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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고래' 하면 동해나 울산, 장생포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홍어로 유명한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있습니다. 흑산도와 고래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을까요? 왜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생긴 것일까요? 대체 흑산도에선 고래와 관련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연재는 흑산도와 고래의 연관성을 좇는 '해양문화 탐사기'입니다. -기자 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던 순 한글신문 <권업신문> 1914년 8월 16일 자는 "흑산도에서 유리 만드는 흙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던 순 한글신문 <권업신문> 1914년 8월 16일 자는 "흑산도에서 유리 만드는 흙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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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근해에서 살던 큰 고래들을 포획하기 위해 흑산도에 포경근거지를 설치했던 일제. 일제가 흑산바다에서 수탈해간 것은 고래만이 아니었다.

1914년 8월 1일자 <매일신보>에 '조선의 일대유리(一大遺利), 흑산도의 규사 발견, 초자제조계(硝子製造界)의 대복음(大福音)'이라는 기사가 뜬다. 흑산도에서 규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조선에게 크게 유리한 일이며 초자 즉 유리를 만드는 제조업계에게는 큰 복음이라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보름 후인 1914년 8월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순 한글로 발행되던 <권업신문(勸業新聞)>에 '유리 만드는 흙을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

"전라남도 다도해 중에 있는 대흑산도에 초자를 제조하는 규사가 있는 것을 일찍이 어느 약장사가 발견하여 이것을 가져다가 분석하여 본 즉 초자제조에 매우 아름다운 재료가 된 것을 발명한바, 일인 초자회사에서 발견자에게 돈을 주고 이 규사 광을 사서 일변 공장을 설하고 규사를 취급하기로 착수하였는데 우선 회사에서는 이 흙의 운수를 시작하였는바 이 섬의 규사는 한량없이 많아서 한국에는 재원이 발현되었다더라."

<권업신문>은 1911년 동포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권업회의 기관지로, 1912년 4월 창간되었다. <권업신문>은 주 1회, 매주 일요일에 1400부를 발행했는데 신채호·이상설 선생 등이 주필로 활동하였다.

안팎에서 발행되고 있던 신문들이 일제히 흑산도에서 규사가 발견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는 1914년. 1914년 7월 2일자로 발행된 <조선총독부 관보(朝鮮總督府官報)> 제575호에는 '각지의 이번 달(5월) 무역개황 - 목포항 편'에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는 "이번 달 목포항 수출액은 5만 9143원, 수입액은 16만 3813원으로서 전월에 비해 수출은 8만5302원이 감퇴하였으나 수입은 5899원이 증가하였다"면서 "수출 감퇴의 원인은 일본 시세의 하락으로 쌀 수출이 전월에 비해 5만1421원의 감소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언급한다.

"이달에 처음으로 규사가 수출되었는데 이는 '오사카의 '오사카-아마가사키 아사히글라스주식회사(大阪尼崎旭硝子株式會社)'가 전남 대흑산도의 천연산 규사를 공장 소재지인 큐슈 도바타(九州 戶畑)로 보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선우선회사(朝鮮郵船會社)는 특히 목포 경유 대흑산도와 일본 와카마쓰(若松) 간의 정기항로를 개시하고 이달 30일부터 규사 300톤 450원을 처음으로 이출하였다. 규사는 대흑산도에 무진장으로 있으며 일본산(日本産)에 비하여 품질이 우량하여 초자원료(硝子原料)로 가장 유망하므로 금후 매월 약 1,000톤 채취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

즉 조선총독부 관보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일제는 1914년 5월 처음으로 흑산도에서 규사 300톤을 채취하여 공장이 있는 일본 큐슈 도바타로 보냈으며, 이후에도 매월 1천 톤을 채취해 보낼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규사 이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제는 목포를 경유하는 흑산도와 일본 와카마쓰(若松) 간의 정기항로를 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일제는 1914년 5월 처음으로 흑산도에서 규사 300톤을 채취하여 공장이 있는 일본 큐슈 도바타로 보냈다.
 조선총독부 관보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일제는 1914년 5월 처음으로 흑산도에서 규사 300톤을 채취하여 공장이 있는 일본 큐슈 도바타로 보냈다.
ⓒ 조선총독부 관보 제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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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조선총독부 직원록>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직접 직원을 파견했다고 기록돼 있는 1919년부터 1922년, 파견한 직원의 소속 근무지는 '대흑산도 포경근거지 및 규사장치장'이었다.

