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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입에 담기에 무색할 정도로 더운 날씨다. 곡식 익으라는 햇볕이라 뜨거워도 참아야 한다지만 조석으로 스치는 바람에 혹하다가 맞는 한낮의 태양이라 더 얄궂다. 일요일 오후 음력 8월에 막 접어든 달력을 뒤적이다 집 밖으로 나와 명주동 골목길로 향했다.

강릉 살이 갓 2년을 넘긴 새내기에게 명주동 골목은 아직도 채 풀지 못한 선물보따리 같다. 어린 시절 행복에 겨워 머리맡에 두고 잠들던 종합선물세트처럼. 종이상자에서 하나씩 꺼내 먹으며 음미했던 제각기 다른 맛의 과자와 사탕. 그때에는 상자가 점점 비워질수록 내 얼굴에는 그늘이 깊어졌지만, 지금 명주동 골목길을 누비는 내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밝아진다. 골목길 사이사이에 감춰진 보물을 하나, 둘 꺼내보는 쾌감 때문이다.

 명주동 가구골목이라 불리는 경강로. 대도호부 관아 앞으로 대로가 나기 전에는 이 길을 통해서만 서울까지 갈 수 있었다.
 명주동 가구골목이라 불리는 경강로. 대도호부 관아 앞으로 대로가 나기 전에는 이 길을 통해서만 서울까지 갈 수 있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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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강로와 명주로, 임영로라는 도로 명으로 표기된 골목들을 걸으며 낯설지만 낯익은 풍경에 여러 번 눈길이 갔다. 녹슨 철 대문, 무너질 듯 버티고 선 담벼락, 담장 너머 팔을 뻗고 선 나무들, 허술한 창살들.

오래 전 유행했던 노래가 메들리로 흘러나오듯 기억과 추억의 장면들이 한꺼번에 소환당한 느낌이다. 왜 행복했던 기억마저도 소소하고 연약하여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장면들에서 튀어나오는 것일까?

 오래된 방앗간을 개조하여 변신한 봉봉방앗간 카페 2층
 오래된 방앗간을 개조하여 변신한 봉봉방앗간 카페 2층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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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 이북 서민들이 많이 살던 마포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골목'은 그냥 삶이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샅샅이 탐험한 후 눈 감고도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동네 아이들에게 기를 펴고 다닐 수 있었다.

한 걸음 더 나가 이웃 동네의 골목까지 접수(?)를 하면 골목대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골목은 서울이라는 별 재미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는 도시의 유일한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저녁 밥 먹으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못 듣고 해가 저물도록 놀다가 등짝을 맞고 끌려갈 때까지 놀 때도 많았다.

골목길의 정겹고 아기자기한 풍경이 주는 작은 위로

 명주동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추억돋는 옛날 놀이와 체험들
 명주동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추억돋는 옛날 놀이와 체험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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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골목이야기는 지금은 20대 성인이 된 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갓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키도 작고, 심성이 여린 데다 힘도 약해서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던 나는 어느 날 아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은 넓고 편한 도로가 아닌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탐색하며 매일 등하교를 했던 것이다.

대문도 없이 현관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나 방으로 들어서게 되는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골목길이었다. 마치 미로처럼 여러 갈래의 좁은 길들이 펼쳐져 있는 그 골목길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던 아들. 어느 날 나도 아들이 누비고 다닌 그 골목길을 지나 보았다.

하얗게 타고 버려진 연탄재, 길고양이들, 시멘트를 뚫고 핀 들꽃, 알록달록 널린 빨래와 꽃무늬 커튼, 앙증맞은 쓰레기통과 낡은 플라스틱 의자들이 골목 사이사이에 그림엽서처럼 꽂혀 있었다. 또래에게 놀림 받고 친구에게 무시당하며 쓸쓸하고 힘들었을 아들에게 골목길의 정겹고 아기자기한 풍경이 작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후에도 아들이 자기만의 비밀처럼 간직하고 누렸을 골목길을 끝내 모른 척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장 빠른 지름길로 다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신나게 골목길을 섭렵하는 아들을 그려보는 나의 기쁨을 위해.

