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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보장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청년들을 좀 더 '자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입니다."

지난 10월 26일 목요일,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열린 <국제콘퍼런스 2017 청년보장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니콜라 파르바크 ORSEU 연구소 연구책임자는 청년보장의 정의를 이같이 밝혔다. 그의 말에서 '자율성'이란 적어도 세 가지를 포괄하는 의미다.

'삶과 노동의 세계에 관련된 개인적 자유',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재정적 자유'가 그것이다. 삶과 노동의 세계에 관련된 개인적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계획을 수립할 때 더 이상 걸림돌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유, 무엇인가에 몰두할 자유를 포함한다. 재정적 자유는 '충분한 재정적 자원이 있음'과 같은 뜻이다.

'국제콘퍼런스 2017 청년보장 포럼'에서 프랑스 청년보장에 대해 설명 중인 니콜라 파르바크(ORSEU 연구소 연구책임자)
 '국제콘퍼런스 2017 청년보장 포럼'에서 프랑스 청년보장에 대해 설명 중인 니콜라 파르바크(ORSEU 연구소 연구책임자)
ⓒ 서울시 청년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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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자유' 중 어떤 것도 없었던 청년들

"학원을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집중하고 싶은데, 어쩌나 싶었죠." - 2017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 김가영씨

"올해 하반기에는 스스로 결과물을 내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연기에만 집중을 해야 했고요" - 2017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 김신영씨

김가영씨는 게임회사 취업을 준비하며, 김신영씨는 연기활동을 지속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왔다. 취업준비와 연기공부를 위해서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회 진입을 위한 과정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보니 취업 준비나 연기활동을 할 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어려웠다. 김가영씨는 평일 내내 하루 두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고, 종종 단기 아르바이트와 주말 아르바이트도 했다. 장기적인 취업 계획을 세우고 구직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청년수당에 참여하고부터는 게임 작업 시간이 두 시간에서 여덟 시간으로 늘어났어요." - 2017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 모성훈씨

모성훈씨 역시 김가영씨와 마찬가지로 게임회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취직을 위해, 친구와 게임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청년수당에 참여하기 전, 모성훈씨는 게임 개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주 5일 동안 하루 10시간씩 인쇄소에서 제본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종일 서서 일을 하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피로가 쌓여 도저히 게임 작업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청년수당 참여 이전에 김가영씨와 김신영씨, 모성훈씨는 니콜라 파르바크 연구책임자가 언급한 삶과 노동의 세계에 관련된 개인적 자유,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재정적 자유 가운데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이는 비단 세 명의 참여자만이 겪고 있는 현실이 아니다. 우리 사회 많은 청년들이 유사하게 나쁜 현실에 처해 있다. 청년들은 더 이상 '자율적'이기 어렵다. 청년수당, 그리고 청년보장이 필요한 이유다.

"변화에 발맞추어 젊은이들을 가장 잘 교육시키는 것은 언제나 프랑스의 핵심적인 이슈입니다. (중략) 미씨옹 로칼은, 젊은이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강화해
사회에 직업적으로 수월하게 진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의 의무라는 뜻에서 제정됐습니다." - 세르쥬 크로이쉬빌리 미씨옹 로칼 전국조합 대표

'국제콘퍼런스 2017 청년보장 포럼'
 '국제콘퍼런스 2017 청년보장 포럼'
ⓒ 서울시 청년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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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한국의 '청년보장'

이날 청년보장 포럼에는 세르쥬 크로이쉬빌리 프랑스 미씨옹 로칼 전국조합(UNML) 대표와 나딘 퓌뷔스크 프랑스 툴루즈 미씨옹 로칼(MLT) 책임자도 참석했다. 미씨옹 로칼은 청년이 직업을 구하고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공공정책이다.

1901년에 제정된 단체법에 의해 규정되어 프랑스 전 지역에 442개의 미씨옹 로칼과 6563개의 안내소가 설립되었으므로 국가 차원의 네트워크이기는 하지만, 국가와의 계약이라는 틀 내에서 지역 공동체가 발의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 탈(脫)중앙집중적 성격을 지닌다. 청년에게 수당을 지급할 뿐 아니라 청년과 동반 활동도 병행한다. 정책이 지역 단위에서 수당과 프로그램을 혼합한 형태로 실행되는 것이 서울시 청년수당과의 유사점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측면에서 지원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하는 거잖아요." - 2017 청년수당 참여자 김신영씨 (<"대인관계 회복했어요." 청년수당이 바꾼 세 청년의 삶> 2017년 9월 29일자 보도 중)

서울시 청년수당은 서울시의회가 청년 당사자의 요구를 수용해 2015년 1월 제정한 청년기본조례에 근거한다.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들은 6개월 동안 매달 50만 원을 서울시로부터 보장받는다. 참여자가 청년수당을 신청할 때 제출한 구직 및 사회참여 활동계획서를 이행하지 않거나, 서울시와 체결한 활동약정을 위반할 경우, 수당 참여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참여자들은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시행하는 취업 지원, 사회생활 지원, 일상 지원, 정서·진로모색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직무학습 워크숍이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직무를 체험하는 방식이었거든요." - 김가영씨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의 취업 지원 '내일탐구' 프로그램은 구직을 준비하는 청년수당 참여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참여자들이 각각 자신의 필요에 맞는 지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취업 진로 및 직무를 확정한 이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확정하지 못한 이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모두 실시되었다.

