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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돼지
 멧돼지를 만나면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거나 급하게 달아나지 말라는 조언은 있으나 정작 멧돼지를 퇴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뉴스는 없다. 일부 농가에서는 고압선을 설치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멧돼지의 농가 접근을 막기 위해 산에 먹이를 뿌려준다는 뉴스도 보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손자들에게 줄 고구마 몇 두둑 심는 농부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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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골뿐 아니라 가끔 도심에도 멧돼지가 출몰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뉴스도 들린다. 멧돼지 개체 수가 늘면서 먹이 부족으로 인해 농작물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 도시까지 내려오는 것이라는 진단이다.

하지만 멧돼지를 만나면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거나 급하게 달아나지 말라는 조언은 있으나 정작 멧돼지를 퇴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뉴스는 없다. 일부 농가에서는 고압선을 설치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멧돼지의 농가 접근을 막기 위해 산에 먹이를 뿌려준다는 뉴스도 보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손자들에게 줄 고구마 몇 두둑 심는 농부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11년 전, 농사를 시작하면서 마을 노인들에게 멧돼지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설마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구마 농사를 망쳤고 심지어 꽃밭의 백합꽃 뿌리를 씨까지도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대로 넘길 수 없어 읍사무소에 연락했더니 피해 규모만 묻고 포수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나타나면 연락하라'는 친절한(?) 안내를 받았을 뿐이었다. (멧돼지들이 포수가 나타나기까지 기다려 주리라고 여겼던 것인가!) 인터넷을 뒤졌으나 개인이 준비할 수 있는 뾰쪽한 퇴치법은 찾을 수 없었다. 오직 멧돼지가 불빛을 싫어한다는 점, 그리고 울타리가 있으면 뛰어넘지는 못 한다는 이야기만 읽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마당을 밝히는 가로등을 활용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멧돼지가 산에서 들어오는 길목으로 추정되는 곳에 촘촘하게 지지대를 박고 페트병을 매달았다. 가로등 불빛이 페트병에 반사하여 방어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페트병의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몇 년 동안 멧돼지의 피해는 없었다.

곳곳에 어지러운 발자국, 멧돼지 가족의 소행으로 짐작되었다

엉성한 울타리                            이 엉성한 풍경은 보완하기 전에 잡은 사진이다. 6일 지지대의 사이에 더 많은 지지대를 박고 철사로 보완했다.
▲ 엉성한 울타리 이 엉성한 풍경은 보완하기 전에 잡은 사진이다. 6일 지지대의 사이에 더 많은 지지대를 박고 철사로 보완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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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어 이사를 한 후에는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바람에 건들거리는 페트병이 눈에 거슬려 지지대와 거기에 달아놓은 페트병도 철거하였는데 다행히도 수년간 멧돼지 소식은 잊고 지냈다.

그런데 금년 가을 들어 멧돼지가 가끔 출몰하여 소소한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더니 지난 10월 중순부터는 거의 매일 밤 출근하다시피 다녀가는 것이었다. 특히 비갠 후 밭에 가면 불청객들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정작 멧돼지의 목표는 고구마 밭이 아니었다.

제초제는 물론 살충제를 전혀 하지 않는 터라 베어낸 풀은 흙과 섞어 군데군데 두엄더미를 만들었는데 멧돼지는 그곳을 노린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엄 속에 숨은 지렁이와 굼벵이가 목표였던 것이다.

심지어 텃밭과 꽃밭의 경계에 쌓아놓은 돌을 모두 들추고 마치 줄을 띄워 괭이질을 한 것처럼 땅을 헤집어 땅 속의 지렁이나 굼벵이를 찾은 흔적이 보였다. 그렇다보니 돌 주변에 겨울을 나는 패랭이나 매발톱 그리고 꽃잔디가 들떠서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돌이야 다시 쌓으면 되지만 문제는 아내가 아끼는 꽃들의 피해였다.

일단 사무소에 신고했는데 직원의 반응은 몇 년 전이나 다름없었다.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다시 인터넷에서 멧돼지 퇴치법을 찾았지만 우리 형편에 맞는 퇴치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태양광 발전으로 야간에도 불을 밝히는 방법이 눈을 끌었으나 멧돼지가 침입하는 경로마다 설치하기는 부담이었다.