 명주동 골목의 가을을 살찌우고 있는 감나무
 명주동 골목의 가을을 살찌우고 있는 감나무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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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날아와 정착한 홀씨처럼 강릉 살이를 시작한 내게 명주동 골목 풍경은 낯설지만 낯익은 어린 시절을 그렇게 불러들였다. 골목마다 놓인 소박한 나무의자에 앉아 감나무마다 매달린 설익은 어린 감을 쳐다본다.

방앗간을 개조한 '봉봉방앗간'카페 2층 창밖에서 보았던 감나무에도 감색이 짙어지며 익어가는 감을 보았다. 오래된 집일수록 감나무가 굵고, 크고, 무성했다. 다가올 추석에 잘 익은 감을 따서 한 동네서 정붙이고 살아온 이웃들과 맛나게 나누어 먹을 상상을 하니 좋았다.

담쟁이가 끌어안은 은행나무 보며 떠오른 것들

 강릉 대도호부 관아 동헌에서 임영관 삼문쪽으로 통하는 문
 강릉 대도호부 관아 동헌에서 임영관 삼문쪽으로 통하는 문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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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단청보다 더 위엄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도호부 관아의 임영관 3문은 볼 때마다 점점 더 좋아진다. 그렇지만 그 앞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도로의 부조화는 몹시 거슬린다.

잡초로 뒤덮이고, 녹슬고 망가진 그네와 시소가 방치된 화교소학교. 운동장의 절반이 파헤쳐져 공사 중인 해람중학교의 모습이 겹쳐지며 '변해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방과 이용원, 시장통닭 같은 상호와 가게들이 옛 중심지였던 명주동 일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강릉 대도호부 관아에 있는 작은 도서관. 지역관련 고서와 자료가 많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에 있는 작은 도서관. 지역관련 고서와 자료가 많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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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사당 앞길에서 명주예술마당 골목 입구로 가는 도로변은 은행나무로 촘촘히 이어져 있다. 칠사당 마당의 유서 깊은 은행나무를 호위하듯 줄지어 선 은행나무마다 절반쯤은 담쟁이 넝쿨 잎이 뒤덮고 있다.

담쟁이 잎은 왜 은행나무를 에워싸듯 감싸 오를까? 수천, 수만의 군사들이 성벽을 타고 오르듯 은행나무를 뒤덮어 정복하려는 담쟁이의 의지일까?

 강릉 대도호부 관아의 칠사당 은행나무. 수령이 6백년이 넘었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의 칠사당 은행나무. 수령이 6백년이 넘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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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가 끌어안은 은행나무를 보며 은행나무처럼 새파랗게 푸른 청춘을 지나 샛노란 단풍으로 빛나던 시절이 떠올랐다. 서울토박이로 반백년을 살았고, 우연을 가장한 인연처럼 심신을 의지하게 된 강릉. 이곳에서 만나고 부대끼는 새로운 삶이 담쟁이 넝쿨처럼 내게 새로운 뿌리와 가지와 잎을 내리는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이 늘 세상의, 시대의 중심이 되는 거라고 주문처럼 왼다. 아직도 강릉의 일상이 때론 벅찬 일탈처럼 느껴지곤 하지만 담쟁이 넝쿨도 되고, 은행나무도 되어 온전한 삶과 나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쉴 수 있는 나무의자와 향 깊은 커피, 작은 도서관의 나들이가 가능한 이곳에서 오래도록 숨을 고른 뒤 다시 한 발자국씩 내딛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릉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명주산책 7호'에도 실렸습니다.



인생 이모작을 솔향 가득한 강릉에서 펼치고 있는 자유기고가이자 프리랜서.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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