김가영씨는 "직무를 체험하는 방식의 직무학습 워크숍이 굉장히 좋았다"고 밝혔다. 직무학습 프로그램은 취업 진로와 직무를 확정하지 못한 참여자들이 기업의 직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취업 진로와 직무를 확정한 참여자들은 '현직자 멘토링' '자기 정리 과정'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자신이 원하는 직무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얻거나, 자기소개서 또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면접에 대비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청년들의 일상을 지원하기 위해 '어슬렁반상회'라는 지역별 소모임도 진행한다. 김신영씨는 동작구 어슬렁반상회에 참여해 글을 쓰고 다른 참여자들과 나누어 읽는다. 극작품을 직접 쓰기 위해, 글 쓰는 훈련을 해보고 싶어 이 모임에 참여했다고 김신영씨는 밝혔다.

'국제콘퍼런스 2017 청년보장 포럼'에서 프랑스 툴루즈 미씨옹 로칼 운영 사레에 대해 발제 중인 난딘 퓌비스크(프랑스 툴루즈 미씨옹로칼 책임자)
 '국제콘퍼런스 2017 청년보장 포럼'에서 프랑스 툴루즈 미씨옹 로칼 운영 사레에 대해 발제 중인 난딘 퓌비스크(프랑스 툴루즈 미씨옹로칼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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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청년보장' 정책에 협력하는 프랑스

청년의 필요를 구체적·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계와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 지원의 영역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청년보장 및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체들의 절대 수가 적다는 어려움이 있다.

나딘 퓌비스크 MLT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MLT의 경우, 여러 분야의 직업 활동을 공유해줄 수 있는 선배들을 초대해 참여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기업들과 협력해 기업 견학을 계획하기도 한다. 또한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용주들의 모임과 협력해 고등학위가 없는 청년들이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주요 당사자인 기업이 청년보장의 협력체계에 직접 들어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기업이 청년보장의 협력주체로 역할을 하는 것은, 프랑스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명시한 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뿐 아니라 사회보험, 우체국, 시청 등 공공기관도 이 협력체계에 함께하고 있다.

수당과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형태의 청년보장은 니트(Neither in Employment, in Education or Training, 학업 혹은 직업 훈련을 받지 않고 미취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청년들이 사회 진입에의 의지를 촉발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사회 진입에의 의지가 없는 청년들을 왜 국가나 사회가 지원함으로써 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세르쥬 크로이쉬빌리 UNML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기업에서 청년들을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국제컨퍼런스 2017 청년보장포럼'에서 프랑스 청년보장의 작동 원리에 대해 발제중인 세르쥬 크로이쉬빌리 (프랑스 미씨옹 로칼 전국조합 대표)
 '국제컨퍼런스 2017 청년보장포럼'에서 프랑스 청년보장의 작동 원리에 대해 발제중인 세르쥬 크로이쉬빌리 (프랑스 미씨옹 로칼 전국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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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무엇이든 최대한 아끼게 되죠. 사람도 최대한 안 만나려 하고. 그러다 보면 동굴에 갇힌다고 할까요? 사람이 그렇게 돼요." - 2017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 모성훈씨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는 권리(=자유)들을 누리기 힘들어집니다. 재정적 자율성이 없기 때문이죠." - 세르쥬 크로이쉬빌리 미씨옹 로칼 전국조합 대표

이날 포럼의 사회를 맡았던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은 "시민성이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리의 집합이며, 법적으로 보장을 받았는가, 받지 못했는가의 여부로서만 판단한다"고 밝혔다. 당사자가 실제로 느끼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청년보장은 청년의 시민성을 보장하는 첫걸음이다. 청년이 동료시민으로서 '자율적으로' 사회에 진입하고 자립하기 위해 청년보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미래가 아니라 현재가 되어야 한다.


태그:#프랑스 청년보장, #청년수당,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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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Seoul Youth Guarantee Center)는 서울 청년들의 사회 진입 과정을 지원하고, 지역사회와 각 분야의 다양한 자원연계를 통해 '서울형 청년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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