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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올 한 해의 화두는 단연 '적폐청산'이다. 촛불혁명으로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며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폭로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정부패상을 지켜보면서,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도 나날이 높아만 가고 있다.

검찰 역시 과거 정권에 대한 수사로 그 어느 때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검찰청 포토라인은 과거 정권에 부역했던 이들로 매일 같이 북적이고, 일선 검사들도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수사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 사이에선 '정권이 바뀌니 이제야말로 검찰도 정신을 차렸다'는 자조 섞인 말들도 나온다.

적폐청산에 앞장서는 검찰이야말로 '개혁 대상 1호'

그러나 일각에선 검찰이 적폐청산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사실상 검찰이야말로 '개혁 대상 1호'이기 때문이다.

개혁 대상에게 칼을 맡기고 개혁을 진두지휘하게끔 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그러니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검찰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을 찾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정부 입장에서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정부의 이런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때마침 이러한 정부의 고민을 더는데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북이 최근 출간됐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문제는 검찰이다>다.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검찰개혁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역설하며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배경', '검찰개혁의 철학과 원칙', '검찰개혁의 구체적 과제', '검찰개혁의 성공요소' 등 4개의 챕터로 나누어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성공을 위한 실천 방안 등을 제시한다.

참여정부 당시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저자의 이력은 저자의 구상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준다. 검찰개혁은 이미 참여정부에서도 시도했던 바 있다. 그러나 철저히 준비되지 못한 개혁은 참담한 실패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번에야말로 검찰개혁을 성공시켜야한다는 일념으로 과거의 뼈아픈 실패를 밑거름 삼아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검찰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검찰개혁의 핵심, '권한의 축소와 견제'

<문제는 검찰이다> 책표지
 <문제는 검찰이다> 책표지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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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등 온갖 불명예스러운 수식어와 함께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해버린 검찰에 대해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까닭"이라고 그 원인을 설명한다.

"검찰은 수사기관 및 공소기관으로서 수사의 시작, 수사 방법 선택, 구속영장 신청, 기소 선택, 공판 진행, 재판의 집행, 형사재판 이외에서 국가의 대리 등 법률상 권한을 행사한다. 검사는 직접 수사를 하거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수사를 지배한다.

여기에 더해 수사와 재판과정의 브리핑,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 소환사실 공표 등 비제도적인 권한과 시스템으로 수사 및 재판과정, 나아가 한국을 지배한다. 세계에 유사한 사례가 없는 권한의 초집중 현상이다." - p.66

실제로 오늘날 대한민국 검찰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단순한 영향력을 넘어 지배구조의 최상위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권력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방조했다. 사실상 국가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2003년 3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참여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자 했지만 철저하지 못한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3년 3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참여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자 했지만 철저하지 못한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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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자가 말하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권한의 축소와 견제'다. 권력의 독점과 견제장치의 불비(不備)가 타락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권한의 축소와 견제는 검찰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다른 기관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들 수 있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권은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기소권만 갖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실상 검찰의 하부조직으로 전락한 경찰의 권한을 확대하고, 반대로 검찰에 쏠려있는 권한의 집중을 해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경찰 조직에 대한 개혁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 권한을 넘겼다가 또 다른 적폐를 낳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검찰개혁은 권력기관 개혁의 일환이며 권력기관은 함께 개혁되어야 한다"며 "특히 검찰개혁은 경찰개혁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경찰개혁의 핵심은 '자치경찰제'의 도입이다. 중앙집권화된 경찰의 권력을 지역별로 분산함으로써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힘이 너무 몰리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의 근거 중 가장 유력한 것은 경찰의 권한 남용 견제다. 이것은 경찰의 조직이 거대하다는 점에 근거한다. 경찰이 자치경찰이 되면 경찰 조직이 분산되기 때문에 경찰의 권한 남용, 횡포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 p.124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도 반드시 신설되어야

그러나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개혁의 성공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일 뿐, 그것만으로 개혁을 완수했노라 말할 수는 없다. 참여정부 당시의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듯이, 반쪽짜리 개혁은 안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이에 동의하며 검찰개혁의 완성을 위한 과제들로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사장 직선제' 등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아래 공수처)'의 신설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더불어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하는 과제로 제시된다.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공수처의 필요성은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제기되어왔다. 참여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공수처의 신설을 입법 시도했으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폐기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도 공수처 신설에 대한 입법 시도는 꾸준하게 이뤄졌으나, 보수 세력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공수처 신설에 대한 반대 논리는 대부분 '검찰과 다를 바 없는 옥상옥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수사능력을 검증할 수 없다' 등으로 요약된다.

저자는 이러한 반대 논리들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공수처를 반대하는 논리는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라며 공수처 반대 논리 뒤에 가려진 '진짜' 의도를 저격한다.

아울러 "설사 검찰의 조직적인 반발이 있더라도 개혁 주체들은 개혁 과제를 차곡차곡 계획대로 추진하면 된다"며 개혁 주체인 대통령과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여야만 함을 강조한다.

실제로 공수처 신설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공수처가 도입되면 저와 제 주변부터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다시 한 번 공수처 신설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검찰개혁의 의지를 천명했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검찰개혁의 의지를 천명했다.
ⓒ 대한민국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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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 참여가 절실

그러나 저자는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만으로 검찰개혁이 성공할 수는 없다고 못 박는다.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국민의 높은 관심과 지지는 개혁 대상인 검찰의 반발, 기득권세력의 반발, 구체적으로는 정치권의 반발을 넘을 수 있는 힘이다. 곧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그런 만큼 검찰개혁에 성공하면 국민들은 더 높은 지지를 보낼 것이다." - p.220

저자의 당부처럼 검찰개혁을 비롯한 적폐청산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적폐 세력들의 반발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흔들림 없이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주권자인 우리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들 스스로 참여하는 국민참여형 개혁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겨울, 국민들의 자발적인 촛불혁명이 부패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탄생시켰듯이 검찰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적인 검찰을 만드는 개혁에도 촛불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문제는 검찰이다 - 검찰개혁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김인회 저, 오월의봄, 2017.09.15, 14,000원.



문제는 검찰이다 - 검찰개혁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김인회 지음, 오월의봄(2017)


태그:#검찰, #문재인, #촛불, #노무현, #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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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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