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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신임 사장에 최남수 전 머니투데이방송 대표이사가 5일 내정됐다.
 YTN 신임 사장에 최남수 전 머니투데이방송 대표이사가 5일 내정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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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YTN에서 퇴직한 최원석입니다. 핀란드에서 상암동의 YTN 선후배들께 이 글을 보냅니다. 최남수 MTN 전 대표이사가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최남수 내정자를 인터뷰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MTN은 중소기업을 겨냥해 여러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YTN의 방향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겠습니다.

지난 7월 사장 공모를 앞둔 때였습니다. 노종면 선배의 사장직 도전을 비롯한 여러 이야기가 나올 때였고, 얼마 뒤엔 후보자 명단이 발표됐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여러 이야기 가운데는 YTN의 과제와 현실에 대한 논의보다는 잡음이 더 많았습니다.

적어도 바깥에 나온 제가 느끼기엔, 새로운 사장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며 YTN을 이끌어야 하는지는 그다지 들리지 않았습니다. 반성보다 재빠른 모의, 기대를 저버린 실망 그리고 의심을 증명한 욕심. 상암동 사옥에서 벌어지고 있을 누군가의 복마전을 상상할 때마다 슬펐습니다. 회사와 조직원들에게 큰 상처를 내놓고도 웃으며 살고 있을 지난 사장과 트라우마에 가까울 고통을 견뎌낸 선배들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렸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해직자 복직이라는 오랜 숙제를 풀고 나면, YTN에겐 어떤 일들이 남아 있을까? 당연히, 그리고 더 빨리 이뤄져야 했던 일이 하나 줄었을 뿐, 현실적인 일들은 자갈밭처럼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사장이 되겠다며 모여든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저 무너져 가는 배를 몰겠다는 걸까?

그래서 이 글은, 특히 새로 사장이 되실 분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조금이라도 YTN에 애정을 갖고 이번 사장 공모에 나선 후보자 모두에게 드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사장을 최종 결정할 이사회, 대주주 그리고 편집국장을 포함한 임직원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후보자가 누구든 회사 상황이 갑자기 바뀌진 않겠지요. 시작은 모두에게 같을 겁니다. 이 시작점에서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은 고민입니다.

1. 정치인보다는 시청자를 만나십시오

후보님 혹은 사장님께 먼저 여쭤봅니다. YTN은 여전히 한국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이 보는 보도전문채널입니까? 그 별명이 자랑스러우십니까? 주변에 있는 공무원들, 출입처에서 인연 맺은 기업 관계자들 그리고 동문, 동창, 친인척 모두가 "뉴스 잘 보고 있다"고 하시는지요?

언론계에 오래 계셨던 분인 만큼, 제가 알지 못하는 여러 사회적 네트워크가 후보자를 지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언론인으로 지내시며 쌓은, 그 굳건한 울타리에서는 누구라도 좋은 말을 더 자주 하실 테고요. 한국 사회를 오랜 기간 움직인 그 예의범절, 이른바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서입니까? 많은 기자가 예를 다해 정치인을 '선배'로 모십니다. 사장 후보께서는 어떻습니까? 지난 몇 년간, 정치인 몇 명을 만나셨는지요? 어떤 이유였습니까? 다시 여쭙니다. 지난 몇 년간 만난 시청자와 독자는 누구였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또 어떤 뉴스를 보는지 눈여겨보셨는지요? 2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시청자, 소비계층, 유권자, 학생, 교민, 그리고 시민이 어디에서 어떻게 뉴스를 '소비'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깍듯이 모시는 정치인 이야기만큼, 사회적 영향력 적은 시청자의 의견도 귀담아듣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다시, 하나 더 여쭤봅니다, 2017년 현재 YTN의 시청자는 누구고 앞으로는 어떻게 누가 되겠습니까? 시청률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케이블채널 시장에서 뉴스 채널의 점유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계시겠지요. 혹시 후보자께서 그간 정치인을 포함한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면, 이제는 시청자들과도 더 시간을 보내시길 부탁하며 드리는 질문입니다.

