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묵>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

영화 <침묵>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 ⓒ 솔트엔터테인먼트


"내가 해먹을 건 다 해 먹었다." 영화 <침묵>을 끝내고 박신혜와 마주한 자리,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연이지만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지 않은 배역을 맡은 박신혜는 "분량보다 내가 연기한 '희정'이라는 인물이 관객들의 마음에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씩씩하게 답한다.

"이미지 변신을 하기보다는 스크린 안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이고 싶다. 나에게 <침묵>은 '스크린 적응기'인 것 같다. 아역에서 성인 역할을 맡았을 때도 '잘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드라마와 영화 출연을 동시에 했을 때 '경계를 넘나드는 친구구나'라는 평이 받고 싶다. 딱 5분 주목받는 것으로 시작했다면 점점 시간을 늘려가고 싶은 거다. 배우라면 스크린 안에서 두 시간을 꽉 채우고 싶은 욕망이 누구나 있을 거다. 두 시간을 꽉 채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지난 10월 30일, 영화 <침묵>의 개봉을 3일 남겨두고 배우 박신혜를 만났다.

"촬영할 때 나는 주눅 들어 있었다"

 영화 <침묵>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

ⓒ 솔트엔터테인먼트


 영화 <침묵>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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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에서 변호사 '희정' 역할을 맡아 변호사의 일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아역 때부터 연기를 해와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생활감'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는 게 신기했는데.
"나는 항상 일상생활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저 '포장'된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저런 친구 한 명쯤은 있는데'라는 마음으로 보시면서 공감도 할 수 있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길가에 핀 민들레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문득 그 꽃이 예뻐 보일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일상적인 모습을 연기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가족들과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친구들과 노는 게 그저 재밌었다. 애들하고 운동장 걸으면서 수다도 떨고 학교 끝나고 노래방에도 가고 스티커 사진도 찍고. 그 나잇대를 친구들 덕에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배우 박신혜의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중학생 때는 땅만 보고 다녔다. (웃음) 사람 많기로 유명한 학교에 다녔는데 '연예계 활동을 준비하는 친구'라는 말이 따라붙는 순간 '쟤가 연예인이 된다고?' 같은 시선을 받는다.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이슈가 많이 돼 어머님들도 많이 알아보셨는데 그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에 대한 눈길이나 손짓 하나하나가 부담돼 땅만 쳐다보고 다녔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방법을 배웠다."

 영화 <침묵> 현장 사진

영화 <침묵> 현장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 <침묵>에 최민식부터 이하늬, 류준열, 이수경 등 쟁쟁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다. 부담이 되진 않았나.
"부담이 많이 됐다. (웃음) 촬영할 때도 주눅 들어 있었다. 긴장도 많이 하고. '나만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피해를 끼치면 어떡하지?' 계속 그런 생각만 했다. 내 바닥이 드러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왜 나는 저 배우처럼 임팩트가 없을까' 그런 고민을. 오히려 긴장이 겹겹으로 쌓이니까 몸이 풀어지질 않는 거다. 감독님께서 다행히 잘 잡아주셨다. 끝나고 나서도 '긴장을 풀고 현장을 좀 즐길 걸 왜 자꾸 뒤로 숨으려고 했을까' 후회도 많이 하고 반성도 했다."

- 특히나 최민식과 연기하면서 그랬을 것 같다. 최민식과 연기하면서 느낀 것이 있나?
"내가 뒤로 숨고 그랬는데 나를 현장에 참여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다. 선배님의 무게감으로 누군가를 짓누르는 게 아니라 그 무게감을 품고 현장으로 들어가 주시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긴장도 풀 수 있게끔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법정신에서는 실제 법정 안의 상황을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보다 몸소 보여주셨던 것 같다."

 영화 <침묵>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

ⓒ 솔트엔터테인먼트


- 정지우 감독과는 어땠나? 현장이 치열하고 섬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우선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의 '희정'(박신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희정과 각 인물 간의 관계 설정도 같이 했고. 정지우 감독님께서 내가 희정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봤을 때 믿음직스럽고 저 사람이라면 정의롭게 행동하겠구나. 관객을 잘 속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 박신혜 배우에게는 정지우 감독이 말한 것처럼 정말 정의롭고 따뜻한 느낌이 있다. 박신혜 배우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배우로서의 강점 혹은 약점이 무엇이라 보나?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배역만 하는 것이 아니냐, 정의감에 넘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침묵>에서는 정의롭고 신념에 가득 찼던 변호사가 끝까지 화가 나 다 뒤엎어버리는 모습도 나온다. 사실 나 자신도 아쉬운 거다.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남는 이미지에 대해서만 기억하니까. 그 이미지가 장점이자 곧 단점이 되는 것 같다."

- 그간 전문직을 주로 연기해왔다. 기자 의사 변호사 등. 평소에 진실과 정의에 관한 것도 고민하는 편인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편이긴 하다. 어린 애들이 길가에서 담배 피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쓰레기 버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지킬 수 있는 법에 대해서는 너무 큰 무리가 되지 않는 이상 지키고 사는 게 나도 속 편하고 모두 속 편하다. 아동 범죄라든지 그런 기사들을 보는 게 가슴 아프긴 하다. 특별히 정의롭다기보다는 포괄적인 것 안에 포함돼있는 것 같다."

"나의 롤모델은 전도연"

 영화 <침묵>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

ⓒ 솔트엔터테인먼트


- <침묵>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 예를 들면 '누군가의 연인'으로도 캐스팅 제안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누군가의 연인'으로 나오더라도 분량이 그렇게 많은 작품은 없더라. 나는 누군가의 연인이기보다는 역할이 작더라도 한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누군가의 여동생이나 여자로 극에 잠시 쓰이기보다는 상황이 벌어지는 공간 안에 있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그 상황을 견뎌야지 주연으로 발돋움했을 때도 극을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의미 있는 여성 캐릭터'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최근 한국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어떤가?
"아직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의 비율 자체는 증가하지 않은 것 같다. 기자나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주로 연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시대가 변화해 가면서 그 비율이 굉장히 적었다면 지금은 굉장히 많은 여성 분들이 전문 직종에 종사하시면서 점점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여성 장관도 나오는 시대니까. 그로 인해 (영화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비율이 맞춰져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경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대가 돼가고 있는데 영화에는 자극적인 내용이 많다 보니 여자들은 아직도 피해자로 머물러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 그런 부분에서 롤모델이 있나?
"전도연 선배님.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경계가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김혜수 선배님도. 나문희 윤여정 고두심 같은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당연하고."

- 나문희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56년 만에 탔다며 희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땠나?
"선생님에게 궁금한 게 있다. 나는 중학생 때 데뷔를 해서 15년 차 정도 됐는데 선생님은 56년을 내내 연기만 해오셨지 않나. 선생님의 3~40대는 어땠을까. 배우로서 어떤 삶을 사셨을까. 그리고 50년이라는 세월을 연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궁금하더라. 나도 곧 30대가 되고 결혼도 언젠가 하게 될 거고 애도 낳게 될 거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이게 직장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라는 역할 자체가 배우의 커리어에 한계가 될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들었다. 그런 부분을 과연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데 내가 거기에 잘 맞춰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은 항상 갖게 된다."

 영화 <침묵>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최희정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

ⓒ 솔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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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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