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족·국제

서울

포토뉴스

1948. 8. 15. 서울.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의 담소장면으로, 그 시절 두 사람은 서로 코드가 잘 맞았다. ⓒ 맥아더기념관
싼 게 비지떡

2017년 10월 22일, 제4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의 한국 근현대사 관련 자료 검색 및 수집을 목적으로 워싱턴에 가는 날이었다. 경비 절약을 위해 가장 값싼 항공권을 조회하자, 가는 길은 일본 나리타(成田) 경유요, 오는 길은 샌프란시스코 경유 IDA(워싱턴 덜레스공항) UA 항공권을 발권했다.

그날 원주 집을 오전 6시 30분에 떠났다. 공항에 닿으니 오전 9시 20분이었다. 이륙 시각은 낮 12시 35분으로 여유가 있었다. UA 항공사 앞으로 가자 그새 몇몇 승객들이 발권을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 셀프 체크인(Self Check In)에서 발권해 시간 여유가 더 많았다.

나는 가까운 커피 점에서 차를 마시면서 챙겨온 짐들을 하나 하나 다시 점점해봤다. 보아 하니 평소 마시던 메밀차만 빠트린 것 같았다. 이번 여행 기간엔 다른 차를 마시라는 계시라고 생각하고 굳이 공항매점을 찾지 않았다.

탑승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항공권을 꺼내 스케줄을 다시 챙기는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리타 공항에 낮 2시 55분에 도착한 다음, 오후 4시 출국이었다. 그 비행기를 그대로 타고 가는지, 아니면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지 UA 항공 직원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 직원은 그렇지 않아도 나를 찾고 있던 중이라며 매우 반겼다.

그가 나를 찾는 까닭은 도쿄에서 워싱턴 덜레스 공항으로 가는 환승 UA804편이 갑자기 취소됐기에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왜 이런 중요한 일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자기들도 이제야 연락받았다고 말했다. 마치 '싸구려 항공권을 타는 주제에 무슨 말이 많느냐'는 태도였다. 순간 돌아가신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싼 게 비지떡이다. 물건을 잘 모르면 값이 비싼 것을 사라."
1948. 8. 15. 서울.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 ⓒ 맥아더기념관
'유종의 미'

나는 항공사 직원에게 따지는 걸 체념하고, 그 자리에서 마중 나올 미국 박유종(79) 선생에게 전화했다. 깊은 밤중이었지만 다행히 받았다.

나의 돌발적인 사정을 듣고 난 박유종 선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변경된 시각에 맞춰 덜레스 공항으로 마중 나오시겠다고 했다. 내가 직원에게 가장 빠른 비행기 항공권을 부탁하자 그는 낮 1시 출발 UA892기 인천-샌프란시스코행 항공권과 샌프란시스코-워싱턴행 오전 9시 36분 UA516기 항공권을 즉석 발권해줬다. 그러면 워싱턴 도착은 22일 오후 6시 23분으로 애초보다 3시간 정도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미국 박유종 선생에게 덜레스 공항 도착예정 시각을 알린 다음, 다른 게이트에서 인천발 샌프시스코 여객기에 탑승했다. 다행히 그 여객기는 좌석이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세상만사 액운만 닥치는 게 아니라고, 나는 넉넉히 세 자리를 모두 차지하면서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비록 이코노믹석이지만 비지니스석 부럽지 않았다. 그날 오후 1시에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날짜상 그날 오전 6시 30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닿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새벽은 마치 보석을 뿌린 듯 아름다웠다. 호기심 많은 늙은이는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두루 구경하고 싶었지만 모든 게 여의치 않았다. 귀국 때는 이곳에서 환승하자면 10시간을 머물지만 그때는 한밤중이라 별 수 없이 공항에 갇혀있어야 할 팔자였다. 우동 가게에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시골 영감티를 내지 않고 눈치껏 표지판을 보며 오전 9시 35분 워싱턴행 UA516기에 올랐다.

그날 오후 6시 23분, UA 516기는 정확하게 IAD(덜레스 공항)에 날개를 접었다. 이번 나의 미국행은 네 번째지만 워싱턴 덜레스 공항을 통한 입국은 두 번째다. 하지만 10년 이전이라 가물가물했다. 그저 말도 통하지 않고 길을 잘 모를 때는 다른 승객들을 눈치껏 보면서 따라가면 크게 실수가 없다.

나는 여러 승객들을 따라 곧장 입국장으로 가는데 짐을 찾는 곳에 낯익은 사람이 서서 나를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고 흔들었다. 박유종 선생이었다. 곧 우리는 악수가 부족해 서로 부둥켜 안았다. 꼭 10년 만의 재회였다.