2. 뉴스의 시청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핀란드 언론 <아아무레흐띠>의 독자 유형 분석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핀란드 언론 <아아무레흐띠>의 독자 유형 분석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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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저는 핀란드의 주요 신문 가운데 하나인 종합일간지 <아아무레흐띠>(Aamulehti)에 들렀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편집국장이 어떻게 '독자'를 분석하는지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다 정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아, 회사에 있을 때 이렇게 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한국 언론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하고 되뇌었습니다. 얼마 전 <기자협회보>에 송고했던 내용을 정리해 한 번 더 붙입니다.

<아아무레흐띠>(Aamulehti)는 독자 유형을 여섯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나이, 성별, 거주지, 소득, 취미, 직업, 여가, 소비패턴, 여기에 생활습관과 관심사, 미디어 접속 시간대까지 포함해 가상의 독자를 만드는 식입니다.

'23살 의상 디자이너 엠마(Emma)는 땀뻬레 시내 원룸에서 산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20분가량 자전거를 이용한다. 채식주의자고, 취미는 달리기다. 월급은 월 200만 원가량, 백화점보단 중고품 가게에서 특색 있는 소품을 산다. 북극 기후변화 실태를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에 매달 10유로를 후원한다. 자전거 탈 때는 휴대전화로 라디오를 듣는다. 사무실에서는 책과 신문 모두 컴퓨터 모니터로 읽는다. 잠들기 전까지 휴대전화를 본다. 하루 두세 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린다.'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세세히, A4용지 몇 장 분량으로 분석한 독자 정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기획하고 작성합니다. 이 신문에서 현재 겨냥한 '가상 독자'는 연령별로 6가지. 이들의 '미디어 소비 패턴'에 맞춰, 어떤 시간대에 어떤 포맷으로, 또 어떤 경로로 기사를 내보낼지 결정합니다.

제가 만났던 편집장은, 적어도 신문사가 있는 인구 22만 도시의 독자 성향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다며, 그들에게 맞는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다른 언론사 자랑을 듣는데 눈물나는 그 마음, 분명 한 번쯤은 느껴보신 적 있으시지요? 

핀란드 시각으로 11월 5일 자정, <한겨레신문> 고광헌 전 대표이사, 그리고 MTN 최남수 전 대표이사, 우장균 선배가 이렇게 세 분이 최종 후보로 남았습니다. 조금씩 성격이 다른 언론사에서 활동하셨으니 현재 언론계의 변화와 실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겁니다.

다만 그동안 쌓으신 경력이 어떠하든, 현재 독자·시청자의 미디어 소비는 이전과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언론사 편집회의에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만든 뉴스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든, 언론사 바깥의 시청자에겐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 때문이지요. 뉴스의 형태(포맷), 유통경로(플랫폼), 생태계(마켓), 시청자 등 모든 요소가 후보자께서 알고 계신 것 이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혹시 골프 뉴스 좋아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뉴스를 어떤 시간대에 어떤 형태로 내보내야 하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세한 업무야 편집국장의 소관이겠지만, 사장께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판단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TV로만 내보낼지, 내보낸다면 주요 뉴스일지 혹은 스포츠 코너일지, 인터넷용 영상은 PC용으로 제작할지 또는 모바일 디바이스용으로 만들지, 자막은 어떻게 달고 또 길이는 얼마로 할지, 제작물은 어떤 장비로 어떻게 촬영할지, 유통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어느 플랫폼을 중심으로 노출할지 등.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얼마나 오래 시청자에게 내보낼지, 그 반응은 어떻게 수집하고 추가 보도는 어떻게 할지, 여기엔 어떤 광고를 붙이고 어떤 광고를 붙이지 말아야 할지, 전략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좋은 뉴스를 하시겠다면, 먼저 시장 조사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골프 좋아하니 골프 뉴스를 늘리자는 식의 의사결정은, 제발 추억으로만 남겨두시길 부탁드립니다.

