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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강남대로를 벗어나자, 고즈넉한 골목이었다.

"이야!" "엄청 넓다!"

연거푸 감탄사를 외쳤다. 셰어하우스가 이렇게 넓다니. 철제 대문을 지나 유리로 된 자동문을 스쳤다. 오른편엔 카페를 꾸몄다. 운영진으로 보이는 직원 셋이 각자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카페 앞뜰, 그러니까 이 집의 뒤편에선 한 여성 입주민이 자그만 럭비공을 든 채 웰시코기와 뛰놀고 있었다. 그곳은 정원이었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석류나무 등이 오밀조밀 둘레에 늘어섰다. 제법 키 큰 나무에 매단 해먹이 눈에 들었다. 날씨 따뜻한 봄엔 저기 누워 빛바랜 소설 한 권 읽을 수 있으리라.

얼마 전 한 언론에서 "170평 대지에 40명이 사는 셰어하우스가 있다"고 보도된 것이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렸다. 나 역시도 눈길이 자꾸만 이쪽으로 쏠렸다. 지난 10월 31일 해당 셰어하우스를 찾았다. 병풍처럼 펼쳐진 강남역 사거리 빌딩숲 너머 오르막길을 걸었다. '기대 반 낯섦 반'의 마음이었다.

 지난 10월 31일 오후 기자는 강남역 사거리 인근의 한 셰어하우스를 방문했다. 최근 한 언론에서 “170평 대지에 40명이 사는 셰어하우스가 있다”고 보도한, 바로 그곳이다.
 지난 10월 31일 오후 기자는 강남역 사거리 인근의 한 셰어하우스를 방문했다. 최근 한 언론에서 “170평 대지에 40명이 사는 셰어하우스가 있다”고 보도한, 바로 그곳이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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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2.1m에 너비 1.3m, 캡슐 속에서 잠든다

남성 거주 공간(16명 수용)은 1층이었다. 그러니까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이 생활 공간, 오른쪽이 카페였던 게다. 여성 거주 공간(24명 수용)은 2층에 조성돼 있단다. 물론 지문 인식을 통한 출입문이 있어 거기까진 둘러볼 수 없다.

1인실 네 곳, 8인실 한 곳, 4인실 한 곳. 남은 자리는 4인실 한 자리 뿐이란다. 5평 남짓 되는 방이었다. 사실 빈 자리가 하나 더 있었지만, 여행객에게 현지인 집을 빌려주는 에어비앤비처럼 '공유 숙박' 사업에 쓰겠다고 남겨둔 것이었다.

잠자리는 길이 2.1m에 너비 1.3m 하는 직육면체에 마련돼 있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캡슐 호텔을 본떴단다. 한쪽 면이 뚫려 있었지만 불투명 가림막을 내릴 수 있었다. 매트리스에 누워 잠을 청할 땐 가림막을 내리면 빛을 거의 차단할 수 있다. 머리맡 벽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전등이 달려 있었다. 전등을 끄면 영락없이 무덤 속 '관'이다.

 셰어하우스의 잠자리
 셰어하우스의 잠자리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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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이 있었지만 너무 작았다. 휴대전화랑 책 몇 권 놓으면 끝이다. 너비 80㎝ 되는 옷장과 72리터 용량의 플라스틱 상자가 주어진다.

내친김에 8인실도 살폈다. 진정 내밀한 사생활이 깃든 공간은 잠자리 단칸이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가림막을 쳤다. 문 열린 큐브가 눈에 띈다. 이 입주민은 다이소에서 나온 플라스틱 수납함을 사다가 매트리스 발치에 갖다놨다.

아, 생각해보니 나는 책이며 옷가지며 짐이 많다. 우체국 택배에서 쓰는 6호 규격 상자 예닐곱 개나 필요한데 이를 어쩌나. 직원이 한마디 거든다.

"대부분 여행용 가방 하나 꽉 채우는 수준으로 와요. 정 안되면 옷장 위에 짐을 놔둘 순 있겠는데, 다른 입주민에게 양해를 구해야죠. 어떤 친구는 아예 짐을 갖고 오지 않은 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여태까지 남성분들은 수납장 쓰면서 공간이 부족하다고 하는 이들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셰어하우스 8인실의 모습.
 셰어하우스 8인실의 모습.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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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엔 "개인 물품에 이름 표시해달라" 안내문

방을 나와 복도 벽에 놓인 흰 가구 양문을 잡아당겼다. 전기식 의류건조기, 세탁기를 두 대씩 놨다. 반들반들 윤기가 흐른다. 동전 넣을 필요 없다. 거저 쓰라고 푸른 액체 세제도 갖다 놓았다. 여러 군상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이다 보니, 세탁기 소음 문제로 최근에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고 했다.