울타리를 설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포수를 초빙하여 날마다 잠복하여 퇴치하게 할 힘도 없고, 그렇다고 총기를 구입하여 무장하는 것도 어렵기에 다른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백합의 알뿌리를 방치하고 겨울에도 파랗게 살아있는 패랭이나 꽃무릇 꽃잔디 등이 파헤쳐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몇 년 전에 설치했던 대로 다시 울타리에 지지대를 박고 페트병을 매달았고 밭 가운데에 있던 두엄더미를 숙지원의 가장자리로 모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지대와 페트병에 반사하는 가로등 불빛도 멧돼지의 침입을 방어하지 못했다. 

멧돼지는 용케도 지지대의 틈이 벌어진 곳을 찾아 들어와 돌을 뒤집고 꽃밭의 지렁이를 찾아 꽃 뿌리를 들추어 놓은 것이다. 11월 6일 아침은 서리가 얼음이 얼었다. 멧돼지의 흔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밖에 나갔으나 이미 멧돼지는 꽃밭의 가장자리는 물론 텃밭의 고구마를 캐낸 자리를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뒤집어 놓고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발자국이 어지럽고 곳곳에 멧돼지 흔적이 보이기는 것으로 봐서 멧돼지 가족의 소행으로 짐작되었다. 뒤집어 놓은 땅에 서리가 없는 것으로 봐서 새벽녘에 다녀간 듯싶었다. 아내는 정리해놓은 꽃밭이 파헤쳐진 것을 보며 이러다가 영영 꽃밭을 망칠 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마을 노인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덫을 놓으라거나 드럼통을 묻고 술을 채워놓으면 술 좋아하는 멧돼지가 빠져 나올 수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만 했다. 아무래도 산과 면한 동쪽 경계라도 철망을 둘러야 할까 싶지만 오늘(7일)은 일단 지지대를 촘촘히 박고 철사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농촌에 사는 주민이 언제까지 멧돼지 때문에 불안해야 하나

꽃밭                                              경계에 돌을 심었는데 멧돼지들은 돌 밑의 굼벵이와 지렁이를 찾아먹는다. 이 사진은 처음 꽃밭을 만들었을 때 잡은 것이다.
▲ 꽃밭 경계에 돌을 심었는데 멧돼지들은 돌 밑의 굼벵이와 지렁이를 찾아먹는다. 이 사진은 처음 꽃밭을 만들었을 때 잡은 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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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이다 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마다 농작물 피해를 입지 않은 농가가 없다. 집마다 개를 키우고 울타리도 치지만 멧돼지 등의 피해를 당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농작물이나 꽃의 피해가 아니라 사람도 해를 입을 개연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멧돼지보다 상위포식자가 없다 보니 멧돼지 개체 수는 늘고 산에서 영역다툼과 먹이경쟁은 치열해진다고 한다. 여름 가뭄 때문에 밤이나 도토리 등 멧돼지의 먹이들이 실하게 여물지 못하고 양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먹이가 부족한 멧돼지들이 농촌의 농가를 찾아들고 또 도시 지역에 출몰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런 멧돼지와 사람이 마주치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시골에는 거의 노인들만 산다. 멧돼지가 그런 노인들을 가려서 존중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나는 모든 생명체의 공존에 공감하는 자연주의 생태학자도 아니고 동물과 더불어 살고 싶은 자연철학자도 못 된다. 인간과 멧돼지의 공존공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보통 사람이다.

물론 멧돼지도 사람이 놀라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실제로 혼자 뒷산에 산책을 갔다가 우연히 멧돼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숨을 죽이고 가만히 지켜봤더니 다행히 멧돼지역시 두리번거리다가 사라졌다.

그 후 나는 산에 산책을 갈 때면 직접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미리 인기척을 내는 등 조심하고 경계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상대방을 향해 돌진하는 멧돼지의 습성을 '저돌적'이라고 표현한다. 먹이가 부족한 산에서 인가로 내려온 멧돼지들이 내려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들도 도토리 등 임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가급적 혼자서 멧돼지가 살만한 산에 가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도 멧돼지로 인한 피해를 조사하고 멧돼지의 생존 공간을 확대하던지 아니면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등 국민의 불안을 덜 수 있는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참, 오늘 보완한 울타리도 기대하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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