3. 공정성은 기계적 균형이 아니라, 가치의 균형입니다

기계적 균형은 '공정'이 아닙니다.
 기계적 균형은 '공정'이 아닙니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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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이 그동안 습관처럼 이야기해온 '공정성'의 실체가 어땠는지는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회부에서 집회 기사를 작성하고 나면 으레 듣던 말이 '반대 측 집회 이야기도 균형있게 넣어라'였습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이 '균형'은 대개 어버이연합과 같은 극우 보수단체의 목소리를 넣으라는 말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게 억지스러운 균형이 지금 언론사에 남긴 건 무엇입니까? 공정성입니까? 신뢰입니까? 혹은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저널리즘입니까?

2012년 입사 전형 당시 최종면접에 들어가자 배석규 당시 사장이 제게 물었습니다.

"공정성이란 가치를 가운데 둔다면, YTN은 파란색이라고 생각하나, 빨간색이라고 생각하나?"

말로만 듣던 사상검증임을 직감했습니다. 이른바 언론고시를 몇 년이나 준비한 덕인지, 저는 부끄럽게도 배 사장의 의중을 만족시킬 만한 표현을 생각해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재 YTN은 파란색이지만, 가운데로 가려고 노력하는 언론사라고 생각합니다."

당락을 좌우하는 질문이었겠지요. 수습 기간을 거치면서 거짓말하다 걸리고, 실수해서 혼날 때 종종 저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입사는 용케 했는데, 정말 공정하게 방송할 역량이 내게 있을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회사에 있는 동안 저는 제 깜냥의 크기와 회사의 '현실'을 확인하곤 아주 회의적으로 변했습니다. 혹시 여전히 최종 면접에서 저런 질문을 던지십니까?

회사에 사직서를 내기 전날까지, YTN은 어떤 회사인지 생각해봤습니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고 공정방송을 사수하자는 기자가 가득하다던, 제가 입사 전 상상했던 그런 언론사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소설가 얀 마텔의 표현을 빌리자면, 'YTN은 무미건조하고 안락하고 편협한' 조직이었습니다. 어디서도 이상주의나 엄격함은 찾을 수 없었고, 그저 무감각하게 진부했습니다.

휴일에는 십수 년째 '스케치' 리포트를 제작하면서도 어느 조사에서 '가장 공정한 언론사'로 9년 동안이나 뽑혔다며 초라한 자랑을 늘어놓는 회사였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에 '장기 비전'이라며 '적어둔 최강 콘텐츠, 미래 제시, 사회 통합'이란 말은 그저 허울 좋은 약속처럼 보였습니다. 새로운 사장은 YTN을 어떤 회사로 생각하십니까?

4. 새로운 미디어 지형을 살펴봐 주십시오

YTN의 모습.
 YTN의 모습.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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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피드(Buzzfeed), 복스(Vox), 쿼츠(Quartz),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이 가운데 어떤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혹시 Buzzfeed를 들어보셨다면, 이 회사가 노르웨이의 전기차 테슬라(Tesla) 현황을 취재할 때 취재진 몇 명을 오슬로에 보냈는지 아십니까? 어떤 장비를 쓰고, 또 그 콘텐츠로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는 들어보셨습니까?

그렇다면 다음 이름은 어떻습니까? 메디아티, 닷페이스, 국범근, 대도서관, 캐리, 모비딕, 구글뉴스랩. 모두 국내의 명칭들인데, 제가 회사 밖에 나온 뒤 더 자주 더 많은 곳에서 듣고 보는 미디어계의 여러 이름들입니다. 물론 새로운 사장께서 일일이 이런 이름을 다 알긴 어려우실 겁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을 사이에 두고 YTN과 경쟁하거나 혹은 협업해야 하는 상대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조금은 관심을 두시겠습니까?

