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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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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자꾸 받는 질문'은 그 나름대로 변천사가 있었다.

"왜 화장 안 했어?"(feat. "웬일로 화장을 다 했어?")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남편 밥은 챙겨주고 나왔어?"
"여자가 그렇게 드세서 어쩌려고 그래?"
"남자들은 그런 여자 싫어하는 거 몰라?"

가부장제의 역사와 함께하며 자랑스럽게 여성혐오를 전시하는 이 문장들은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끝판왕'을 만나고야 말았다. 혐오를 담은 무수한 질문들이 하나로 뭉쳐져 더 강력해진 동시에 순식간에 듣는 이의 기운을 모두 앗아갈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그 질문 말이다.

이제는 현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너 메갈이야?"라는 질문만큼 나를, 페미니스트를 납작하게 규정하는 말이 있을까. 내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엄청난 질문을 받을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니 오히려 그 명성만큼이나 노련하게 끝판왕 질문은 매우 일상적인 상황에서 내 앞에 나타났다. 2년 전 추운 겨울, 오랜 친구와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카페로 이동했다. 가족 얘기, 애인 얘기, 학교 얘기, 회사 얘기... 급습이었다. 친구가 평소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저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의 대화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메갈리아'와 관련된 그 어떤 키워드도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아마도 친구는 당시 논쟁의 중심에 있던 한 사회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보고 '아, 얘 메갈인가?'란 짐작에 당도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내용은 전혀 '여성혐오' 혹은 '메갈리아'와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오히려 친구는 그러한 내용과 관련 없(어 보이)는 화제에 '뜬금없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들이댄 나를 보고 그 질문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나를 향해 친구는 2차 공격을 감행했다.

"그럼 너도 페미니스트인지 뭔지 그거야?"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순식간에 '페미니스트'도 아닌, '페미니스트인지 뭔지 그것'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해당 질문의 끝에는 성격을 알 수 없는 작은 웃음소리도 딸려왔다. 당시에는 그 웃음의 의미가 나에 대한 조롱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정당화했지만, 그것은 페미니즘을 비웃는 것이었고 곧 나를 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바닥이 마구 울렁거렸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 아니 협박을 당한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 싫어하는 거 몰라?"는 질문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남자들이 싫어할 거야.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만둬!"라는 협박이다. "너 메갈이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사회는 나에게 어마어마한 낙인을 찍는다. 다른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메갈'이라는 두 글자에는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모든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 학교에서 '메갈'로 '찍히면' 나대는 여자애가 되고 회사에서는 불편한 여직원이 된다. 여성혐오 혹은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남자를 혐오한대'라고 수군대며 나를 무서운 혹은 수상한 여자로 생각하여 기피할 것이고 평소 여성혐오를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메갈'로 끝나지 않고 뒤에 '년'을 붙여줄 것이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해 온 수많은 여성혐오적 질문들을 '질문'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너무나도 관대한 제스처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다. 메갈처럼, 페미니스트처럼, 너처럼 굴면 남성 중심의 사회에 절대 발붙일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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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가장한 '일상적 협박'

다시 2년 전 추운 겨울로 돌아가 보자.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친구의 질문에 당당히 대답하지 못했을까? 친구는 왜 웃었을까? 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인지 뭔지 그거'라고 말했을까? 아니, 대체 걔는 왜 페미니스트가 아닌 거야?

당시의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귀중한 질문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굳이 싫다는 게 뻔히 보이는 친구를 페미니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으며 '계몽된 나'와 '그렇지 못한 친구'를 구분하려 했다. 나는 애써 무시하려 했다. 나는 예전부터 페미니스트였으며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늘 실천하고 살았다고. 그날 밤은 스스로를 속이며 애써 잠을 청했다.

그날 이후로 오히려 남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이때다 싶어 그를 공격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상상을 가끔 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누구에게나, 언제나 가능한 일일까? 물론 지금의 나는 여성혐오에 맞서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논리 및 지식, 비꼬기 스킬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경험치가 많이 증가한 상태이며 여성인권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저 한심한 공격에 언제나 허를 찌르는 답변으로 응수할 재간은 없다.