구성원 가운데 절반이 직장인이니 그런 게다. 야근에 시달리고, 새벽 출근하기 일쑤인 청춘들. 쌓인 빨랫감을 세탁할 여유가 나는 시간은 어스름한 달밤 뿐이다. 모든 입주민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결론을 냈다고 한다. 여성 거주 공간에선 오후 11시까지, 남성 거주 공간에서는 자정까지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셰어하우스 복도에는 전기식 의류건조기(위), 세탁기(아래)를 두 대씩 놓았다.
 셰어하우스 복도에는 전기식 의류건조기(위), 세탁기(아래)를 두 대씩 놓았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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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은 전기압력밥솥,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정수기, 핫플레이트, 냄비 등 식기구가 알차게 배치됐다. 다만 식사를 편히 하긴 어려워 보였다. 바 모양의 식탁은 두 사람만 앉을 수 있었다.

특히나 점심, 저녁은 카페로 가서 자리를 잡고 식사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영업하기 때문이다. 그냥 바깥에서 끼니 해결하는 게 낫겠다 싶다.

냉장고 앞엔 안내문을 붙여놨다. '모든 개인 물품은 봉투나 박스에 넣어 스티커로 이름 표시', '일주일 이상 먹지 않은 음식은 폐기해 주세요'란 글귀가 선명했다. 만일 여기서 살기로 마음 먹는다면, 본가에서 보내는 고들빼기김치는 오래 쟁여 넣기 어렵겠구나. 가운데 냉장칸에 이름표 붙인 연두색 바구니가 보였다. 샌드위치, 맥주캔, 피클, 각종 소스. 거의 가공식품 일색이다.

 냉장고 앞에 붙은 안내문.
 냉장고 앞에 붙은 안내문.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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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거실' 역할... 요리사부터 IT개발자까지

남성 거주 공간은 여성 거주 공간과 달리 거실이 없다. 셰어하우스 운영사 대표는 카페가 사실상 거실 역할을 대신한다고 강조했다. 입주민들은 여기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공짜로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근처에 학원 다니는 학생 입주민들이 공강 시간에 잠시 이곳에 들러 커피를 얻어 가기도 해요. 카페에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카페 영업이 끝났을 때는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맥주 한 잔 걸치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 집엔 미술 작가, 요리사, 건축설계사, 정보기술(IT) 업계 개발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어학원, 편입학원, 변호사 시험 등 각종 공부에 매진하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수도 상당하단다. 입주민의 85%가 20대라고 한다. 필리핀, 베트남, 요르단,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도 네 명 있다.

대표는 이 집이 단순히 주거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동체의 기능을 충실히 해낸다고 설명했다. 마음이 맞으면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서 활어회에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하고, 등산을 가기도 한단다. 지난 추석 연휴 당시엔 요리사로 일하는 입주민이 삼계탕을 끓여 고향에 가지 못한 입주민과 한 그릇 나눴다 한다.

이곳은 새 일자리를 찾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운영진들은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에 몸담고 있다. 미국에서 온 한 입주민은 대표의 도움을 얻어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고 인턴으로 취업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4인실 월세 60만 원대... 벽돌담은 높았다

그런데 발목을 잡은 건 가격이었다. 4인실 월세는 54만 원이다. 관리비 10만 원을 합치면 64만 원이다. 단, 12개월 거주 계약에 보증금 1천만 원을 낼 때 가능한 조건이다. 3~6개월 단기로 살 거면 매달 69만 원을 내야 한다. 이미 자리가 꽉 찬 8인실은 매달 64만 원이 든다. 기숙사 살 때만 해도 한 학기에 100만 원 냈다. 지금 사는 자취방 월세 부담도 매달 30만 원대 수준인데. 강북에서 살던 내게 강남은 별세계였다.

강남역 주변 부동산 몇 곳에 물어봤다. 비슷한 가격대 집을 구해봐야 반지하 주택 수준이란다. 이 일대에선 원룸을 구하려 발품을 팔면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70만~80만 원대인 주택이 가장 많았다.

보통 셰어하우스가 보증금 50만~200만 원 수준에 월세가 30만~60만 원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는 분명 비싼 집이다.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학원·직장으로 통학·통근이 용이한 강남역 코앞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건가.

대표는 자신들이 무료 제공하는 품목이 많다는 점을 들어 "셰어하우스가 주거비를 절약하는 최선의 방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 커피부터 세제, 휴지, 전기, 수도, 냉·난방 등을 무제한으로 드리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비용이 많이 절감돼요. 만약에 혼자 자취를 하겠다 하시면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할 걸요?"

입주민 가운데 충청권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있다고 했다. 주말에 편의점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달이 100만 원을 번단다. 그 돈으로 월세와 관리비를 낸다고 했다.

컥컥 숨이 막혔다. 다른 데도 좀 더 둘러본 다음에 최종 결정하겠다 하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웅장한 풍채를 자랑하던 저택을 뒤돌아봤다. 갈색 벽돌담은 높았다. 장탄식했다.

"아아, 서울에서 먹고 살기 힘들구나!"



오늘을 쓰고 내일을 말하는 기자입니다. 늘 치열하게, 당위와 현실 사이의 균형감을 지키겠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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