YTN이 페이스북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이처럼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자회사에서 하는 일이니까, 혹은 잘하고 있다고 하니 별로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페이스북에서의 콘텐츠 유통은 YTN 브랜드 유지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영상을 본 수십만 명의 시청자들 가운데 몇 퍼센트 정도가 YTN 홈페이지에 방문할까요? 높은 조회 수만큼 광고 대상으로서의 가치도 오르고 있습니까? 소셜미디어에 노출하는 YTN의 뉴스 콘텐츠는 누가 어떻게 생산하고 있습니까? '미디어 환경이 변했다'는 말은 한번쯤 들어보셨겠지요. 사원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대화 끝엔 으레 한숨을 쉬고 맙니다. YTN을 비롯한 한국의 언론 환경에 대해 제가 보는 관점은 이렇습니다.

시청자는 TV를 이미 떠났습니다. 채널 24번 혹은 지역에 따라 특정 번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그 많은 시간이 무색하게도, 시청자는 텔레비전에 눈길 주지 않습니다.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 무릎 위 노트북으로 더 많은 뉴스를 봅니다. 한국 독자들은 어떻게 뉴스를 볼까요? 네이버와 다음 뉴스에 들어가고, 많이 본 뉴스를 먼저 클릭하고, 대부분 첫 화면에 나오는 눈에 띄는 제목을 눌러볼 겁니다.

대부분 텍스트로 된 기사입니다. 신문 영향력이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몇 장의 사진과 글로 된 기사를 더 많이 봅니다. 이런 기사들은 빨리 넘겨볼 수 있고, 내용도 자세합니다. 그리고 페이스북 이용자라면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최신 소식을 손가락으로 넘겨 올리며 그날그날의 뉴스를 파악할 겁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경쟁과 혁신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SBS가 스브스(SBS를 소리내어 발음한 애칭)를 이름에 넣어 '스브스뉴스'를 열고, '모비딕'이라는 모바일 전용 채널을 개설해 운영 중입니다. 코미디언 양세형씨가 진행하는 '숏터뷰'라는 코너는 지난 추석 지상파 SBS 채널을 통해서 20분이나 방영됐습니다.

모바일용으로 만든 '웃자고 만든' 프로그램인데, 표창원,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심상정, 유승민, 남경필을 인터뷰합니다. 적어도 10대부터 40대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주요 언론사의 온라인 기획 가운데 지난 1년 가장 발랄합니다. YTN의 '대선 안드로메다'도 좋은 시도였지만, 모비딕 채널의 지속성과 아이디어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스타트업의 활약은 또 어떻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이름 가운데 메디아티, 닷페이스는 모두 현재 한국 미디어 생태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선수'들입니다. 메디아티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를 양성하는 투자사고, 그 투자 대상 가운데 첫 번째로 독립한 매체가 닷페이스입니다.

편집인이자 대표인 조소담씨를 포함해 실력있는 '에디터'들이 직접 취재하고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을 유통합니다. 지난 4월 육군이 부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했다는 논란이 일었을 때, 닷페이스는 주요 언론사들보다 먼저 군의 '기획 수사'를 뒷받침하는 녹취를 공개했습니다. 육군의 거짓 해명을 반박하는 자료였습니다.

닷페이스는 서울시 및 여러 기업과 협력해 기획 콘텐츠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광고주'의 요구에 따라 내용과 문구를 정하면서도 닷페이스의 성격과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무척 고심합니다. 페이스북 팔로워가 10만 명이지만, 자체 홈페이지로도 제작물을 공개합니다. 온라인 플랫폼에 어울리는 영상은 어때야 하는지, 닷페이스 영상을 보면서 고민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미디어 조직 내 '개발자'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너무 생소하십니까? YTN 내에도 여러 개발자가 있는데, 실제로 어떤 업무를 어떤 원리에 따라 하는지, 또 회사 내 여러 시스템과 관련한 개선 방법은 없는지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를테면 YTN의 기사작성시스템(CMS)은 다른 언론사와 비교하면 무척 사용하기 편리한 편입니다. 다만 여전히 연락처 및 취재 자료를 공유하는 공간은 어지럽고, 검색도 어렵죠. 홈페이지 게시를 고려해 주요 내용이나 용어에는 자체 제작한 각종 자료에 하이퍼링크(바로 가기)를 달 수도 있고, 연관성이 높은 기사가 홈페이지 하단에 노출 되도록 추천 시스템도 만들어 둘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네이버 뉴스를 보니, 검색 같은 귀찮은 일은 모두 포털에 맡기겠습니까? 이미 아실지는 모르지만, 현재 각 언론사가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한 뉴스 콘텐츠가 네이버 뉴스에서는 제대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그저 영상이 재생되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중앙일보> 홈페이지의 지난 6월 기사, '거제, 이대로 추락할까' 기획 보도를 한번 읽어 보시지요.

