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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마지막 전국단위 모의평가인 전국연합학력평가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17.10.17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마지막 전국단위 모의평가인 전국연합학력평가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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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제 손에 꼽을 만큼 코앞으로 다가왔구나. 올해는 수능 한파까지 예상된다니 더 걱정이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마음에 추위 걱정까지 하나 더 늘었구나.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지만, 입시 전쟁이 곧 인생 전쟁인 이 나라에서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난리를 겪어야 하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알 수가 없구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12년간 그렇게 힘든 여정을 견뎌내고 여기까지 온 아들이 정말 대견하다. 쇳조각까지 소화할 그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싶고, 해외 스포츠 중계도 보고 싶고, PC방 가서 인터넷 게임도 하고 싶었을 텐데 그 많은 유혹을 잘 이겨낸 게 고마울 뿐이다.

아빠는 1987년에 대학에 들어가 대학원까지 다녀 나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입시에서 그렇게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는 걸 인제야 알았단다. 부끄럽게도 네가 고3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능은 그냥 시험만 보면 되는 줄 알았다. 대충 어깨너머로 접했던 가군, 나군에 수시와 정시 정도만 알면 충분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구나. 학교마다 시기도 다르고 최저학력 기준이나 수능 반영 등 학생을 모집하는 방법이 그렇게 복잡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관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단다. 고3 수험생을 둔 다른 집처럼 학교별 전형 요강을 들여다보며 함께 고민했어야 했지만, 아빠는 당연히 아들이 알아서 결정할 것으로 믿었던 거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학교와 집을 오가며 입시의 모든 문제를 당연히 알아서 해결해주는 아들이 되기란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까.

'산 넘어 산' 대입 전형, 그저 미안할 뿐이다

가고 싶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네가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그저 가슴이 아프다. 서울에 있는 아빠 친구는 아들과 함께 시간당 50만 원 하는 입시컨설팅을 몇 번이나 받았단다. 그런데 아빠는 밥만 축내고 아들의 진로에는 '나 몰라라'했던 무개념 아빠였지. 뒤늦게나마 지면을 통해서라도 고백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야. 하지만 엄마도 몇 달을 고민해봤지만 특별한 입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보면, 아빠가 처음부터 나서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교사추천 전형, 학교장추천 전형, 농어촌특별전형, 지역인재전형, 학업 우수 전형, 논술 전형, 특기 전형, 실기 전형, 큰사람 전형, 특수교육대상자 전형, 특성화고 졸업자 전형,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 국가보훈대상자 전형, 글로벌인재 전형, 모험·창의 인재 전형, 사회통합 전형, 국방 IT 우수인재 전형,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특별 전형, 고른기회 전형, 만학도 전형, 기회균형선발 전형...

전형방법의 가짓수는 왜 그토록 많은지. 그래도 꽤 알려진 전형들만 떠올렸는데도 이렇게 나열조차 힘들구나.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모르겠구나. 어떤 친구는 내신이 나빠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뒤 수능에만 '올인'한다고 들었다. 모든 전형이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모집 방법 때문이라니, 어른으로서 그저 미안할 뿐이다.

또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어떤 학교는 논술시험에 면접시험에 자기소개서까지 써야 하니 정말 '산 넘어 산'이다. 자기소개서도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본인이 직접 썼다가 탈락한다는 '괴담'까지 나오더구나. 본인이 써야 할 자기소개서를 전문가를 통해 '주작'하고, 또 대학은 꾸며낸 자기소개서를 색출한다고 최첨단 방법까지 쓴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준비 과정만 돌이켜보면 이건 수험생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 같아.

지난달 네가 수시모집에 낼 자소서를 쓰는 데 조언을 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사실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아빠가 일부러 도와주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어. 마음처럼 그게 쉽지가 않더구나. 글자 수 제한에 지정된 내용과 형식까지 갖춰야 한다고 하니 실은 조언해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거야. 너는 자소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전문가나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게 어디야. 직접 쓴 것으로 큰 위안으로 삼았으면 한다.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마지막 전국단위 모의평가인 전국연합학력평가 시작 준비를 하고있다. 2017.10.17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마지막 전국단위 모의평가인 전국연합학력평가 시작 준비를 하고있다.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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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내 아들, 그것이면 충분하단다

그토록 많은 전형에 얼마나 지원할지는 오로지 각자 정하기 나름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서 고생'이라고 한다지만,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긴 정말 힘든 일일 거야. 교육의 대물림을 방지하겠다며 시작한 제도들이 오히려 우리 같은 돈 없는 사람들은 대학에 갈 엄두를 못 내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우리 교육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그래도 중학생인 네 동생이 수능을 볼 때면 지금보다 조금 나아져 있을 것이라고 한번 믿어보자. 정부가 바뀌면서 반드시 균등하고 공평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수능을 통한 무의미한 경쟁으로 창의성과 혁신을 저해하는 세대는 이제 우리 아들 세대에서 끝내기를 바랄 뿐이야.

아들아! 아빠도 50년을 살아오며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겪어보니, 결코 아들에게 완벽한 존재는 될 수 없었어. 결코, 애써 강요하지 않고 욕심내지도 않을게. 결과야 어찌 되었건 네가 최선을 다해서 무슨 일이든 성취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오히려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네 적성과 진로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결코 흙수저나 금수저는 없단다. 그 존재만으로도 모두 하나하나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수능은 인생에서 겪어야 할 수많은 시험 중 하나일 뿐이란다. 이 시험을 통해 금수저로 역전하기 위한 공붓벌레가 아니라 너의 이름 세 글자를 세상에 남기는 선한 영향력의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는 멋진 청년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들아.

시험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보내고, 꼭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결과가 암담하고 어두우면 좀 어떠냐. 인생은 삶의 굴곡에서 더욱 밝게 빛난단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바라는 것처럼 그저 예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맙다. 최선을 다한 내 아들, 꼭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진심으로.

p.s. 아 참, 아빠가 50여 년간 터득한 비법 하나를 빼먹었구나. 혹시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객관식은 주로 ②를 찍고 수학주관식은 '0'이나 '-1'을 쓰거라. 알았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10.25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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