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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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시험의 연속인 학창 시절에 '커닝'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만큼 흔한 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좀 덜했지만, 입시 부담이 높아지는 중·고등학교 시절이나 심지어 대학에서도 크고 작은 부정행위 시도는 늘 있었습니다.

유형도 다양합니다. 남의 답안지를 무단으로 훔쳐보는 것부터 처음부터 여럿이 짜고 공부 잘 하는 친구의 답안을 공유하기로 하거나, 자기만 아는 곳에 공부한 내용을 깨알같이 적어 놓기도 합니다. 남의 답을 그대로 베꼈다가 탈이 나는 경우도 있고, 좀 더 머리를 굴려 적절히 알아서 다르게 적거나 그냥 자기 풀이에 참고하는 정도로만 쓰기도 하지요.

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바로 이 '커닝'을 소재로 한 스릴러입니다. 방콕의 명문 고등학교로 전학한 린(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은 같은 반의 바로 뒷번호 학생인 그레이스(에이샤 호수완)와 친해집니다.

그런데 연기자를 꿈꾸는 그레이스는 일정 성적 이상을 받지 못하면 연극반 공연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걸릴까 봐 고민입니다. 린은 그레이스가 제일 어려워하는 수학을 따로 가르쳐 주기도 하지만 막상 시험 시간이 되자 그레이스는 전혀 답안을 쓰지 못합니다. 보다 못한 린은 그레이스에게 시험 감독의 눈을 피해 답을 직접 알려 주게 되지요.

그레이스의 부자 남자 친구 팟(티라돈 수파펀핀요)은 이 소식을 듣고 린에게 접근합니다. 자기에게도 답을 알려 주면 과목당 3천 바트(우리 돈으로 약 10만 원)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죠. 팟뿐만 아니라 다른 급우 몇 명도 똑같은 조건을 제시하며 답을 요구합니다. 린은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기로 하고 완벽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합니다.

흥미진진한 '커닝' 스릴러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린은 그레이스에게 지우개에 적힌 시험 답안을 건넨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린은 그레이스에게 지우개에 적힌 시험 답안을 건넨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불법 행위를 모의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서스펜스와 스릴에 집중한, 전형적인 케이퍼물의 공식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블랙 유머, 서스펜스 넘치는 장면들이 돋보입니다. 그런데도 범죄극의 필수인 피와 죽음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순전히 돈으로 좋은 성적을 사려는 금수저의 욕망, 실력은 있어도 돈이 부족한 흙수저의 처지, 기발한 커닝 기법이 맞물리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은 감독 나타우트 폰피리야는 2012년 데뷔작으로 영화 <카운트다운>을 내놓은 신예로, 5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잘 짜인 샷 구성과 감각적인 편집을 통해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주는데, 특히 인물의 심리 상태를 과장하고 영화 속 시간을 늘려서 서스펜스를 창출하는 실력이 발군입니다.

무조건 높은 성적과 좋은 대학만을 원하는 과도한 교육열, 뭐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황금 만능주의, 그리고 그에 따른 극심한 빈부 격차가 동시에 존재하는 태국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포착해낸 것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태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가 경제 성장 과정에서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배드 지니어스>가 중국과 동남아 각국에서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휩쓸었던 데에는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가 친숙하게 느껴진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극 중 린 역할을 맡은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을 비롯한 태국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편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미숙한 구석은 있지만, 자기 이익이 걸리면 어른 이상으로 영악해지는 중심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잘 살려냈습니다. 린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한, 태국의 유명 록 뮤지션 타네 와라카누크로 역시 진솔하고 안정감 있는 연기로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합니다(그는 올해 BIFF 상영작이자, 선댄스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싱가포르 영화 <뽀빠이>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습니다).

부정행위 이면에 도사린 사회의 책임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영화에서 미국 대학 입학 시험으로 설정된 SPIC의 답안을 공유하기 위해 호주로 간 린. 그녀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영화에서 미국 대학 입학 시험으로 설정된 SPIC의 답안을 공유하기 위해 호주로 간 린. 그녀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주)팝엔터테인먼트


어떤 경우든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단 꼼수로 좋은 성적을 받겠다는 계획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반칙 행위를 저지른 학생들만 나무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굳이 이렇게 남을 속여 가며 점수에 연연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오직 시험 점수로 개인의 가치와 능력을 평가하고 미래까지 결정해 버리는 사회 시스템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요 인물들이 그토록 부정행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학벌과 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자식의 진짜 능력에 대해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시험 점수와 좋은 학교 입학 여부에만 관심 있는 부모는 모두 이들의 공범입니다.

부조리한 기성세대의 행태도 이들의 윤리 의식을 흐릿하게 하는 데 한몫합니다. 영화에서 모범생 린이 커닝 사업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학교가 학부모들에게 추가로 운영비를 뜯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불법을 저지르는 학교를 속이고 돈을 버는 행위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젊은 세대나 청소년의 비행을 언론 보도로 접하면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요즘 애들 참 문제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며 남의 일 이야기하듯 하죠. 하지만 그렇게 모른 척, 아무 상관도 없는 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에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니까요.

젊은 세대의 악행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먼저 돌아보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그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힘든 부분이 있다면 곁에서 도와줄 수도 있어야겠지요. 이것이 바로 <배드 지니어스>에서 린의 아버지가 내린 결정이자, 이 영화가 제시하는 현명한 대안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배드 지니어스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에이샤 호수완 타네 와라카누크로 나타우트 폰피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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