"건강은 괜찮습니까?"
"네, 덕분에. 지난 봄부터 한 5개월 된통 앓다가 얼마 전에 일어났지요."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저를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그렇지 않아도 집사람이 뭐라고 하기에, 우리는 이번에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대꾸하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더군요."
"박유종 선생님의 '유종의 미'라는 말은 정말 말이 되네요."
1949. 8. 15. 서울. 이승만 대통령이 중앙청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1주년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낭독하고 있다. ⓒ 맥아더기념관
국혼(國魂)을 지키면

박 선생은 내 가방을 뺏고는 주차장으로 간 뒤 승용차에 싣고 옆자리에 나를 태웠다. 공항에서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의 숙소로 가는 길의 도로표지판 지명들은 모두 낯이 익었다. Potomac River니, Silver Spring이니, 495번 외곽 순환도로도 이전에 여러 번 지났던 곳이었다. 

"화장실이 어디입니까?"도 영어로 말할 줄 모르는 한국 강원도 시골 영감이 벌써 네 번째나 워싱턴 D.C. 일대를 헤집고 다닌 것은 모두 박 선생 덕분이다. 사람이 한 번은 신세질 수 있을 수 있지만, 나는 1차에 40여 일, 2차에 10일, 3차에 2주일, 4차에 1주일 등 모두 70여 일에 걸친 안내를 받았다. 입장을 바꿔봐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데다가 운전면허증조차 없는 시골 영감 아닌가.

박유종 선생은 나의 이런 불편함을 모두 현지에서 해결해줬다. 그분이 특별히 내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의 이유는 당신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박(도) 선생은 제 할아버지가 매우 좋아할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 말과 우리 역사를 소중히 여기셨지요. 그런데 박 선생은 국어교사 출신인 데다가 특별히 독립운동사를 공부하시니." 

백암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원로 사학자로서 <한국독립지혈사>와 <한국통사>를 남기셨다. 나의 부족한 학식으로 어찌 두 귀한 사서를 섭렵하겠는가만 그 책 앞부분에 실린 신용하 교수의 해제를 읽고는 그 말씀에 이해가 갔다.

"민족과 국가는 크게 나누어 '국혼(國魂)'과 '국백(國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인데, 나라가 독립해 있다는 것은 국혼과 국백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은 이 국혼과 국백이 분리되어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백(國魄, 곧 국토, 군대, 군함 등)'은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하여 빼앗길지라도, '국혼(國魂, 곧 國敎, 國學, 國語, 國史 등)'은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되기에 이를 지키면 언젠가는 그 민족은 독립할 수 있다."

우리 겨레가 꼭 명심해야 할 정말 귀한 가르침이다.
1950. 2. 16. 일본 도쿄. 이승만 대통령이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여 양국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오른쪽은 맥아더 장군). ⓒ 맥아더기념관
임시정부 2대 대통령

우리나라 헌정 사상 현직 대통령 탄핵은 박근혜씨가 처음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상해 임시정부 시절 이승만 박사가 불명예스럽게도 현직에서 탄핵받은 그 첫 번째 인물이다.

1924년 6월,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은 임시정부 분쟁의 원인이었던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과 구미위원부 자금의 자의적 사용, 한인 사회 파쟁 선동 등의 책임을 물어 이승만 대통령 유고안을 통과시켰다. 그런 뒤 임시정부 의정원은 국무총리 겸 대통령 대리(권한대행)로 백암 박은식 선생을 추대했다.

이듬해 1925년 3월 21일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은 이승만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3월 23일 박은식 선생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3월 24일 의정원에서 제2대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했다. 박은식 대통령은 그해 3월 30일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령제(國務領制)를 신설해 국무령을 중심으로 하는 내각책임제로 바꾼 헌법개정안을 의정원에 제출했다. 개정된 신헌법 하에서 7월 이상룡(李相龍)을 국무령으로 추천해 선출한 다음, 당신은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어찌 보면 나는 대단히 복이 많은 사람이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후손 이항증 선생으로부터 중국 대륙 항일유적지 답사를 두 차례나 받았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자료 조사 때는 임정 대통령 박은식 선생의 후손인 박유종 선생에게 네 차례나 지극한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2017. 10. 23. 제4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한국 근현대사 자료 수집에 앞서 박유종 선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다(NARA 정문 앞, 왼쪽 박유종 선생 오른쪽 기자). ⓒ 박도
석별(惜別)

2017년 10월 27일 오후 6시 30분, 나는 제4차 방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워싱턴 덜레스 공항 출국장 탑승장에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박유종 선생은 떠나지 않고 탑승장 어귀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배웅했다. 나는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쩌면 피차 이생에서의 마지막 장면으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번 제4차 방미는 여비와 건강문제로 기간을 짧게 잡았기에 도착 이튿날부터 출국날까지 빡빡한 일정 속에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다. 시차 적응을 위해 난생처음 수면제까지 먹고 다음 날을 대비했다.

