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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쁜 여행 책이다. 여행을 이야기하는 책이 이러면 안 된다. 독자를 울리니 하는 말이다. <제주, 오름, 기행>은 제주사람이 아니라도 읽다가 눈가에 물이 고이고, 엉긴 코를 풀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이다.

제주 오름과 맺은 인연이 15년이 되어 그 인연으로 책을 내놓았다는 저자 손민호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다. 여행 전문기자인 그는 "영화가 기억하고 소설이 증언하는 역사마저 외면하는 여행은 굳이 권할 생각이 없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볼거리나 자랑하는 여느 여행안내서들처럼 가볍지 않다. 저자는 자신의 오름 여행이 '사람이 남긴 생의 흔적을 어루만지는 일'이어야 했다고 했다. 그래서 눈도장과 사진만 남기고 오는 숨 돌릴 틈도 없는 어수선한 여행이 아니라 오름을 지켜보며 '나란히 서려는 여행' 이야기를  <제주, 오름, 기행>에 오롯이 담아냈다.

책표지 <제주, 오름, 기행> 손민호 지음, 북하우스 출판
▲ 책표지 <제주, 오름, 기행> 손민호 지음, 북하우스 출판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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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타지 사람을 육지 사람이라 한다. <제주, 오름, 기행>의 저자 손민호는 육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제주 본토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제주 사람들 못지않게 오름을 잘 안다.

오름을 그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제주에서도 그렇게 흔치 않다. 사실상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개발에 목메는 제주 사람들보다 더 세심한 문제의식을 갖고 제주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제주에서 오름은 바다와 함께 징글징글한 삶의 터전'이라고 했다. 그 징글징글한 땅을 15년 동안 밟으며 그 옛날 제주사람들처럼 오름으로 들어갔던 저자는 울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 오름, 기행>엔 눈물 자국이 있다. 그가 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오름은 말하자면 제주의 흉터다. 몽골의 지배, 양반의 착취, 일제의 탄압, 해녀의 눈물, 4·3의 악몽, 그리고 죄인의 고독까지 꾹꾹 제 몸에 다 새기고 있어서다. 나의 오름 여행은 오름에 팬 제주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일이었다." -14쪽

<제주, 오름, 기행>은 여행 안내서를 넘어서 암울한 역사를 들추며 죽음과 슬픔을 목도하게 하면서도 무겁지 않다. 오름을 말하지만 상처 가득한 오름만 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책에는 생의 마지막까지 한라산 중산간을 그리워했던 김영갑이 나오고,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나오고, 제주의 전설과 신앙이 나오고, 이중섭이 나온다.

비양도와 사려니 숲길, 한라산 깊은 숲의 참꽃과 해녀콩에 얽힌 이야기 등은 귀와 발바닥으로 쓰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문화관광해설사, 숲 해설가, 향토사학자, 이장, 어촌계장, 해녀 등을 통해 사람 사는 냄새와 문화와 풍경을 담아냈다.

저자는 여행 전문 기자답게 정말 꼼꼼하게 오름과 제주 구석구석을 누볐다. 어지간한 애정이 없이는 못해날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그가 제주를 좋아하지만 거리두기에 성공했다는 말은 여행기자로서 여행업자의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광정책을 불신하는 데서 알 수 있다. 관광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자는 여행업자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제주가 관광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추사 김정희에 대한 평은 그의 문제의식을 엿보게 하는데, 신랄하며 새겨들을 만하다. 저자는 "세한도에 제주는 없다. 제주의 현실은 담겨 있지 않다"고 꼬집는다. 추사는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마흔 통의 편지를 부쳤고 편지마다 먹을 것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유홍준은 이 대목에서 추사의 인간적 면모를 말했지만, 저자는 "내가 편지에서 찾아낸 추사의 인간적 면모는 구차하고 비루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추사의 귀양살이는, 추사가 성취한 예술적 업적과 관계없이 존경할 만한 것이 못 됐다"고 적었다.

"나는 추사의 유배생활에서 제주에 대한 일말의 공감은커녕 연민도 발견하지 못했다. 제주에서 머물렀던 8년 3개월 동안 추사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153쪽

저자가 추사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말이 아님을 십분 이해한다. 추사의 예술이 아니라 삶까지 떠받들고, 제주도가 앞장서 추사를 기리는 관광정책이 못마땅함을 드러낸 말이다. 한시라도 빨리 제주를 벗어나려고만 했던 추사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 백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교하면 저자의 비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다산은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기에 앞서 포항에서 한 달여의 유배생활을 경험했다. 그곳에서 다산은 포항 아낙들의 교, 교, 교 끝맺는 사투리를 들으며 "얼핏 들으면 싸우는 듯하나, 자세히 들으면 처자가 애교 떠는 것 같다"고 했다. 유뱃길에 심신을 괴롭히는 일들이 많았을 법한데도 사투리를 귀에 감긴다고 했던 다산은 민초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학자이자, 관리였다. 다산에 비하면 추사는 학문이나 예술적 성취는 어떨지 몰라도 백성에 대한 마음만은 비할 바가 아니다.

