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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월 4일 오전 국회 본회의 폐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월 4일 오전 국회 본회의 폐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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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48조 국회는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선출한다.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 행정부의 대통령, 사법부의 대법원장과 함께 국가 삼부요인 중 한 명이다. 관행적 의전서열로는 대통령에 이어 2위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직무는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는 것('국회법' 제10조) 정도뿐이다.

국회의원들은 모두 각자 국민의 대표자인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간 지휘·감독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국회부의장 또한 다른 회의체와는 달리 의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국회의장에게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국회법' 제12조). 이렇듯 국회의장은 형식상으로는 국가 의전서열 2위의 삼부요인으로 막강한 고위권력자지만 실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많지 않다.

국회의장의 임기는 2년이다. 국회의원의 임기가 4년이기 때문에 전반기와 후반기 두 명의 국회의장이 배출된다. 보궐로 선출되어도 임기는 전임자의 잔임기간으로 한정된다('국회법' 제9조). 국회의장에서 퇴임하면 대부분 정계에서 은퇴하고 소속 정당의 고문이나 대학교수 등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한다.

경력과 연륜이 있는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을 최고의 시나리오로 생각하고는 한다. 국회의원들 역시 응당 경력과 연륜이 높은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때문에 대통령과 대법원장에 비해 국회의장의 나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인 정세균도 1950년 생으로 대통령(1953년)과 대법원장(1959년)보다 나이가 많다.

명예직에 가깝기 때문에 은퇴를 고려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의장은 매력적인 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정당의 입장에서는 특별한 실권도 없는 국회의장 자리가 크게 탐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매 번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시점이 오면 각 정당들은 국회의장을 자당에서 배출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여당의 의석수가 야당보다 적은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과반수의석 확보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때문에 제3당인 국민의당의 선택에 따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중 승자가 갈리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국민의당이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

국회의장은 선출방식은 약간 독특하다. 출석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되는 일반적인 의결방식과 달리 출석의원의 수와 상관없이 재적의원의 과반이 찬성하여야 선출된다('국회법' 제15조). 국회 전체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과반의석의 확보에 실패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모두 자당 소속 국회의장을 배출하기 위해 국민의당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치열한 물밑협상을 통해 국민의당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의 정세균 의원이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국회의장보다는 직권상정에 관심있는 정당들

지난 2011년 11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정의화 부의장이 한미FTA 비준안 통과를 선언하자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에워싼 채 항의하며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1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정의화 부의장이 한미FTA 비준안 통과를 선언하자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에워싼 채 항의하며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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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들이 국회의장의 선출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국회의장의 부차적 권한이지만 현실에서는 막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직권상정권에 있다. 국회에서는 종종 법안이나 예산안, 인명동의안 등의 처리를 놓고 정당 간 치열한 대립이 발생하고는 한다. 이러한 대립이 지나쳐 국회가 운영되지 못할 지경이 되면 국회의장이 해당 안건을 직권으로 상정해 난맥을 풀고는 한다.

하지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정쟁(政爭)으로 꽉 막힌 국회를 뚫어주는 기능을 할 수도 있지만 날치기 법안 통과와 같이 다수당의 횡포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여야 간 의견이 극한으로 대립되던 중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후 여당의 밀어붙이기 표결이 이루어지면서 큰 혼란을 불러온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안과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미FTA 국회 비준안은 의원들 간 폭력사태로까지 비화되기까지 했다.

다수당의 날치기 통과 등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문제되자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도입을 추진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을 공약으로 내세워 152석으로 과반을 넘는 의석을 얻었다. 이어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2일 통과되고 18일 후인 30일 시행되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각 교섭단체대표의원 간 합의가 된 경우로만 한정되었다('국회법' 제85조). 사실상 교섭단체 간 합의 없이는 직권상정이 불가능해졌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외에도 안건조정제, 안건신속처리제 그리고 필리버스터(합의적 의사진행 방해)가 포함되었다.

직권상정이 불러온 국회의 마비

그런데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다시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동시에 국회선진화 법으로 함께 도입되었던 필리버스터제가 발동되었다. 2016년 정부와 여당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수정안(테러방지법)'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테러방지법은 국가정보원에 정보수집 및 추적권을 부여하고 테러인물을 감시·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었다. 야당은 즉각 국정원의 권한이 과도하게 커져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테러방지법을 거부하고 나섰다.

국회는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여당과 야당의 대립으로 마비되었다.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야당으로부터 테러방지법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자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정의화는 새누리당 출신이었음에도 새누리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과의 대립양상까지 보인 끝에 결국 테러방지법은 직권상정되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그리고 국제테러조직인 IS의 활동을 근거로 당시를 국가비상사태라 규정했다. 국가비상사태이기 때문에 국회선진화법 상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로 대응했고 필리버스터는 38명의 의원들에 의해 무려 192시간 27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끝내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국가비상사태 판단의 근거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상시적 비상사태에 빠져야 한다. IS의 테러활동은 중동의 지도를 바꿔놓을 정도로 큰 혼란과 인적·물적 피해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IS에 의한 테러가 발생한 바는 없다. 게다가 국제테러단체의 활동 역시 언제나 존재해왔다. IS의 테러활동 역시 국가비상사태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판단에 따른다면 대한민국은 언제나 국가비상사태 중이어야 하고 국회의장은 언제든지 직권상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삼부요인이다. 국회의장은 갈등이 발생하면 중재하고 화해를 유도해 국회를 안정화 시킬 의무가 있다. 때문에 자칫 더욱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권상정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2017년 2월 정세균 국회의장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특검법 연장안에 대한 민주당 등 야당의 직권상정 요청을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며 거절했다.

당시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전국이 발칵 뒤집혔던 시점으로 직권상정의 명분은 오히려 테러방지법 때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과 정세균 국회의장의 특검연장안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회를 대표하는 자로서 국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에 대해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당들이 자당 출신 국회의장을 배출하고자 경쟁하는 것을 오롯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한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야간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려 하지는 않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만 바라보는 것을 보면 국회의장 배출에 열을 올리는 정당들의 행태가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여야 정쟁의 수단으로 타락시키는 안타까운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헌법 쉽게 읽기'가 단행본으로 출판 되었습니다.(헌법 쉽게 읽기 바로가기)
본 기사는 TheL에도 게시되었습니다.



태그:#국회의장, #직권상정, #테러방지법, #정세균, #정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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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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