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3연패의 수렁에서 탈출했다.

차상현 감독이 이끄는 GS칼텍스 KIXX는 지난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경기에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세트스코어 3-2(21-25,23-25,25-16,27-25,15-10)로 꺾었다. 두 번의 풀세트 승리를 통해 승점 4점을 챙긴 GS칼텍스는 흥국생명에게 세트 득실률에서 앞선 5위로 1라운드 일정을 마감했다.

파토우 듀크와 표승주, 강소휘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71득점을 합작하며 공격을 주도했지만 이날 GS칼텍스의 승리 비결은 바로 13-4로 절대 우위에 있었던 블로킹이었다. 이날 GS칼텍스는 김유리 혼자 5개의 블로킹을 성공시킨 반면에 흥국생명은 5세트 동안 팀 전체가 단 4개의 블로킹만을 기록했다. 시즌 전부터 흥국생명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전력 불균형'이 시즌 초반부터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김수지 놓치고 김해란 영입하며 균형 무너진 흥국생명

 지난 시즌 V리그 최고의 리베로 한지현은 이번 시즌 졸지에 팀 내 세 번째 리베로로 전락했다.

지난 시즌 V리그 최고의 리베로 한지현은 이번 시즌 졸지에 팀 내 세 번째 리베로로 전락했다. ⓒ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은 박미희 감독 부임 후 3년 차가 되던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레프트 듀오 타비 러브와 이재영이 공격을 책임지고 수련 선수 출신의 한지현 리베로가 발군의 수비력을 뽐냈으며 맏언니 김수지(IBK 기업은행 알토스)는 김나희와 함께 든든하게 중앙을 지켰다. 한 마디로 지난 시즌의 흥국생명은 포지션의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진 팀이었다.

비록 챔프전에서는 '미친 활약'을 펼친 매디슨 리쉘이 이끈 기업은행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신구조화와 포지션 균형이 잘 이뤄진 흥국생명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되는 듯했다. 실제로 흥국생명은 시즌 종료 후 열린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MVP(이재영)를 비롯해 BEST7 중에서 무려 4명(이재영, 김수지, 한지현, 조송화)이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FA시장이 열리면서 흥국생명의 사정은 달라졌다. 3년 동안 흥국생명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 주전 센터로 성장한 김수지가 흥국생명의 챔프전 파트너였던 기업은행으로 이적한 것이다. 흥국생명은 박미희 감독이 탐내고 있었던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을 영입했지만 이미 한지현이 있는 리베로 자리보의 보강 효과보다는 김수지가 빠진 센터 자리의 구멍이 더 크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어진 보상 선수 지명과 트레이드를 통해서 센터진 보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상 선수 순위에서 뒤로 밀린 흥국생명은 기업은행으로부터 센터 자원이 아닌 남지연 리베로를 지명할 수밖에 없었고 각 구단들이 보상 선수를 통해 활발한 트레이드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흥국생명은 어떤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결국 흥국생명은 김수지의 대안을 구하지 못한 채 리베로 자리에만 5명(김해란, 남지연, 한지현, 김혜선, 도수빈)의 선수가 모여 있는 기형적인 선수 구성을 갖게 됐다. 팀 내에서 완전히 자리를 잃은 김혜선(기업은행)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방출시켰지만 흥국생명에는 여전히 작년 리우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두 베테랑 리베로와 지난 시즌 리베로 부문 BEST7에 선정됐던 한지현 리베로를 데리고 시즌을 시작했다.

블로킹5위-속공 최하위, 흥국생명의 중앙이 텅텅 비었다

 신인 센터 김채연은 빠른 적응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김수지의 빈자리를 메울 정도는 아니다.

신인 센터 김채연은 빠른 적응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김수지의 빈자리를 메울 정도는 아니다. ⓒ 한국배구연맹


박미희 감독은 지난 9월 천안·넵스컵을 통해 라이트 공격수 정시영을 센터로 활용하면서 김수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정시영은 컵대회에서 블로킹 5위(세트당 0.71개), 서브 6위(세트당 0.43개)에 오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운동 능력이 좋은 정시영과 노련한 김나희를 주전으로 활용하고 임해정, 황현정 등 유망주들을 키워 나가며 센터진의 약점을 극복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1라운드가 끝난 현재 흥국생명에게 닥친 현실은 냉정했다. 흥국생명은 1라운드 5경기에서 블로킹 5위(세트당 1.81개), 속공 성공률 최하위(25%)를 기록하며 중앙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속공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건설(63.79%)까지 갈 것도 없이 속공 5위 GS칼텍스(36.92%)와의 성공률 차이도 10%가 넘는다.  조금 잔인하게 표현하면 이번 시즌 흥국생명은 사실상 센터진의 공격력이 없다시피 한 셈이다.

리그 정상급 리베로를 3명이나 보유했다고 해서 수비가 몰라보게 좋아진 것도 아니다. 박미희 감독은 이번 시즌 FA로 영입한 김해란 리베로를 주전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번 시즌 김해란 리베로의 리시브 성공률은 33.58%에 불과하다. 2015-2016 시즌 52.76%, 2016-2017 시즌 49.6%와 비교해 보면 김해란 리베로는 분명 최악의 출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주전 자리를 잃은 남지연과 한지현의 경기 감각 유지도 고민이다.

4일 GS칼텍스전은 흥국생명의 전력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해 졌는지 확연하게 드러난 경기였다. 흥국생명은 첫 두 세트를 따내고도 GS칼텍스의 높이에 막혀 내리 세 세트를 내주며 역전 드라마의 희생양이 됐다. 조송화 세터는 의식적으로 중앙 속공을 활용하려고 했지만 GS칼텍스 선수들은 3세트부터 노골적으로 테일러 심슨과 이재영만을 집중적으로 막았다.

박미희 감독은 지난 1일 도로공사전부터 1999년생의 신인 센터 김채연을 주전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채연은 도로공사전에서 2개의 블로킹을 성공시켰고 GS칼텍스전에서는 62.5%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프로무대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 흥국생명은 리빌딩 팀이 아니다. 만약 지금의 기형적인 전력 불균형을 빠른 시간 안에 해소하지 못한다면 흥국생명의 지난 시즌 성공은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릴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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