함형건 기자가 이끈 데이터 저널리즘팀의 밀도 높은 보도도 결국은 YTN 홈페이지를 통해 가장 잘 '팔려야' 합니다. 이런 보도가 지속해서 가능하도록 개발자, 디자이너, 엔지니어를 더 많이 확보해 주십시오. 그리고 매일 반복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소모적인 작업물보다는 뉴스를 정말 빛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잘 아시겠지만, 뉴스는 기자가 쓰고 촬영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플랫폼과 시청자에 따라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합니다.

5. YTN에는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매우 익숙해져버린 YTN 뉴스의 풍경. 남성 중심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정치, 문화, 경제적 논의와 관심사는 그동안 YTN의 보도 흐름이었다.
 매우 익숙해져버린 YTN 뉴스의 풍경. 남성 중심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정치, 문화, 경제적 논의와 관심사는 그동안 YTN의 보도 흐름이었다.
ⓒ YTN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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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겁니다. 왜 앵커 두 사람이 뉴스를 진행하면, 중년 남성 앵커와 젊은 여성 앵커를 늘 붙이시죠? 그 조합이 익숙해 보기도 좋으신지요? 그렇다면 여자 기상캐스터는 왜 늘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입습니까? 협찬사 제공 의상이 그런 것밖에 없다면, 이에 대해 담당자들과 논의해보신 적 있으신지요? 조직내 간부급 남녀 성비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YTN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은 대부분 '40, 50대 중년 한국 남성'들입니다. 물론 언론사 대부분이 그렇겠지요. 자연스럽게 남성 중심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정치, 문화, 경제적 논의와 관심사가 그동안 YTN의 보도 흐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내에 그토록 많은 여성 직원이 있는데 실제로 그만한 목소리와 실질적인 권한을 보장하고 계시는지요?

어렵게 덧붙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재직 당시 우연히 어떤 선배가 비정규직 여자 직원을 성추행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회식 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해당 비정규직 사원은 공론화하지 못했습니다. 그 선배와 한동안 자주 일해야 하는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그 선배는 순수하게 동료 직원에게 호감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선배가 비정규직 직원의 불안한 신분을 노렸다고 생각합니다. 술기운을 핑계로 저지른 폭력 그 이상도 아닙니다. 일을 아무리 잘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부디, 언제가 되든 피해자에게 먼저 사과하고 스스로 근신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건입니까?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남자 직원이며, 작가 또 앵커들에게 가리지 않고 건네는 선배도 있습니다. 이 선배는 가끔 반말로 AD를 윽박지르며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협박했습니다. 젊은 여자 직원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사규가 YTN에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모습을 곳곳에서 자주 보게 되는 걸까요?

간부들께서는 사회적으로나 이 조직에서 이미 권력을 가진 중년 남성인 만큼, 많은 이성 직원들의 지위와 권리에 특히 신경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노조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사원은, 반복되는 폭력과 모욕을 대개 힘들게 참고 있겠지요.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페미니즘'이란 용어로 표현하는 게 적절하진 않을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이 여성인 비정규직 작가나 프리랜서 앵커의 노동 환경과 엉터리 계약 문제까지 생각해보면, 이건 언론사 내의 인권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 '갑질' 지적을 할 게 아니라, 회사 내 실태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6. 언론의 '가치'를 고민해 주십시오

YTN의 모습.
 YTN의 모습.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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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 때를 돌아보는 것만큼 아찔한 기억이 없습니다. 충분히 반성했는지 지금도 자신이 없습니다. 어느 선배가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기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한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오보를 낸 건 큰 실수지만, 그 이후에 우린 최선을 다했고, 거기에 대해선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이제와 말씀드리지만 그때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괴로운데, 최선을 다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 일단 앞으로 나가자는 그 말의 뉘앙스가, 해직자들을 놔두고도 그토록 무심했던 간부들의 얼굴과 겹쳐 흉물스러웠습니다. KBS와 MBC의 정상화를 외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YTN의 일부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겉으로는 공정(公正)을 외치지만, 실은 무기력한 공정(工程)은 아닙니까?

