자발적 수면제 파이터로 꼽히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톰슨은 우들리 외의 다른 상대들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었다. 동물적 타격 감각이 돋보이는 싸움꾼 스타일의 마스비달도 넉아웃만 헌납 안 했지 3라운드 내내 완봉패 당했다.

하이, 로우, 미들은 물론 앞차기, 옆차기, 뒤돌려차기 등 현란한 발차기 세례에 킥거리에서 빠르게 미끄러지듯 들어가 적중시키는 펀치는 여러 차례 마스비달의 방어선을 관통해버렸다. 킥거리에서 킥뿐 아니라 펀치까지 자유자재로 들어갔던 지라 공수 분기점이 무너진 마스비달 입장에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나마 테이크다운을 섞어주며 거리를 좁혀 근거리 타격전을 잠깐 시도하는 정도가 반격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결국 톰슨의 거리를 깨트릴 방법은 없었다. 파훼법이 문제가 아닌 톰슨이 너무 빠르고 강했기 때문이다.

옥타곤 위에서 펼쳐지는 톰슨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플레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웬만해서는 톰슨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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