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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롬보의 운해가 장관이다.
 호롬보의 운해가 장관이다.
ⓒ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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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

스텝들이 인사말을 전하며 고단한 잠을 깨운다. 아침 차도 권한다. 한 줌의 물로 고양이 세수를 마치자 탄자니아 스타일의 보리죽과 간단한 아침 식사가 기다렸다. 식사를 마치고 3720m의 호롬보 산장까지 가는 둘째 날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전날과 같은 열대우림 지대를 지나자 곧 '에리카'라는 나무를 주종으로 하는 관목지대가 펼쳐진다. 나무 사이사이에 마른 종잇장처럼 창백한 색깔의 꽃잎을 지닌 '페이퍼 플라워'가 우리를 반겼다. 관목지대를 넘어서자 건초처럼 생긴 '스탁'이라는 풀이 온통 산을 뒤덮고 있다.

 마른 종잇장처럼 창백한 색깔의 꽃잎을 지닌 '페이퍼 플라워'.
 마른 종잇장처럼 창백한 색깔의 꽃잎을 지닌 '페이퍼 플라워'.
ⓒ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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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나타나 주어야 하는데, 눈을 씻고 보아도 짐승은 보이지 않는다. 박 이사에게 물었더니 '와일드 독'이라는 들개는 있는데, 눈에 띄지도 않는단다. 그러면 그렇지 사바나에 사는 하이에나가 무슨 위대한 이상 실현을 위해 먹잇감도 없는 3000m의 산을 오른단 말인가. 알고는 있었다 해도 확인되는 진실 앞에 허망하다.

6500만 년 전에 형성된 산의 피부가 풀썩 인다. 길은 온통 화산재 먼지로 가득하다. 스패치를 하지 않으면 신발 속으로 먼지가 연기처럼 스며든다.

저 멀리 마웬지봉과 키보봉이 보인다. 우리가 올라야 할 '빛나는 산'이다. 산기슭에 사는 '와차가족'의 전설에 따르면 마웬지가 키보에게 불을 빌려 파이프에 불을 붙였고 그래서 화산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단다. 호롬보 산장이 가까워지자 발밑으로 운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출발한 지 총 7시간 정도 걸려 호롬보 산장에 도착했다. 신들은 구름 위에 산다. 구름은 지상과 천상을 가른다. 세속과 신성을 가른다. 우리는 점차 '응가에 응가이'(신의 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롬보는 만다라 산장보다 훨씬 많은 등산객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가장 쉬운 마랑구 루트를 택했지만, 다른 코스로 온 이들도 이곳을 거쳐 마지막 산장인 키보에 오르는 것이다. 정상을 거쳐 온 이들이 부러웠다. 신병훈련소에서 제대를 앞둔 선임을 만난 기분이었다. 호롬보는 오르는 이들과 내려오는 이들이 만나 장터처럼 활력이 넘쳤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듯, 28명 현지 스텝들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이라고 해봐야 좁은 식당 안에서, 정성을 다해 등반성공을 비는 노래였다. 힘이 넘쳤다.

아프리카의 지난한 역사.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노동의 리듬, 그들의 한과 맥박이 전해졌다. 아니 그들이 부르고 있는 것은 진도아리랑이었다.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동아프리카 지구대를 지나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진도 땅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진 그것. 기나긴 생명의 줄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했다. 30만 년 전에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이다. 실바노, 아우구스티노, 자파티, 라마, 윌리엄은 우리와 같은 피와 맥박을 지닌 호모사피엔스다.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노래 공연을 선사하는 현지 스텝들.
 노래 공연을 선사하는 현지 스텝들.
ⓒ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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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음리마 음레푸 사나
나 마웬지 나 마웬지 나 마웬지 나 마웬지 니 음리마 음레푸 사나
에웨 니오카 에웨 니오카 에웨 니오카 에웨 니오카 음보나 와니중구카
와니중구카 와니중구카 와니중구카 와니중구카 와타카 쿠닐라 니아마"

(킬리만자로 가장 높은 산
그리고 마웬지도 가장 높은 산
저기 많은 뱀들이 왜 내 주위를 돌고 있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네, 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네)
- 오마이뉴스 2007. 7. 22일 자 '사람들은 왜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것일까' 김성호 기자 기사 중, 킬리만자로송의 가사 음차 및 번역 -

호롬보의 밤은 춥다. 관목 사이에 소변을 보니 들쥐가 놀라 바스락거린다.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들쥐 너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 나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먼 곳까지 날아와 너의 땅에 오줌을 누느냐. 너는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더냐. 너와 나의 인연은 무엇이냐. 너와 나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물음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영원으로 이어질 뿐이다.

산 아래 모시의 야경이 빛난다. 실바노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텝들은 '자가족'이며 모시에 거주한단다. 그들의 숙소는 산장 노천의 텐트다. 찬바람이 그들의 텐트를 흔든다. 고난에 찬 역사가 물려준 가난이 그들의 짐이다. 긴 하루의 짐을 내려놓고 지친 몸을 누인다. 아프리카의 고된 역사가 그 안에서 잠을 청한다.

 호롬보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에서.
ⓒ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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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별들이 가득했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검은 도화지 속의 별들. 윤동주의 시가 떠올랐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중략)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너무도 듬뿍 받고 자라,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별다른 그리움이 없었다. 못다 채운 사랑이 그리움, 미련, 미움 같은 것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킬리만자로 산정에서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저밀 줄이야.

저리도 빛나는 별들 어딘가에, 어머니가 숨 쉬고 계시는 별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평생 아들 걱정하다 돌아가신 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다시 별이 되어 만날 수 있으려나. 어머니는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건만, 내 눈에선 한줄기 인색한 눈물이 흘렀다.


전라도 기행 연재했던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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