지역에서 이뤄지는 지국장들의 '영업'을 사례로 들어보겠습니다. 각 지자체로부터 홍보비 협찬만 잘 받아도 해마다 광고료 수억 원을 챙길 수 있으니 포기하기 어려운 수입원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언론사와 기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가뜩이나 인원 적은 지역에서 지국장은 마케팅 업무로 돈을 타내고, 후배 기자는 몇천만 원씩 건넨 기관의 문제점을 비판해야 하는 구조. 취재가 날카롭게 이뤄질 수 있습니까?

적어도 기자들이 취재를 잘하도록 지원하려면, 광고 관련 업무는 별도의 직원에게 맡기는 게 상식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수입원을 찾는 일은 어느 언론사에서나 시급하겠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가장 중요한 일은 뉴스를 잘 하는 것 아닐까요? 새로운 사장께서는 뉴스 전문채널의 시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문제를 늘 가장 깊이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7. 언론은 시청자 앞에 긴장해야 합니다

YTN을 믿고 보시는 시청자께도 말씀드립니다. 어찌 됐든, 공정한 뉴스를 신속하게 전하겠다는 뉴스 전문채널의 진심을 조금은 이해하고 계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종일 YTN을 틀어두는 분도 계실 겁니다.

다만 부탁드리건대, 그렇게 보고 듣는 YTN 뉴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주십시오. 어떤 뉴스를 어떻게 취재하고 누구의 말과 근거로 비판하는지 조금만 더 관심가져 주십시오. 언론사가 뉴스로 다루는 사안 모두가 정말 시청자에게 중요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 알고 계실 겁니다.

더 많은 분께는 뉴스가 다루는 이야기보다 더 시급하고 절박한 일이 매일 일어나겠지요. YTN뿐만 아니라 어느 언론사든, 그런 절박한 뉴스를 다루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에 한눈을 팔고 있다면 부디 엄중하게 꾸짖어주십시오. 이 뉴스는 왜 이런지, 저 뉴스는 또 왜 저렇게 다루는지 시청자가 꼼꼼하게 귀 기울이면, 언론은 함부로 사실을 호도하거나 왜곡하지 못합니다.

지난 2013년 6월 10일, 민주항쟁 26주년이 되던 날 당시 다른 해직자들과 국토순례에 나서던 노종면 선배의 말을 붙입니다. 지금 뒤늦게나마 언론을 바로 세우려 노력하는 많은 분의 마음이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왜 싸워왔고 앞으로 계속 싸울 수 있는지, 저에게 묻고 우리 동료들에게 물어보겠다. 본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우리 동지들도 하루하루 피폐해지고 있는 YTN 보도를 보면서 가슴을 치고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우리 동지들도 우리가 한 걸음 뗄 때 그들도 우리와 같이 땀 흘리며 한 걸음 떼면서 YTN의 보도와 미래에 대해서 고민을 할 거라 굳게 믿는다."

쉽게 쓸 줄 알았던 글을 몇 달 만에야 마무리 짓습니다.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이야기가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간의 고민을 이렇게나마 남겨둡니다. 정작 회사에 있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더 자주 나누지 못했는데, 이제야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합니다. 앞서 새로운 사장께 드리는 글이라 말씀드렸지만, 공개적인 장소에 싣습니다. 누가 이 글을 읽으시든, YTN이 늘 긴장하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원석 전 YTN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대학 미디어교육 석사 과정.


태그:#YTN, #노종면, #미디어, #언론,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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