NARA에서 검색 도중 산책 시간, 내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말에 박 선생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느냐"라고 나무랐다. 그러면서 언제 아무런 일감없이 관광만으로 미국에 와 자신과 함께 미국 북부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다 한 곳 더 보탰다.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흔적을 답사하고 싶다고. 곧 우리 두 노인은 흔쾌히 미국 동부를 남북으로 횡단하자고 약속했지만, 앞날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방문길에 핸들을 잡은 그분의 목 안에서는 '골골'하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내 몸에서도 늙은이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풍겼으리라. 70대 초반과 후반의 두 노인이 내일을 약속한다는 것은 그저 하느님만이 그 성사가 이뤄질지 아실 일이다.

나는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 내내 그분과의 지난 아름다운 인연과 추억들을 반추(反芻, 되새김질)했다. 그분은 헤어지기 직전에 그날 아침 내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 초고의 한 대목을 보신 소감을 전했다. "아주 속이 후련하다"라고. 당신이 꼭 하고 싶었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 기사는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③] 트럼프 대통령에게 드리는 호소문인데, 감탄사로 나온 말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예전처럼 한국에 '병 주고 약 주는 척' 무기장사를 그만 하십시오."(해당 기사 보러 가기)
 

* 이번 회에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맥아더기념관에 소장된 상해 임시정부 및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우남 이승만 박사와 더글라스 맥아더의 사진을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두 사람은 '반공'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코드가 잘 맞았지만, 그들은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한 사람(이승만)은 '북진통일'만 외치다가 백성들의 시위로 재임 중 하야했고, 다른 한 사람(맥아더)는 북폭(핵무기 사용)을 주장하다가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불명예스럽게 해임당했다. 이들 사진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모습만 담았다.
1950. 2. 18. 일본 도쿄. 이승만 대통령의 귀국에 앞서 도쿄 하네다 공항 출발에서 양국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오른쪽은 맥아더 장군). ⓒ 맥아더기념관
1950. 2. 일본 도쿄. 맥아더 원수가 하네다 공항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영접하면서 양국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 맥아더기념관
1950. 8. 15. 경북 대구.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마치고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던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 NARA
1950. 9. 16. 부산 구포.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 훈련소에서 장병들에게 훈시하고 있다. ⓒ NARA
날짜 장소 미상. 이승만 대통령이 주한 미 해병부대를 찾아가다. ⓒ NARA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도움을 청하고 있다. ⓒ NARA
1951. 4. 18. 경북 왜관. 이승만 대통령이 낙동강 철교 복구 현장에서 치사하다. ⓒ NARA
1951. 6. 25. 경남 진해. 이승만 대통령이 손원일 제독(왼쪽)의 안내로 해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를 사열하고 있다. ⓒ NARA
1951. 6. 25. 경남 진해. 이승만 대통령이 해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들을 사열 후 치사하고 있다(왼쪽 장면 총리, 오른쪽 프란체스카 부인, 무초 주한 미 대사, 스미스 장군, 신성모 국방장관). ⓒ NARA
1951. 8. 22. 강원도 홍천. 한미 수뇌부가 전방부대에서 포사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앞 열 왼쪽부터 손원일 해군제독, 토마스 장군, 이승만 대통령, 밴프리트 장군, 주한 무초 미국대사). ⓒ NARA
1952. 2. 12.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근해에 정박 중인 미 해군 Wisconsin 호 함상에서 미 해군 장병들을 사열하고 있다. ⓒ NARA
1952. 4. 17. 경남 진해.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진해 해군기지를 방문하여 부대장으로부터 경례를 받고 있다. ⓒ NARA
1952. 9. 18. 이승만대통령을 비롯한 유엔군 고위층이 한국 주둔 미 해병부대를 사열하고 있다(가운데 이승만대통령, 왼쪽 밴프리트 미 8군사령관) ⓒ NARA

덧붙이는 글 | 일부 사진이 삐뚤어진 것은 원본 사진이 워낙 오래된 것이라 스캔과정에서 바르게 펴지 못했기 때문으로 그 모두가 제 탓입니다. 이달 하순께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발간 <미군정 3년사>가 발행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태그:#박은식, #이승만, #맥아더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