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옥>의 한 장면.

ⓒ 씨네그루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누아르를 어느 순간 여성이 조금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외화가 아닌 국내 영화에서 올해 <악녀>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흥행 면에선 아쉬웠지만 적어도 영화계에서 이런 소구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김혜수 주연의 <미옥>도 이 맥을 같이 한다. 전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차이나타운>에서 김혜수의 변화와 내적 갈망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더욱 거칠고 강렬해진 이번 작품은 어쩌면 배우 김혜수의 확장판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무채색 하지만 뜨거운  

여느 누아르가 그렇듯 <미옥> 역시 거대 범죄조직 내의 암투, 정확히는 실세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자와 그를 막으려는 자의 대결로 끌고 간다. 마약 판매·협박·살인 등을 일삼던 조직이 재계와 정계와 결탁해 유력 기업을 거듭났고 그 안에서 온갖 더러운 범행으로 조직의 뒤처리를 담당했던 자들의 이야기다. 한쪽이 나현정(김혜수)이라면 다른 한쪽은 임상훈(이선균)이다.

둘 다 조직을 위하지만, 이들은 모두 과거를 공유한 유사 가족이기도 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정이 새로운 삶을 위해 조직을 떠나려 하는 자라면, 상훈은 실세를 넘어 조직의 보스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한 자다. 동료애를 넘어 상훈은 현정을 흠모하고 있기도 하다. 굉장히 거친 방식이지만 이 남성이 벌이는 모든 일은 떠나려는 현정을 자기에게 붙잡기 위한 수단이 된다.

 영화 <미옥>의 한 장면.

ⓒ 씨네그루


첫 장면부터 전라의 여성들, 잔혹한 폭행이 나오는 등 몰입이 쉽진 않다. 묘사되는 사건이 잔인하지만 정작 영화 속 주요 캐릭터는 건조하며 차갑다. 해당 기업 비리를 오래전부터 수사해 온 검사 최대식(이희준)은 자신이 받은 성 접대를 무마시키기 위해 상훈과 결탁하고, 사랑과 자신의 명예를 함께 찾고 싶었던 상훈의 욕심이 곧 여러 인물을 파국으로 몰고 가게 한다.

<미옥>은 자칫 성 대결로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해 한 여성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부딪히는 난관들을 차례로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상훈과 대식은 이성을 잃고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는데 이 대비가 꽤 몰입도가 높다. 엇갈린 사랑과 미래에 대한 꿈이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리고 취하게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 누아르에서 꾸준히 집중했던 주제기도 하다.

의미 있는 도전

장르 면에선 연장선이지만 액션만 놓고 보면 김혜수의 첫 도전이기도 하다. 30년 가까운 배우 생활에서 처음 대중에게 선보이는 면이 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설레게 한다. 촬영 내내 잔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영화에서 어색한 지점 없이 김혜수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이를 상대한 이희준과 이선균의 호흡도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여러 의미와 장점에도 <미옥>은 가장 기본적인 지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바로 캐릭터의 입체감 내지는 설득력 문제다. 동고동락을 함께 했다는 설정은 대사로 가볍게 처리되고 이들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과정이 영화 내내 제시되는 상황인데 그 갭이 상당히 크다. 스타일은 강하게 남아 있고, 핵심은 희미해진 모양새다.

 영화 <미옥>의 한 장면.

영화 속 두 남성 캐릭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흥분하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다. ⓒ 씨네그루


건조하게 처리된 주요인물의 감정선은 나중에 모성애 내지는 분노로 폭발할 때에 효과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도 흠이다. 각 캐릭터나 상황별로 분리해 놓고 보면 매력이 각각 크지만 하나의 완성된 주제가 아닌, 각각 작은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인상이다.

여성성이 농후한 누아르, 게다가 영화 초반 남성 캐릭터들에게 소모되고 사라질 것으로 보였던 몇몇 여성 캐릭터들이 후반부까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영화 <미옥>은 일단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그간 한국 영화, 특히 누아르 장르에서 여성은 '사람'이기 보단 하나의 '기능' 혹은 '소품'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작품이 더욱 활발하게 제작되기 위해서라도 차기엔 보다 완성도 면에서도 성과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한 줄 평: 가뭄 속에 피어난 여성 누아르, 그것만으로 볼 가치는 충분하다
평점: ★★★(3/5)

영회 <미옥> 관련 정보
각본 및 연출: 이안규
출연 : 김혜수, 이선균, 이희준 등
제공 및 배급: 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제작: 영화사 소중한
상영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90분
개봉: 2017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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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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