저자는 추사 말고도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제주에 유배된 인물들에게서 능동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았던 제주생활을 공통점을 꼽는다. 그들은 왕이 불러주기만을 학수고대하면서도 제주 사람들에게는 다산처럼 따뜻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유배 중에도 '밥 타령'이나 하는 나약한 지식인이었고, 어쩌면 무책임한 관리들일 뿐이었다.

관광과 축제, 블랙 투어리즘

<제주, 오름, 기행>은 이야기 곳곳에서 기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비판의식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무심히 지나쳐왔던 제주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기자가 권하는 블랙 투어리즘은 그런 비판의식에서 출발한다.

제주 오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일제 군사잔재를 보유하고 있다. 제주 오름 가운데 대정읍 송악산은 능선과 해안에서 발견된 진지동굴만 60개가 넘는다. 오른 가운데 가장 많은 일제 군사시설이 남아 있는 역사 현장이다. 대정 땅 섯알오름에는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가 있다. 1950년 8얼 20일 제주도민 210명이 국군에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검거되어 한밤중에 총살당한 현장이다.

그 뒤로 군은 그 지역을 출입금지역으로 막아버렸다. 유족의 끈질긴 탄원에 7년의 세월이 흘러 누구의 유골인지 분갈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정부는 출입금지지역을 해제했다.그렇게 모두 132기의 무덤, 조상은 다르지만 한날한시에 같이 죽었으니 모두 한 자손이라는 백조일손묘가 조성됐다.

"아름다운 풍경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고 했던가. 일제의 만행을 목격했을 때는 화가 치밀었고, 웅덩이만 덩그러니 남은 양민학살의 현장에서는 몸서리를 쳤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무덤 앞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모든 슬픔을 품은 송악산 자락이 무너지고 있다. 파도만이 설움에 겨워 오늘도 운다." -169쪽

이야기가 까칠하기만 하면 재미없다. 그런데 그 까칠함 속에 위트가 담기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여행기자 특성상 많은 축제를 보아왔을 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제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모슬포 방어가 가장 맛이 좋을 때는 1~2월이라고 한다. 그런데 방어축제는 10~11월에 열린다. 그 이유가 어처구니없다.

"제철에는 축제를 안 해도 잘 팔리니까 제철이 아닐 때 축제를 해야지요." -160쪽

제주를 대표하는 특산물 축제인 모슬포 방어축제가 열리는 사나흘 동안 20만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추자도 참조기축제도 마찬가지로 제철이 겨울에 하지 않고 여름에 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의 특산물 축제가 이런 식이다. 모슬포에 가면 방어를 드시라. 대신 한겨울에 드시라." -161쪽

<제주, 오름, 기행>은 단순히 여행만 말하지 않는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뒷면까지 살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제주 해안선의 28%에 달하는 환해장성은 117킬로에 이른다. 지금도 남아 있는 환해장성은 삼별초의 성이다.

"고려 정부가 삼별초의 제주 상륙을 막으려고 쌓았고, 삼별초가 제주에 진입한 뒤에는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삼별초가 다시 쌓았다." -348쪽

그 과정에서 연실 돌을 날라다 성을 쌓은 제주 사람들을 부려먹은 주체만 달라졌을 뿐이었다는 저자의 지적은 적절하다. 사실상 제주는 언제나 핍박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제주 사람의 저항은 반역으로 받아들여졌고, 권력은 죽음으로 답했다. 역사가 말하는 목호의 난은 그 실례다.

명나라가 말 2000필을 한꺼번에 요구했을 때 고려 관료를 목호가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다. 목호는 말을 관리하던 몽골인이다. 이때 군 최고사령관 최영 장군이 이끌고 온 병력은 2만5600명이었다. 위화도회군을 야기했던 고려의 요동정벌군이 3만8830명이었다는 점은 고려군이 제주에서 한 일이 진압이나 전투가 아니었음을 가늠케 한다. 저자는 "고려 최영 장군이 정말 몽골 목동만 죽였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학살이었다고 말한다.

책상머리나 하는 역사학자는 갖지 못할 의문을 제기하는 저자의 기자 정신을 높이 살 수밖에 없는 책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저마다 좋아하는 오름이 다르고, 추억하고 싶은 제주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제주 오름을 말하는 이 책이 뭐가 그리 특별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제주 사람의 깊은 속까지 살피는 여행 책은 보기 힘들다. 그래서 위안리치 형을 받고 제주에서 만 4년(1637.6.16.~1641.7.1.)만에 죽은 광해군을 제주살이 3년 만에 죽었다고 한 부분은 애교로 봐 줄 만하다.

나는 제주사람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주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육지에 사는 제주 사람이다. 이 정도면 사실 육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제주살이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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