적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 법이다. '너 메갈이야?'를 위시한 낙인찍기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어질 수도 있고, 한없이 우울해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 발생할 수도 있다. 내가 찾은 답은, 맞서지 못한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이 모든 문장은 질문을 가장한 협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협박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협박의 주체가 아무리 '권력 없는' 남성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이 세계에서 '남성'은 곧 권력이며, 그로부터 나온 악의로 가득 찬 협박은 절대 질문이 될 수 없다.

친구가 던진 질문이 협박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친구가 나와 마찬가지로 여성, 즉 가부장제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친구가 2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나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처럼 애써 무시하며 입을 닫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친구와 연대하고 싶다. 친구 사이의 우정과는 또 다른 차원에 있는 여성으로서의 연대 말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에게 생경한 경험이 될 것이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다 순식간에 둘 사이가 얼어붙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페미니즘은 '멋진 신세계'이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과 후, 우리는 변함없이 여성혐오를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출근길 운전 중 '집에서 밥이나 하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며 뉴스에서는 183명이나 되는 여성을 불법촬영한 범죄자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본인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완벽한' 피해자가 되어 대중의 연민과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완전무결한 도덕성을 입증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아무런 반성없이 여전히, 더욱 거세게 혐오를 쏟아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우리는 모호한 형태로 마음속에 불편하게 자리했던 분노의 정체와 그것이 향해야 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학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페미니즘의 가장 유명한 구호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미 우리 사회에 정치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을까 의문이다. 그만큼 각각의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구조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얽혀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들은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동시에 이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더욱 위협적이고 기괴한 세상을 맞닥뜨린다.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나타날 때까지 이 기묘한 체험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 CCL(자발적 공유 표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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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알려준 분노의 방향

2년 전 겨울, 집에 가는 길이 그토록 길었던 이유는 친구가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 친구에게 페미니즘을 알리려는 노력도 없이, 그렇다고 다짜고짜 화를 낸 것도 아닌 나의 태도는 저열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친구와 나를 구분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그동안 페미니즘을 엘리트주의적으로 받아들이고 향유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하룻밤이었지만, 제대로 눈 감지 못했던 그날 밤을 스스로에 대한 벌이라 생각했다.

요즘 나는 한 페미니즘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가 물었다. 꼭 단체에 속해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대답할 말을 찾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조금 느릴지라도 나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의 경계를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 나를 보고 페미니즘에 뛰어들어 새로운 파동을 만드는 이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바깥의 세계 혹은 공적 영역에서의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것도 충분히 의의있는 일이다.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원을 합쳐 더 큰 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롭고 강력한 힘이 되어 그동안 견고하게 유지됐던 여성혐오의 역사에 조금씩 금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는 페미니즘에 부채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변화를, 연대를 외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개인 차원에서 실천하는 페미니즘을 무시하는 것이냐고 비아냥댈지도 모르지만, 이토록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이제까지 없었다."

세상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이들과 페미니스트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성차별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누어져 있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 처음에는 쉬웠다. 기존의 세계와 나를 철저히 분리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선언은 성차별주의자와 이 지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주칠 때마다 고통스러운 사실이다. 결국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기분은 오래 가지 못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의 현실이라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니까.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들은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동시에 이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더욱 위협적이고 기괴한 세상을 맞닥뜨린다.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나타날 때까지 이 기묘한 체험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세계 사이에 놓인 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다. 다시 '안전한' 세계로 돌아오라고 협박하는 그들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 내가 집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위안을 얻을 수 없고, 애써 웃어넘겼던 것들 앞에서 그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떠난다. 어젯밤에도 번뇌에 빠져 잠을 설친 모든 페미니스트에게 이 글이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창비·오마이뉴스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공모 기사입니다. (공모 관련 링크 : https://goo.gl/9xo4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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