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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는 나요, 나는 곧 모자다.
 모자는 나요, 나는 곧 모자다.
ⓒ 신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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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8년 1월 12일 낮 2시 30분]

#1 집착의 대상

기본적으로 마케터라는 직책에 맞게 상술에 넘어가지 않으려 노력을 하는 합리적 소비자를 자처한다. 그런 나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영역이 있으니 바로 '모자'다. 흔히 말하는 모자 덕후, 길 가다가도 마음에 드는 모자가 있으면 주저없이 산다.

평소 양말은 신지 않더라도 모자는 챙겨 쓰고 나가는 버릇이 있다. 특히 수트에 빈티지 야구모자를 매치하기를 좋아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복장에 대해 크게 터치를 하지 않던 직장에 다녀서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모자는 늘 곁에 있었다. 혹자는 머리를 감지 않으려고 모자를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모자를 예쁘게 쓰기 위해서 머리를 감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한다. 머리를 감고 잘 말려서 한쪽으로 흐트러지지 않게 잘 정돈해야 모자를 썼을 때 각이 제대로 나온다.

그러다 최근 큰 고민이 생겼다. 공무원, 사람들이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면서 인생 최고의 위치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흔히 우리의 의식 속에 공무원이라하면 정형화된 복장과 칼 같은 출퇴근 시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는 당연히 모자는 없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모자를 집어넣어보려 해도 쉽지 않다.

모자에 왜 그렇게 집착하냐고? 머리숱이 부족하거나 두상에 문제가 있어서 모자를 택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모자, 특히 야구모자로 칭해지는 앞창이 긴 형태의 모자는 야구선수 출신인 아버지와의 추억이자 나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는 도구이기도 하고. 그렇게 며칠을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출근을 했다. 당연히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자 나의 아이덴티티.
 아버지와의 추억이자 나의 아이덴티티.
ⓒ 신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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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국, 모자 쓰고 출근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모자를 사수해야겠다는 다짐과 '이에라이시앙' 정신으로 결국 가장 아끼는 스냅백을 쓰고 출근을 해버렸다!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혼자 중얼거리며 서울시청에 도착했다.

막상 의기양양하게 출근했지만 막상 청사로 들어가려하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생각보다 그렇게 깡이 좋은 놈은 아닌 것을 30여 년 만에 깨달았다. 마치 엄마 지갑에 손을 댄 초딩이 군것질을 실컷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의 그런 기분이랄까?

게이트에서 혹시 출입을 제지할까봐 평소엔 걸지도 않는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어색하게 웃으며 들어갔다. 무사통과!! 살짝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출근 시간이라 엘리베이터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 중 눈치게임으로 가장 빨리 올라올 것 같은 놈 앞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문이 열리는데, 아놔... 이런... 엄청 낯이 익은, 선하게 생긴 아저씨가 보인다. 날 여기로 데려온 사람, 아재아재 우리 아재... 박원순 서울시장. 나는 최대한 당당한 척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시장님 안녕하세요..."

#3 구원투수, 박원순

 나의 아재, 박원순 시장.
 나의 아재, 박원순 시장.
ⓒ 신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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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옆에는 양복차림의 인사(人士)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레이저로 내 몸을 스캔하듯 훑고 있었다. 순간 통돼지 바베큐가 되는 줄 알았다. 그 레이저를 느낀 난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아니, 삼켜졌다.

옆에 같이 있던 눈치없는 어떤 인사가 "요즘 젊은 친구들은 복장이 자유롭고 보기 좋습니다~, 그렇죠 시장님?" 하고 너스레를 떤다. 난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러는지 잘 알고 있고 있었기에 그의 넥타이 너머로 보이는 울대에 당수를 날리고 싶었지만... 사장님께 폐를 끼치는 것만 같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필 그날따라 왜 난 반바지를 입었을까? 아침 저녁으로는 여전히 쌀쌀한데 말이다. 후우... 식은 땀이 삐질, 얼굴은 여유있는 모습을 유지하려 웃고 있었지만, 이미 볼은 화끈 거리고 심장은 경주가 한창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압박에 입을 여는 순간,

"좋네요~ 다른 분들도 진작 이렇게들 입고 다니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나도 외부일정만 적으면 저렇게 편하게 입고 싶은데. 옷으로 일하는 거 아니잖아요. 사내 게시판 보면 젊은 직원들이 복장이 간소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던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주면 좋겠어요. 얼마나 보기 좋아요~ 편안하고~ 시원하고~ 일도 훨씬 잘될 걸요? (나를 보며) 일 잘되지요?"

박 사장님 나이스샷!!

#4 아재인 듯 아재 아닌 아재 같은 사장님

 '아재'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은 2016년 10월 6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효자손 어르신 축제 때 모습.
 '아재'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은 2016년 10월 6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효자손 어르신 축제 때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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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부터 구태의연한 것에 대한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이가 주는 '아재스러움'이 있는 것도 알기에 조금 걱정했는데 저렇게 말해주며 미소를 날린다. 그리곤 또 평소와 다름없이 엘리베이터에 탄 모든 직원들의 호구조사를 시작한다. 무슨 부서에서 일하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이럴 때보면 또 그냥 아재다...

보통 나이가 들면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에 대해 공고해지고 이 경계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배타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남의 이야기, 특히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한다. 그건 이념이나 가치관을 떠나서 '어르신'들에게서 보이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른바 꼰대가 돼 가는 것이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성공적이었을수록 그 경계는 높아지고 단단해지며 이를 벗어난 것들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박원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내 예상은 틀린 것이 돼 버렸다. 그와 일할 때는 진짜 곡소리 나지만, 그는 자신을 설득해주길 원하고 끝까지 듣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역시는 역시'란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나 사실 그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비밀...).

사실 모자를 쓰고 안 쓰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존의 공고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문화가 필요한 우리 사회에 사장님은 적합한 '아재'가 아닌가 한다. 이 아재야 말로 '구태유연'의 끝판왕이 아닐까?

좀 낡으면 어떠랴?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데!

* 구태유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연륜이 쌓여 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굽힐 줄 아는 사람 또는 상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신영웅님은 'Uncreative Director, 서울시장 비서실 미디어 비서관'입니다. 이 글을 포함해 신영웅 비서관의 다른 글 역시 필자의 브런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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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광고를 공부했고, 다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홍보실에 취직했고, 또 다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공무원이 된 꼬이고 꼬인 서울시장 비서실 미디어 비서관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