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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신영복의 세계여행)을 처음 접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명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따뜻한 글과 그림 엽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며 그 감동으로 막연하게 세계일주에 대한 꿈도 품게 됐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2017년, 배낭여행자가 되어 그 꿈을 실행에 옮깁니다. 당신이 보낸 첫 번째 엽서에 적혀있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에 무모한 용기를 얻어 여행지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이 여행기는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당신들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기자 말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아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황금빛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이 푼힐전망대 일출의 매력입니다.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아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황금빛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이 푼힐전망대 일출의 매력입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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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3210m의 네팔 푼힐 전망대는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차푸차레 등 히말라야의 고봉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새벽 5시 정도면 우리나라 산장에 해당하는 로지에서 숙박했던 트레커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합니다. 설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푼힐 전망대에서 만나는 일출은 산 위로 떠 오르는 해돋이가 아닙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빛이 서서히 번지면서 어두웠던 봉우리들이 점점 밝아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룹니다.

혹시 당신이 푼힐 전망대 일출을 보러 가게 된다면, 조금 더 서둘러 길을 나서기를 바랍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인 해뜨기 2시간 전, 여명이 칠흑 같은 어둠을 물들이기 전에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년설이 쌓여 있는 고봉의 하얀 부분과 주변의 어둠이 어우러져서 마치 흑백판화와 같은 배경을 만들고, 그 위로 별이 가득 차 있는 광경은 형용할 수 없는 감탄을 자아내게 할 것입니다. 

신비로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만큼 카메라 기능이 안 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어떤 앵글에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없으니, 사진은 기념으로 몇 장만 찍고 내려놓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원을 선명하게 떠올리기 바랍니다. 해뜨기 전에 떨어지는 별 하나는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돋이의 설렘을 안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전, 지금은 지구의 지붕이지만 아득한 옛날 바다였을 히말라야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은 당신에게 신선한 시선을 열어줄 것입니다.

포카라의 페와 호수.  파란 호수와 하얀 설산이 조화를 이룬 포카라는 트레킹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여행자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선사합니다.
 포카라의 페와 호수. 파란 호수와 하얀 설산이 조화를 이룬 포카라는 트레킹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여행자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선사합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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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발원한 물은 강이 되어 인도 대륙을 적시며 흘러갑니다. 그래서일까, 인도 사람들의 수(數) 개념은 대단히 광대합니다. 시간 단위로 겁(劫)을 사용합니다. 1겁은 바위가 옷깃에 스쳐 닳아 없어지는 시간입니다. 정확한 시간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인도의 문화는 그러한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그렇게 생각해야 인도 여행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인도 기차는 연착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서너 시간 연착은 매우 양호한 편에 속하고, 열 대여섯 시간 정도의 연착도 대단한 무용담이 되지 못합니다. 인도에서 만났던 여행자들 중에는 기차 연착으로 중요한 다음 행선지나 귀국 비행기를 놓친 사람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기차를 몇 번 타보니 인도인들이 기차역에 도착하면 왜 자리부터 깔고 눕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체의 동요가 없는 그들의 모습, 그 달관의 경지가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바라나시 기차역의 풍경.  기약 없는 연착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인도기차의 문화였습니다.
 바라나시 기차역의 풍경. 기약 없는 연착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인도기차의 문화였습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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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를 떠나 인도 바라나시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경로는 대단히 험난했습니다. 몇 번의 장거리 버스, 릭샤, 기차 등을 이용하여 거의 24시간이 걸렸습니다. 새벽녘에 도착한 바라나시. 잠결에 맞닥뜨린 바라나시의 번잡함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정신 없이 울려대는 릭샤 경적소리, 거리 가득한 쓰레기 더미와 소똥과 먼지, 도로 한복판을 점령한 소떼와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떼까지. "아!!!" 하는 장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입니다. 언제나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매일 매일이 축제처럼 시끌벅적한 곳입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물에 화장한 재를 뿌리면 윤회의 사슬을 벗고 천국으로 가게 되며, 강물에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시면 모든 죄업이 씻긴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물로 이어져 있는 계단을 뜻하는 '가트'(Ghat) 80여 개가 갠지스강에 쭉 늘어서 있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목욕을 하고, 기도를 하고, 강물을 마시는 사람들. 강물에 빨래를 하고, 양치질을 하는 사람들. 한쪽 가트에서는 화장터의 불길이 피어오르고, 또 다른 가트에서는 명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행위가 같은 강물에서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꿈에 그리던 성지에서의 시간을 만끽하는 순례자들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성스러운 의미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방인의 눈에는 당혹스러운 광경임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生)과 사(死) 가 공존하는 바라나시의 소란스러운 정경은 현대문명과는 분명 다른 문법의 삶이었습니다. 마치 현실 세계와 피안의 세계를 한 번에 담아내는 강렬한 리얼 다큐멘터리와도 같았습니다. 왜 바라나시가 '인도의 축소판', '가장 인도다운 도시'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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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화장터를 찾았습니다. 화장에 쓰일 장작이 쌓여 있고, 슬픔을 최대한 억제한 유족들이 힌두교 절차에 따라 장례를 진행하고, 친척으로 보이는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목청 높여 의식에 대해 조언을 합니다. 신비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평범한 별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소와 개를 제지하지 않고 두는 정도가 특이하다면 특이한 풍경이었습니다. 천에 싸인 시신을 강물에 몇 번 적신 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입니다. 붉은 불길 사이로 사람의 윤곽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말 없는 침묵 속으로 빠져듭니다.