1930년 목포부청이 발행한 <목포부사(木浦府史)> 제4절 세관 편은 이보다 앞선 시기부터 일제가 흑산도에 직원을 직접 파견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목포부사>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부산세관 목포지서에서 파견한 직원의) 관할구역은 전라남도 일원으로, 대정5년(1916년) 10월 대흑산도 일한포경합자회사에, 동 6년(1917년) 9월 같은 섬 '아사히글라스주식회사(旭硝子株式會社)' 규사채취장에 각 청원세관원을 파출하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남아있는 기록보다 3년 앞선 1916년 10월부터 조선총독부는 흑산도에 직원을 직접 파견했고, 이들의 임무는 대흑산도 포경근거지에서 포경 관련 어업세를 징취하는 일과 "대흑산도에 무진장으로 있는 규사"를 수탈해가기 위해 규사장치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흑산도 근해에 살던 고래를 학살해서 수탈해가기 위해 설치한 포경근거지는 흑산도 예리에 있었다. 흑산도 규사를 수탈하기 위해 설치한 규사장치장은 어디에 있었을까. 1917년 10월에 간행된 <전남사진지>가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전남사진지>에 실린 '대흑산도 진리만 내의 규사채취지'라는 제목의 사진엔 "진리만 내의 해변 일대는 눈 같은 규사와 울창한 방풍림 및 겸손치 않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이고 있다"며 "전 조선에서 다른 어떤 곳에도 구할 수 없는 규사가 무진장 있어 후쿠오카현 주식회사에서 채취권을 얻어냈다"라는 해설이 달려있다.

1914년 발행된 <조선총독부 관보>에 이어 1917년 발행된 <전남사진지>에서도 "대흑산도에 규사가 무진장 있다"는 표현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채취지'는 '대흑산도 진리만 내'라고 적시하고 있다. 지금의 흑산면 진리 앞바다 일대에 일제의 규사 채취지였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관보>는 "1914년 5월 당시 대흑산도 규사 채취권은 '오사카 아마가사키 아사히글라스 주식회사'가 가지고 있었고, 이출 지역은 공장 소재지인 큐슈 도바타로 규사 300톤을 처음으로 이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년 후에 발행된 <전남사진지>는 "1915년부터 생산된 규사는 기선이나 범선 편으로 후쿠오카현으로 옮겨가 자가용원료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후쿠오카현은 일본 큐슈 북동부에 있는 현이다. 1917년 9월 흑산도에 있는 '아사히글라스주식회사 규사채취장'에 조선총독부 세관 직원을 파견했다는 <목포부사>의 기록으로 볼 때 <전남사진지>에서 언급한 '후쿠오카현 주식회사'는 '아사히글라스주식회사'로 추정된다.

일제가 "흑산도에 무진장 많다"고 했던 규사. 하지만 지금은 흑산도에서 규사의 흔적을 찾기 힘든 것은 물론 흑산도와 규사의 연관성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다. 흑산도에 무진장 있다던 그 많은 규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제는 흑산도에서 고래라는 생물자원은 물론 규사라는 광물자원까지 '무진장' 수탈해갔던 것이다.

 1917년 발행된 <전남사진지>가 “진리만 내에는 전 조선에서 다른 어떤 곳에도 구할 수 없는 규사가 무진장 있다"라고 기록한 현재의 전남 신안군 흑산면 진리 근해 일대.
 1917년 발행된 <전남사진지>가 “진리만 내에는 전 조선에서 다른 어떤 곳에도 구할 수 없는 규사가 무진장 있다"라고 기록한 현재의 전남 신안군 흑산면 진리 근해 일대.
ⓒ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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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기사 '일제가 설치한 대흑산 포경근거지는 어디에 있었을까'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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