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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언니와 한 방을 쓸 때, 우리는 무수히 다퉜다. 청소에 대한 개념부터 완전히 다르니 그럴 수밖에. 내게 청소란 책장의 먼지를 비롯한 방안의 이물질을 깨끗이 없애는 것이 핵심이고, 언니에게 청소란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도록 정리정돈하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한참을 치웠어도 언니가 보기엔 여전히 엉망일 뿐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뿐인가. 나는 집에 오면 당장에 외출복을 벗어야만 하는 사람이고, 언니는 애초에 편한 옷이라면 외출했다가도 집에서 그대로 드러누울 수 있는 사람이니, 나로선 부드득 이를 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쫓아다니며 옷을 갈아입으라고 간섭하는 내게 언니 역시 불만을 품었음은 당연지사.

태어나서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언니와도 이렇게 다를진대, 완전히 다른 성장 환경 속에서 자라 성인 이후에나 만나게 된 연인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은 이와 연애하기. 상처받지 않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 책표지
 <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 책표지
ⓒ 대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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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의 저자는 모태솔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더니, 이제는 그 연애 때문에 울다 지쳐 본격적으로 연애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으로 배운 연애가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질문에는 그녀, 당당히 답한다.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 책은 함께 행복해지고자 하는 바람으로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연애가 행복해지는 비법'이다. 

저자는 먼저 연애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이유에 주목한다. 책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혼율은 38.7%로 OECD 1위이며,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여러 정황상 낮은 연애율 역시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결혼과 연애가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특정 부류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현상인데, 연애를 못하면 문제가 있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의 편견은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한다.

자녀가 결혼을 해야 본인들의 과업을 완수했다고 보는 부모님의 시선 역시 연애를 스트레스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연애와 결혼을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인생 경주의 한 지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인생을 획일적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생의 목적은 타인이 설정한 미션 수행이 아니라 행복의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결혼을 목표로 삼는다면, 연애의 시간들이 낭비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지금의 연애 그 자체에 행복감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연애의 종착지에도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시했을 때 사회적 비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강조한다. 연애야말로, '지금, 여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결혼 정보회사에서 소위 '등급표'를 발표하면 천박하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너도 나도 암암리에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형이상학적인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이 공존하는 연애의 특성상, 마음만 맞으면 된다는 이상론도, 조건이 중요하다는 실용론도 곤란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연애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 모임(가족, 친구, 지인 등)에 신입 회원을 받는 것과 유사한 형태가 되므로, 사회적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이 연애,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무엇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연애를 말하는데 성격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성격에는 외향성, 원만성, 개방성 등 많은 요소가 있지만, 저자는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꼽아야 한다면 단연 '정서안정성'이라고 말한다. 다른 성격들보다 특히 변하기 힘든 것이 그것이고, 정서안정성이 부족해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 곁에 있다는 것은 고통이 될 가망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슷한 성격을 만나는 것이 좋은지, 다른 성격을 만나는 것이 상호보완적인지에 대한 의견은 학자마다 분분하다. 다만 성격에 옳고 그름은 없으므로, 상대를 나에게 맞게 변화시키기 보다는, 서로의 성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상대방을 위해서? 아니다. 적어도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연애를 망치는 주범들은 많다. 저자는 TV 프로그램 역시 연애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공허한 환상뿐이라면 오히려 다행일까.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매체는 소비중심적이고 과소비 지향적 가치관을 주입하므로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자기 안의 자격지심 또한 연애를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자격지심에 매였다간 아무것도 아닌 일에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 불쾌해지기 쉽다. 자격지심의 뜻을 풀자면, "자기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다. 괜한 자격지심을 통제하며, 자아존중감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보듬어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임이 분명하다. 타인의 평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마음은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기 쉬울 뿐이다.

이름하여 '연애 비법서'이니, 분명 행복한 연애를 예찬하는 책이다. 연애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는 때로는 혼자 있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소진된 상태에서는 일상적인 일마저 힘겨울 수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충전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애를 하면 외로움과 영영 이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들에게 저자는 당부하기도 한다. 인간에겐 늘 근원적 외로움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우리는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인간이 원래 외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연애가 허망해질까?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옆에 있는 사람은 나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시종일관 발랄한 문체를 유지하지만,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사뭇 진지한 고찰이 담겨 있다. 분명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제법 묵직한 수확을 건져 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가장 들어온 점은,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타인을 통제하고 변화시키는 것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은 훨씬 쉽고 빠르다. 나의 애인까지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은 꽤 행복해질 수 있는 효과적인 접근이다."

이 말이 이기적으로 들릴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행복해야 타인도 행복해질 수 있다. 더구나 타인을 통제하는 법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앎과 긍정적 변화를 강조하니, 이것은 연애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대입할 수 있는 통찰이 아닐까 한다. 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지론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연애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 - 연애에 지치고 사람이 힘든 이들의 연애 효능감을 높이기 위한 연애심리책

최미정 지음, 대림북스(2017)


태그:#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 #최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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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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