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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월이다.
 벌써 11월이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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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넘기니 벌써 11월이다. 올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 계획을 세울 때가 됐다. 내년 계획에 앞서 올해를 잘 보냈는지 점검도 시작해야 한다.

얼마 전 청와대가 공무원 성과평가 지표에 대해 발표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다. 다양한 국정과제에 대한 성과평가 기준이 발표됐지만 정작 사람들은 '최대 1862만 원'에 주목했다.

청와대 직원(비서관·행정관)들의 정시퇴근 이행률과 연차 사용률에 따라 근무평가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은 청와대 비서관(부처 1급 해당)은 최대 1862만 원의 상여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사 때문이다. 이번 정책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쉬면서 일하자'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OECD 국가 중 연간 근로시간이 두 번째로 긴 나라, 그러나 연차 소진율 최하위 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볼 때 정부의 행보는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하다. 

청와대 시도는 '그뤠잇', 하지만 현실은...

'정시퇴근' '연차소진'의 의지를 보여준 청와대의 행보.
 '정시퇴근' '연차소진'의 의지를 보여준 청와대의 행보.
ⓒ <중앙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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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곱씹어보면 환영만 할 일인가 싶다. 정책을 시행하는 의도는 옳다. 정부도 청와대가 먼저 실행하니까 산하기관·공공기관에서도 이런 정책을 도입하면서 정시퇴근하는 문화나 연차를 모두 소진하는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그보다 자영업자가 더 많은 한국의 현실에서 정시퇴근이나 연차 소진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민간기업에서는 언감생심이다.

특히 1800만 원이란 돈은 보통 사람에게 1년 치 연봉에 달하는 금액이다.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일손이 부족해서, 사업장을 닫을 수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게 연차고 정시퇴근이다. 정부는 이런 걸 정책적으로 사용하라고 권장하고, 누군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1800만 원이 넘는 상여금을 받는다. 동시에 이런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상실감만 잔뜩 얻게 된다. 이래서 매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공시족' 숫자가 늘어나기만 하는 것 아닐까.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보면 결과물보다는 숫자부터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무형의 제안보다는 구체적인 숫자가 사람들에게도 쉽게 이해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이전 정부와는 다른 행보,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왔던 것에서 벗어나 '결과물이 있는' 숫자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것도 스토리가 있는 숫자 말이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면, 이런 수치가 나온다'는 얘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시행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연휴의 가운데를 임시공휴일로 만들었더니 얼마큼의 내수가 진작되고, 소비가 발생했는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수요일마다 정시퇴근 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정시퇴근 했더니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의 스토리를 포함해 정시퇴근한 장관의 수, 연차를 사용한 장관의 수를 알려주는 게 먼저 아닐까.

스토리는 숫자보다 중요하다. 정책보다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문화 조성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야 정부 소식을 접하는 대중은 정책에 신뢰를 더하게 되고, 그 정책이 민간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청와대 직원이 이렇게 바뀌었어요'를 보고 싶다

지난 10월 10일 열린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
 지난 10월 10일 열린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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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휴가 아니셨어요?"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12월만 되면 하는 이런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런 인사를 받는 이는 공교롭게도 휴가를 낸 사람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회사 인사부는 '1년에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연차 중 반드시 10개 이상을 사용하라'는 규정을 뒀다. 때문에 회사 인사시스템에는 휴가를 등록해놓고, 일이 산적해 있어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회사는 사용하지 않은 연차에 대해 수당을 줘야 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연차 사용을 권장했다. 이런 규정이 생기고 나니, 인사부 눈치를 보느라 사용하지도 못하는 연차를 등록해놓고 출근하는 일은 더 많아졌다.

연차수당을 주지도 않거나, 샌드위치 데이나 임시공휴일에 개인 연차를 강제로 쓰게 하는 회사에 비하면 난 정말 좋은 환경에 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에 배부른 소리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만큼 장밋빛이 아니다. '1800만 원대 상여금'만 강조되면 할 일을 집으로 싸 들고 가 일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OECD 국가 중 연간 근로시간이 두 번째로 긴 나라, 연차 소진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타이틀은 '과도하게 일하지 않고, 제대로 쉬었더니 무엇이 좋아졌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극복 가능하다. 정시퇴근과 연차 사용이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숫자로 증명해야만 하는 정책만으로는 실제 일하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근로시간 감소나 연차 소진을 달성할 수 없다.

긴 연휴 사상 최다의 인천공항 이용객 수를 언급하는 것보다, 나는 사용하지도 못할 연차를 두고 공무원은 상여금을 받는다는 것보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수요일에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식사하고, 연차를 이용해 가사를 도왔다는 이야기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워킹맘육아, #연차,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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