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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한 동네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았던 초등학교 동창들이 있다. 대학 진학 전까진 소위 뺑뺑이로 상급 학교에 진학했으니 출신 중고등학교는 같기도, 다르기도 하나, 대개 비슷한 조건과 형태의 학교를 나왔다.

무채색 재킷에 체크무늬 치마, 혹은 회색 계통의 바지. 하나같이 특색 없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을 거쳐 사회로 편입되었고, 이제 우리네 사는 모습은 퍽 달라졌다. A는 대기업 과장, B는 작은 식당의 사장, C는 한발씩 꿈에 다가가며 연극판에 있고, 아기엄마로서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D, 대학 시간강사인 E도 있다. 

보기엔 적잖이 달라도,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들 하나같이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것. 어쩌다 다같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떠들다가도, 미래의 불안 앞에선 숙연해지고 만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이십대부터 적잖게 노후와 미래를 걱정해 왔으니, 대체 우리의 청춘은 몇 살 때 근심 없이 빛났단 말인가. 이제 원로가수가 아니라, 새파랗게 젊다 못해 어린 가수가 노래해도 어색하지 않을 판이다. "청춘을 돌려다오" 라고.

 <청춘의 가격> 책표지
 <청춘의 가격> 책표지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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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가격>은 "길을 잃어버린 건 청년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려놓은 좌표"라고 딱 잘라 말한다. 성실하게 살기만 하면 성공과 보상이 따른다는 믿음은 무너진 지 오래라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청춘, 책은 이들을 직접 만나보길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이 청춘을 얻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인 '가격'에 빗대어 풀어내고 있다. 청년들에게 정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책에 의하면, 나의 생존이 노동에 절실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를 고도의 상품화 상태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복지 국가는 이를 지양하는데,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상태에 고착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진단일 것이다. '생활'이 아닌 '생존'을 하는 상황에서, 근시안적인 태도를 버리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저자의 말마따나, 폭력에 가깝다.

책은 사회 저명인사들의 발언을 조명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인식을 드러내 보이며 논의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많은 중동으로 가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청년들이 빚이 있어야 파이팅 한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부당 처우는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에 없다는 발언을 한 분도, 가슴 아픈 구의역 사고에 대해 그 청년이 조금만 여유가 있었다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모른다고 발언한 사람도 있다. 이들이 청년 문제를 얼마나 왜곡된 시각으로, 또 무책임한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1장은 나는 생활하는가, 생존하는가, 2장 즐겁지 않은 나의 집, 3장 시골 청년 상경 분투기, 4장 홀가분한 후퇴, 5장 노동 시장 밖의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실린 청년 지표는 임금 구조를 가장 밑바닥에서 받치고 있는 세대가 청년층이라는 사실과, 이들에게 숙련보다 값싼 노동력을 요구하는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뿐인가. 날로 치솟는 주거비와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서 청년들이 자신의 시간, 노동, 학업과 맞바꾼 돈을 집주인과 대학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현실을 목도한다."

그 중 내 가슴을 가장 덜컹하게 만든 것은 30세의 싱어송라이터 김초록씨의 사연이었다. 계약직으로 직장에 다니다 오랫동안 소망한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삶은 꿈을 위협하고 만다. 인생을 장기적으로 계획한다는 것은 먼 세상 이야기일 뿐. 여전히 음악인의 삶을 원하지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 주위를 배회한다.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파이팅' 넘치는 삶일까. 김초록 씨의 지인은 퀵서비스를 하면서 음악을 하기도 한다. 생계를 위해 일을 안할 수는 없지만, 전업 직장을 구했다가는 음악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퀵 서비스로 생계를 해결하고, 그 외 시간에 음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던 그는, 결국 당분간 음악을 취미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고민에 봉착하고 만다.

이 사연이 내게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이렇게 꿈이 좌절되고 만다면, 이른바 금수저만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건 시간 문제일터. 현실적 문제에 발목잡힌 흙수저가 언강생심 어찌 예술을 꿈꿀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네 일상은 누가 노래할 수 있나. 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된다면, 사회의 퇴보는 불 보듯 뻔하다.

김초록씨의 사례를 통해, 책은 청년에게 필요한 실질적 정책이 무엇인지 유추해 간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많은 돈을 원하지 않지만, 음악가로서 자리를 잡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그 시간은 경제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그들에겐 노동 시장 진입 정책이 아닌, 지원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책은 청춘이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암울한 세태만을 조명하진 않는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다양한 공동체들을 말하고, 더 나은 미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토닥협동조합의 이사장이자 결혼을 앞둔 김진회씨 커플은, 결혼 후 귀촌·귀농을 결심하고 구체적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다. 이 예비부부는 소비지향적인 삶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사회가 제공하는 답이 아닌 자신들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이들의 생애 설계 과정은 청년 세대 전체의 문제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되어주기도 한다.

민달팽이유니온의 위원장 임경지씨 역시 청년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민단체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례로 등장한다. 1인 가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그들 모두는 연령대와 무관하게 외로움과 고립감을 1인 가구의 어려움으로 꼽는다고 한다. 이는 곧, 사회적 관계망이 보다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에 초점을 맞춘 이 단체는, 대안주거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내는 월세를 따져보면 수조 원이 될 거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자신들의 주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협동조합이다. 아직 모든 조합원들에게 집을 제공하고 있진 못하는 실정이라지만, 주거 문제의 어려움을 아는 나로서는 이 조합의 승승장구를 기원해 본다.

이렇듯 <청춘의 가격>은 현실적 문제들을 매우 가까이서 조명하고, 문제뿐만 아니라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당찬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으로, 누군가는 희망을 찾고, 누군가는 절망과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목도하든, 책이 목표한 바와 같이 청년의 문제가 곧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회적 각성이 필요한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흔한 말이지만, 청년은 미래다. 그들에게 청춘일 권리를 되돌려 줘야 한다. 이것은 한 세대나 특정 계층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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