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데스데이> 영화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영화 <해피 데스데이>의 대학생 트리 겔브먼(제시카 로테 분)은 파티와 데이트를 즐기는 통에 숙취로 흐리멍덩하게 아침을 맞는다. 그녀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고 수업에는 지각하기 일쑤이며 룸메이트의 호의 따윈 가볍게 여긴다. 한술 더 떠서 유부남인 담당 교수와 바람까지 피운다. 그야말로 문제투성이인 트리는 자신의 생일날에 마스크를 쓴 '베이비'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깨어나니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사랑의 블랙홀>을 공포영화로 재해석

<해피 데스데이>의 주인공은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날이 무한대로 반복되고 같은 시간에 다른 방법으로 계속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반복되는 하루와 그 속에 갇힌 인물? 어디선가 본 익숙한 설정이다. 영화 <7번째 내가 죽던 날>과 <하루>가 떠오르고 <엣지 오브 타임>도 기억난다. 기실 <해피 데스데이>가 빚을 지고 있는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다. <해피 데스데이>는 공포 영화의 화법으로 <사랑의 블랙홀>을 재해석한 셈이다.

<해피 데스데이>엔 호러와 코미디, 두 장르가 공존한다.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랜던 감독은 "세련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걸 시도해야 했고, <해피 데스데이>를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영화 속엔 소리 지를 만큼 무서운 장면도 많지만, 박장대소를 터뜨릴 만한 재미있는 장면도 많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영화 <해피 데스데이>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베이비에게 살해당한 후 계속 살아나는 트리는 용의자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조사한다. 우연히 만난 카터(이스라엘 브로우사드 분)가 범인인가? 아니면 룸메이트? 바람 피운 교수 또는 그의 아내도 의심이 간다. 영화는 트리가 죽는 모습과 살인범을 찾는 과정을 심각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데미 로바토의 '컨피던트(Confident)'와 같은 삽입곡을 넣어 재미있게 그린다. 마치 영화 <스크림>처럼 호러와 코미디가 결합한 장르 변주를 시도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쳐라

트리가 매번 잠을 깨는 카터의 방엔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란 문구가 적혀있다(그의 방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 <화성인 지구 정복> <리포 맨> <빽 투 더 퓨쳐>도 기억하시길!). 이것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영화의 주제와 연결된다.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트리는 반복되는 삶과 죽음을 마주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결정을 내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가 말하는 도덕적 교훈은 10~20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부딪쳐라"라는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해피 데스데이>는 <사랑의 블랙홀>의 설정 위에 <13일의 금요일>식 10대 슬래셔 무비를 얹고 <스크림>식 변형을 추가했다. 기존의 것을 많이 가져왔기에 친숙할 수도 있으나, 식상하게 느낄 부분도 있다. 주인공 트리로 분한 제시카 로테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는 영화의 독창성을 가미하고 주제의 설득력까지 얻는다.

제시카 로테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마음을 빼앗겼다"며 "트리는 지금 시대에 딱 맞는 호러퀸으로 성격 나쁜 여대생에서 살인마에게 맞서 싸우는 파이터로 변하는 트리라는 옷을 입고 그녀가 처한 난관을 극복하고 싶었다"고 캐릭터를 부연 설명했다. <라라랜드>의 미아(엠마스톤 분)의 룸메이트 세 명 중 하나로 등장하여 "많은 사람 중 누군가(Someone In The Crowd)" 퍼포먼스를 멋지게 소화한 그녀는 <해피 데스데이>에서 자신의 매력을 무한 발산하며 오롯이 빛난다.

 영화 <해피 데스데이>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사회 불안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호러'

호러와 코미디의 성공적인 균형을 이룬 <해피 데스데이>의 또 다른 주역은 제작사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이다. 독특한 콘셉트, 장르의 변주, 재기발랄한 연출력으로 유명한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은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위자> <더 퍼지> <살인소설> <더 기프트> <라자루스> <갤로우즈> <언프렌디드: 친구삭제> <오큘러스> <더 비지트>(여기에 <위플래시>까지)를 연달아 내놓으며 호러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호러 장르 화제작인 <겟 아웃>과 <23 아이덴티티>도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손길에서 태어났다.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수장 제이슨 블룸은 프랑스 영화전문지 <까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회사의 철학을 "저예산(보통 5백만 달러를 넘기지 않음. <해피 데스데이>도 480만 달러로 만들어졌다-기자 주)으로 리스크를 줄이되 더욱 과감하고 독창적인 선택(감독에게 많은 결정권을 줌-기자 주)을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작품이 대중의 환영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호러 장르는 사회의 불안을 다른 장르보다 민감하게 반영한다.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작품을 살펴보자.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인시디어스> 등엔 집을 잃을 지 모르는 위기감이 서려 있고, <더 퍼지>는 총기 문제를 다루었다. <겟 아웃>은 인종 차별 문제를 건드렸다. 제이슨 블룸은 "개인적으로 사회 계층이나 부의 재분배 문제에 관심이 많고 미국은 지금 안 좋은 길을 걷는다고 본다"며 "이런 문제를 다룬 시나리오에 흥미가 생긴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시대의 공포, 트럼프 시대의 호러 영화

 영화 <해피 데스데이>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 인터내셔널코리아


<해피 데스데이>에 지구 온난화를 막는데 앞장서자는 여성, 트리가 무관심하게 대하는 동양인,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남성, 편견으로 타인을 대하는 대학생들이 나온다. 이런 설정은 그저 우연일까? 제이슨 블룸의 설명과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행보를 보면 절대 아니다.

2017년 광대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그것>과 인종차별 문제를 은유한 <겟 아웃>은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이제 10~20대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해피 데스데이>가 도착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호러 영화를 만드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트럼프 시대의 공포를 말하면서.

해피 데스데이 크리스토퍼 랜던 제이슨 블룸 제시카 로테 이스라엘 브로우사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