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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2-가 111쪽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교과서에 나온 입음꼴 표현
▲ 초등 1-2-가 111쪽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교과서에 나온 입음꼴 표현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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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어 독해 문제로 시작해 본다. 이를테면 어떤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치자. 우리 말로 어떻게 뒤치겠는가. 

The apple tree was broken by wind.

모르긴 해도 '사과나무가 바람에 의해 부러졌다'고 뒤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by+행위자'만 나오면 판박이로 '~에 의해서'로 독해했다. 우리 말다우려면 '사과나무가 바람에 부러졌다'고 해야 한다.

본래 우리 말에서는 웬만해선 입음꼴을 쓰지 않는다. 우인혜(우리 말 피동 연구, 1997)는 개화기에는 능동 표현을 피동 표현보다 약 열 배 정도로 더 자주 썼는데, 요새 들어 능동 표현은 "피동의 약 2 내지 3배 정도만을 차지"할 만큼 줄어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임자말 없는 입음꼴 표현이 크게 늘어난 데는 일본말과 영어를 고지식하게 독해한 번역투 영향이 무엇보다 크다. 거기에  부당한 정치 권력이 저지른 온갖 공작을 눈 감고 눈치를 보아온 신문과 방송들이 입음꼴 표현을 자주 써서 퍼트린 탓도 있다. 어쩌면 이 대목이 솔직한 우리 민낯일지도 모른다.

임자말이 뭔가. 누가 어떤 일을 했다고 할 때 '누가'를 밝히는 말이다. 그런데 입음꼴로 써놓으면 나 같은 어리보기는 '누가' 한 일인지가 몰라볼 때가 허다하다. 거꾸로 누구라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들려서 나만 다르게 생각하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한다.

우리 말에서는 임자말 자리에는 대개 사람이 왔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다르다. 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무생물도 얼마든지 임자말로 삼는다. 또 일본말에서 '다레루される'라는 표현을 '한다' 꼴로 뒤치지 못하고 '되다', '지다', 되어지다' 꼴로 써온 탓도 있다. 이러한 글투가 그대로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스몄다.

△ 글자는 자음자와 모음자로 이루어져요.(1-1-가, 96쪽)
  → 글자는 자음자와 모음자로 만들어요.
  → 자음자와 모음자가 모여 글자를 이루어요.
  → 자음자와 모음자를 모아 글자를 만들어요.
△ 글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점 말하기(1-2-가, 11, 16쪽)
  → 글을 읽고새로 안 내용 말하기
△ 수희가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1-2-나, 193쪽)
  → 수희는 무엇을 알았나요?
△ 새롭게 알게 된 점은 무엇무엇인가요?(1-2-나, 220쪽)
  → 무엇을 새롭게 알았나요?
△ 그러자 막내딸은 콩 한 알로 송아지를 사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1-2-가, 111쪽)
→ 그러자 막내딸은 콩 한 알로 송아지 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 그러자 막내딸은 콩 한 알로 어떻게 송아지를 샀는지를 들려주었어요.
△ 그리고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어요.(1-2-나, 269쪽)
→ 한바탕 잔치를 벌였어요.

이게 우리 아이들을 말과 글의 세계로 이끄는 교과서 문장이다. 그렇다고  입음꼴을 아주 쓰지 말자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입음꼴로 써야 더 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우리도 스스로 움직일 힘이 있다고 여길 때는 입음꼴로 말했다. 날이 풀리다, 길에 눈이 덮이다, 바람에 문이 닫히다, 태풍으로 해를 입다, 밥이 많이 먹히다처럼 말이다.

미국 교과서에는 미국다운 문화가 담기고 프랑스 교과서에는 프랑스다운 빛깔이 배이고 일본 교과서에는 일본다운 정서를 담긴다. 우리 교과서에는 마땅히 우리 말과 글, 삶, 정서들이 담겨야 한다. 그래서 말인데, 입만 열면 '애국'을 말하는 사람 가운데 한자를 초등학교 교과서에 집어넣자고 우기고 영어 교육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람은 많은데, 왜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가르치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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