화장에 쓰이는 나무의 종류와 양에 따라 장작의 가격이 달라집니다. 적게는 우리 돈 4만 원 정도에서부터 많게는 수십만 원에 이르기까지. 유난히 왜소한 장작더미에 눈길이 갔습니다. 왜소한 장작더미는 망자와 그 유족의 주머니 사정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했습니다. 제대로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더 늦게 불을 지핀 그 옆의 망자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빠르게 천상을 향해 떠나가는데, 그 장작더미는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저러다 제대로 산화하지 못한 채 불길이 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까부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개가 더욱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런 걱정이 부질없음을 느꼈습니다. 강가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전기화장터가 있습니다. 그곳을 놔두고 왜소한 장작더미지만 굳이 이 성스러운 의식을 고집했을 유족의 정성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살아 생전 꿈꾸어 왔던 강가에서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망자의 마음 또한 가볍고 흡족할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조금 늦은들 상관없을 것입니다. 인도에서 많이 쓰는 표현대로 'No problem' 입니다.

나룻배를 타고 멀리서 찍은 화장터의 풍경.  멀리서 찍는 사진촬영은 허용이 되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멀리서 찍은 화장터의 풍경. 멀리서 찍는 사진촬영은 허용이 되었습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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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주관적으로 기억되게 마련입니다. 내가 만났던 인도 여행자들 역시 '인도를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라는 예찬에서부터,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간에 인도는 그 어떤 곳과는 다른,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지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나 역시 인도를 압축해서 말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대신 당신이 바라나시를 방문하고 남겼던 조심스러운 소회와 전망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나는 갠지스강이 안겨 주는 달관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모든 실재(實在)를 비실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생각하면 그러한 달관에 비록 체념의 흔적이 없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귀중한 깨달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빨리 도달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귀중한 깨달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갠지스강은 척박한 인도 땅에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번영과 풍요의 대륙을 가로질러 흘러가야 할 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이 아니라 백 년, 천 년 이승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가슴 한복판을 가로질러 흘러가야 할 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갠지스강을 새로운 세기의 한복판에 만들어 내는 일이 우리 시대의 과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뜨기 전 갠지스 강의 고요한 정경
 해뜨기 전 갠지스 강의 고요한 정경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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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20년 전 갠지스강에서 만났던 양심적인 뱃사공 람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언젠가 내가 바라나시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를 찾아 손목시계를 선물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뱃사공이 있는 강가에서 람지를 찾기란 난망한 일이었습니다. 대신 나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뱃사공 철수를 만나 그의 배를 탔습니다.

요즘 바라나시를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그는 여기에서 태어나 열두 살 무렵부터 노를 저었고 25년째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십 수년 전 한국에서 온 한 여행가가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불리는 '철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이후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을 상대하게 되었고 지금은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딱 한 번 방문해봤을 뿐이고 한국어는 여기서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설명에서 어색한 표현도 많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갠지스강에 대한 애정,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깃든 그의 진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짜이 한잔을 곁들이며 인도인에게 한국어로 듣는 갠지스강의 이야기는 바라나시를 더욱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뱃사공 철수와 함께 한 갠지스강의 일출과 일몰은, 점에서 시작한 아주 작은 '만남'이 선으로 연결되고, 선이 면으로 확장되는 '인연'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갠지스강은 이승을 떠나 천상을 열망하는 망자도, 현실에서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자도, 생경한 경험을 위해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까지도...  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을 아낌없이 품어주고 있었습니다. 이 포용이야말로 갠지스강을 성(聖)스럽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꽃이 담긴 작은 접시에 촛불을 밝힌 '디아'는 희망의 점이 되어, 또 다른 만남과 더 깊은 인연을 향해 무한의 시공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갠지스 강은 작은 소망을 담은 디아를 품고 유유히 흘러갑니다.
 갠지스 강은 작은 소망을 담은 디아를 품고 유유히 흘러갑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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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6년 12월부터 시작했던 6대륙 38개국 세계일주 여행을 이제 마칩니다.



태그:#갠지스 강, #히말라야, #바라나시, #인도,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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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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